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 世家(忠烈王)에 나오는 始祖 鄭仁卿 -1282년

by 杓先 posted Nov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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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 8年 (1282년)
5월 庚申에 교하여 이르기를 ?내가 부덕하여 국보가 다간하고 하늘 꾸지람이 서로 잇달아 한재가 해를 연하므로 마땅히 계신하여 덕을 닦아 재변을 소멸시켜야 할 것이니 그 이죄 이하는 모두 다 유면하고 송악 및 경내 명산 대천에 덕호를 가하고 조성 이하 열조에게는 존호를 가상하고 도선국사와 문창후 홍유후에게는 아울러 봉작을 가하고 문 무 정 잡으로 무릇 직에 있는 자는 차제로 동 정(직)을 가하고 己巳年79) 동으로 돌아와 파사부에 이르러 변을 듣고 환조할 때에 시종 보좌한 將軍 정오부 정인경(鄭仁卿) 차득규 이지저, 대부윤 김응문, 郎將 김의광으로 1등공신을 삼고, 大將軍 라유 지윤보, 將軍 림비, 摠郞 이승연, 將軍 김부윤, 中郞將 황취, 郎將 섭주석 량저 백좌명, 郎將 전우 금위량은 2등공신을 삼아 각각 전민을 사하고 그 나머지 종신들은 갑술년 선지에 의하여 자손을 녹용하고 別將 김심백 류복화 전전承旨 최중경은 비록 다 상식인 7품이지만 수종에 공이 있으니 5품으로 허통하고 中郞將 정승오는 다시 입조에 수종하였으니 그 아들에게는 5품에 한하여 허한다?고 하였다.

해석 => 충렬왕의 세자시절 기사년 임연의 반란 진압에 공이 있던 장군 정인경(鄭仁卿)에게 1등 공신으로 제수하였다.

9월 정축 삭에 왕륜사에 행차하였다. 갑자에 왕이 공주와 세자로 더불어 길상사에 행차하여 500성재를 설하였다. 랑장 류비가 원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제가 왕에게 부마국왕의 금인을 사하였다. 병인에 왕이 공주로 더불어 복령사에 행차하였다. 무진에 왕이 공주로 더불어 마제산에서 사냥하였다. 수강궁에 행차하였다. 을해에 왕이 공주로 더불어 충청도에서 사냥하였다. 홍자한으로 탐라방호부사를 삼았다. 응방 패로한 등을 원에 보내어 응을 바치었다. 친종장군 정인경(鄭仁卿)을 료심에 보내고 중랑장 정복균을 동령부에 보내어 인물을 추쇄하였다. 행종도감이 유밀과를 금하고 또 원도수령의 래알을 금하였다. 정축에 공암을 지나 안남에 이르렀다.

해석=> 친종장군 정인경(鄭仁卿)을 요령성(심양)에 보내어 수십 년간 몽고와의 전쟁에서 포로 및 인질로 끌려간 고려유민을 귀환시키는 외교적 노력을 하여 국가적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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