通訓大夫 行 禮安縣監 鄭公 略傳 (草)

by 등대지기 posted Feb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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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의 諱 斯仁 姓 鄭씨 本 瑞山人 그 先祖는 金紫光祿大夫 門下侍郞平章事 諱 臣保公으로 中國 宋나라 사람으로 나라가 亡할 무렵 尙書刑部 員外郞을 지냈고 東쪽 高麗로 亡命 瑞山에 살았으며 인주 수(麟州守)로 있을 때 崔坦등 反逆무리에 여러 번 죽임을 당할 번했으나 高麗에 忠誠을 다하여 三綱行實圖에 대표적인 忠臣으로 登載 되었고 性理學을 최초로 高麗에 傳來시킨 性理學者로 瑞山 鄭氏元祖요 五代祖인 襄烈公 諱 仁卿公이 高麗 壁上三韓三重大匡, 推誠定策安社功臣, 都僉議中贊, 上護軍 判典理司事, 瑞山君에 封해지고 시호 襄烈를 받았으며 外交使節로 國益 代辯에 어려운 國亂을 能通한 言語와 德望으로 헤쳐 나오며 잃은 땅 東寧府을 돌려받았고 고려 통일 대전,宋谷, 雲溪 三祠에 祭享된 瑞山鄭氏 始祖요,高祖가 都僉議 贊成事, 右文館 大提學 諱 信유 公, 曾祖가 尙書 知製敎 諱 世忠公, 祖는 判將作監事 尙書 諱 璹公 이시다 皇考 富城府院君 諱 允弘公은 高麗가 亡할 무렵 물러나 二姓과 함께 내려와 長 從孫을 淸州에 다섯 아들을 金山(金泉)의 鳳溪 居昌 報恩 知禮등지에 分散隱居 하였으며 府夫人 江陽李氏는 判書 禽의 女이시니 곧 公의 어머니요 性稟이 어질고 智慧로 웠으며, 淑夫人 淸州 韓氏는 縣監 顯永公의 女이시니 孝婦로 誠心을 다 하다.

子로 副司直 成溫, 文科 直講舍人 寶城郡守 成良, 縣監 成恭, 文科 務安縣監 成儉이고 進士 裵 璨文公은 사위요, 孫으로 司直 시, 司正 仍으로 長 孫子요 曾孫이 많다,
新寧 縣監 候, 司憲府監察, 黃澗 縣監 주, 司馬兩場 進士生員를 兼한 號 醒翁 優, 訓導 구, 둘째의 孫子이고 曾孫이 많다.
셋째는 无后요. 贈 吏曹判書 行 三嘉縣監 文科 號 蓑村 僖,요 넷째 孫子이고 曾孫이 많다. 孫女 曾孫女가 많다.

公의 生年과 沒日을 모르고 本朝 世宗 때 文科에 올라 成均學諭 歷任, 弘文直講, 春秋館, 記注官, 禮安 縣監으로 辭任 通訓大夫를 받다. 居昌에 瑞鄭이 처음 들어온 入鄕 祖이며 文章이 뛰어났고 孝와 友愛를 지극히 몸소 實踐 하는 道德的인 先覺者 였다.

秀麗한 文章으로 글 짓고 쓰기를 좋아 하였으며 自然 山水를 즐기는 人品과學德이 세상에서 우러러 尊崇하였으나 後孫이 크게 禍를 입어 文章 道德이 글로 남김이 없고 ?
子孫이 生存에 급급하여 學問이 貧寒하니 崇朝 顯彰의 여력이 없었으니 안타까운 悔恨이 솟구치는 구나 아 슬프 도다 !

官職에서는 謙遜 하고 맑고 곧은 政治를 하고 百姓에는 和合하였다. 벼슬에 나가 오름을 좋아 하지않고 山水를 즐겨하며 安陰, 居昌등을 옮겨가며 悠悠自適 하였다.

史歷이 너무 적구나 그러나 足히 보건대 德으로 다스리고 仁으로 보살피며 父母에는 孝行으로 同氣間에는 友愛로 지극히 몸소 實踐하니 學德과 愛民으로 살으셨다. 물질에는 超越하여 自然에 心醉 하였고. 世上에서는 우러러 崇慕하는 이가 많았다. 公의 墓는 安義 北 松禮 金寺洞에 子坐하니 간단 한 碣銘이 있으나, 오랜 세월로 뭉개져서 읽을 수 없어 將次 墓道碑를 크고 빛나게 하고자. 새로 크게 碣銘 하여 잊혀저 가는 史歷들을 찾고 모아 빛나게 할 것이다

년 월 일
後孫 상고 草


참고;
1.기유 3월 일 야성 송 수근 근찬 묘도 비문
2.서산정씨 정축보
3.죽고록 공우화림인물지(竹谷錄 公于 花林人物誌)
4.二姓; 승선 수원백공 귀선,부사직 해풍 김공 효신
(承宣 水原白公 貴璇, 副司直 海風 金公 孝信)

※ 학식과 문장에 조예가 계신분이나 현 예안조 사력에 새로운 내용을 알고계시는 분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