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 世家(忠烈王)에 나오는 始祖 鄭仁卿 -1283년

by 杓先 posted Nov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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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 9年 (1283년)
3월 乙卯 朔에 중랑장 류비가 원으로부터 돌아와 말하기를 황제가 강남군을 징발하여 장차 8월에 일본을 동정할 것이라?고 하였다. 丁巳에 대장군 정인경(鄭仁卿)과 別將 정량을 료양, 북경(견상)에 보내어 류민을 추쇄하였다. 戊午에 곡주 수안현에 이르는 류민을 신은현(신계)에 이처시켜 존휼을 가하게 하였다. 기미에 중랑장 조감 등이 원으로부터 돌아오는데 제가 포마차자 오통(도)을 사하였다. 경신에 야선대왕이 사자를 보내와 해동청(응)을 바치었다. 신유에 마를 의주에서 샀(시)다. 임술에 부부사를 제도에 보냈다. 계해에 중랑장 지선을 원에 보냈다. 갑자에 친히 3계를 본궐로 초제하였다. 경오에 승 견명으로 국승을 삼았다. 사신을 제도에 보내어 병량을 준비하고 군기를 제조하고 전선을 수리케 하였다. 갑술에 부지밀직사사 조인규를 원에 보내어 군량을 감하기를 청하였다. 사자를 보내어 응을 동계에서 잡았다. 신사에 왕륜사에 행차하였다. 계미에 왕이 동교에서 사냥하였다.
5월 무오에 량루에서 잔치하고 격구를 구경하였다. 신유에 가뭄으로써 재추에게 명하여 각각 시정의 득실을 말하게 하고 2죄 이하를 유사하였다. 己卯에 왕이 공주로 더불어 복령사에 행차하였다. 정인경(鄭仁卿) 등이 원으로부터 돌아와 말하기를 ‘?帝가 東征의 論議를 중지하였다’ 하니 왕이 명하여 수함 조병 등사를 파하게 하였다.

해석=> 대장군 정인경(鄭仁卿)이 또 다시 심양, 북경 등지로 가서 원나라와의 외교 교섭에서 고려 유민을 귀환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고 그들이 살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5월에 다시 원나라와의 외교 교섭에서 원나라의 일본정벌논의를 중지 시겼다. 이는 원나라의 일본정벌에 고려의 민생이 더 이상 피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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