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의 정나라 흥망 개요

by 93세 손 posted Mar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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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라 시조는 주(周) 선왕(宣王)의 동모제인 희우(姬友)이다.(일명 정백우 鄭伯友)
주 선왕 희정(姬精)이 즉위하고 난뒤 자신의 동복형제인 희우에게 정나라 땅을 봉한다.
섬서성 화현에 봉해졌다가 당시 경내로 대거 진출한 견융의 세력을 피해 지금 하남 신정시로 도읍을 옮겼다.주 선왕이 죽은후 태자 궁(宮)이 오르니 그가 바로 주 유왕(幽王)이다.

주 유왕은 천생이 놀기 좋아하고 간하는 소리를 굉장히 싫어해서 생전에 모후인 강후姜后가 자주 꾸짖었으나 강후 사후 더욱 되먹지 못한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충신들의 가슴을 아프게했다.당시 정백우는 사도(司徒)로 있었다. 본시강직하고 곧은 사람으로 주 유왕에게 자주 간해 주 유왕이 특히 싫어했다.주 유왕이 포사를 총애하여 신후(申后)를 폐위하고 태자 의구(宜臼)를 폐하고 포사가 낳은 백복을 태자로 세운다.이에 신후(申候)는 견융(犬戎)의 도움을 받아 주나라를 치고 이 난리통에서 정백우는 주 유왕의 어가를 보호하다 전사를 하게된다.

주 유왕이 죽고난후 신후는 견융을 잘 구슬려 돌려 보내려 하지만 견융이 호경에서 나가지 않자 삼로 제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 세 제후는 위무공(衛武公) 희화(姬和), 진 문후(晉 文候) 희구(姬仇) 진 양공(秦 襄公) 영개(瀛開)다. 한편 정나라 세자로 있던 희굴돌(姬掘突)은 부친의 죽음에 주나라 호경을 위의 삼로제후와 쳐서 견융을 몰아낸다. 그리고 전에 쫓겨났던 태자 의구를 데려와 왕으로 삼으니 그가 바로 주 평왕(平王)이다. 주 평왕은 정백우가 왕을 위해 죽었다고 하여 시호를 환(桓)으로 내리니 정백우는 바로 정 환공(桓公)이다. 그리고 주나라 동천에 공을 세웠다하여 태자 굴돌은 경사(卿士)가 되어 위무공과 주나라 정사를 담당하고 당시 신후는 태자 굴돌의 인품을보고 자신의 딸을 내주게된다. 그리고 굴돌은 황하의 남안(南岸)에 있었던 동괵을 공격하여 병합하고 그 땅을 경성(京城)이라 칭했다. 굴돌이 죽고난후 시호를 무(武)라 하니 그가 바로 정 무공(武公)이다.

정 무공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으니 첫째를 오생(寤生)이고 둘째 아들이 단(段)이었다.
오생은 강부인(신후의 딸)이 잠자고있을때 해산하는 꿈을 꿨는데 일어났더니 오생이 나왔다고한다.그래서 이름을 잠깰 오 날 생이라 하여 오생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강부인은 이를 불쾌히 여겨 첫째 오생보다는 얼굴이 잘생기고 재주가 뛰어난 단을 더사랑하였다.그리하여 단은 어머니를 믿고 난을 일으키지만 오생의 꾐에 넘어가 결국 죽게 된다.

정 무공이 죽고 오생이 군위에 오르니 이이가 바로 정나라 최대 전성기를 이룬 정 장공(莊公)이다.그는 영고숙(穎考叔), 제족 등과같이 여러 현신들의 도움을 받아 허나라를 치고 제나라를 침공한 오랑캐들을 세자 자홀(子忽)을 보내어 무찌르고 송나라와 위나라를 속여 대(戴)나라를 취하는등 소패업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는 주 환왕(桓王)과 사이가 특히 좋지 않아서 결국엔 주 환왕이 정나라를 침공하지만 정나라는 천자의 군대를 가볍게 물리치고 주 나라의 위신이 떨어지게된다.

하지만 정장공의 사후 세자 자홀(子忽)이 로 군위에 오르지만 불과 1년 만에 쫓겨나고 자돌(子突)이 정 여공(厲公)으로 제후위에 오르고 또 자돌은 불과 2년만에 제족에게 쫓겨나 자미(子靡)가 제위에 오르고 자미는 군위에 오른지 1년만에 제 양공(襄公)에게 유인당해 죽고 그 뒤를 자의(子儀)가 오르고 나중에 자의는 다시 정 여공 자돌에게 쫓겨나고 이런 혼란을 반복하는동안 제 환공(桓公) 소백(小白)은 천하 제후를 규합하고 패권을 잡고 남쪽에서는 초 성왕(成王)이 영윤 자문(子文)을 등용해 강성해지고 있었다. 결국엔 정나라 춘추전국시대동안은 낮에는 진(晉) (후에 진 문공(文公)이 진나라를 부흥시켜 가장 강력한 제후가된다 위의 진문후 희구와는 다른인물)나라를 섬기고 밤에는 초(楚)나라를 섬긴다는 말이 생길만큼 강대국에 이리저리 붙는 약소국으로 전락하게된다

무공의 아들인 장공의 시대에 이르러 중원의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장공이 죽고 그의 아들들이 벌린 후계 싸움에 국력이 소모되어 중소제후국으로 전락하고 이어서 당진(唐晉)과 초(楚)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중원 쟁탈전에서 항상 정나라가 그 싸움의 중심이 되어 춘추전국 시대 대부분의 시기에 있어 전화가 끊일 때가 없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기원전 375년 한(韓) 나라에 병합되었다.

서산, 의문정씨 주요인물 :
정백우, 환공(桓公) - 제1세 시조 (주왕실 35대 선왕의 동생)
굴돌(掘突), 정 무공(武公) -2세조
오생(寤生), 정 장공(莊公) -3세조 (굴돌의 큰아들, 둘째 아들 이름은 숙단(叔段)
자돌(子突), 정 여공(여公) -4세조 (오생의 4째 아들)
자미(子靡) -오생의 둘째아들
자의(子儀) -오생의 셋째아들
자홀(子忽), 정 소공(昭公) -오생의 큰아들

서산정씨 상조세계보 (71~72쪽 참조), 기타 열국지등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