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 世家(忠烈王)에 나오는 始祖 鄭仁卿 -1292년

by 杓先 posted Dec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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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 18年 (1292년)
6월 계유에 세자가 양궁에 축수의 잔을 올릴새(상수) 제왕과 양부 기로가 득연하고 세자가 일어나 춤을 추니 왕 및 공주가 기쁨을 극히 하고 파하였다. 정축에 동지밀직사사 나유가 졸하였다. 윤월 신묘에 하늘의 꾸지람(천견-천재)과 백성의 주림으로써 이죄 이하를 유사하였다. 원이 만호 서흥조를 보내어 강남미 십만석을 운래하여 기민을 구휼하였다. 辛亥에 김운으로 첨의참리 세자 이부를 삼고, 한희유로 지첨의부사 세자 이보를 김흔으로 판삼사사를, 정인경(鄭仁卿), 유승, 최유엄으로 모두 동지밀직사사를, 이혼 장순룡으로 모두 부지밀직사사를 박의 정#로 좌우승지를 민지로 좌부승지를 삼았다.

해설‘=> 정인경(鄭仁卿)이 합단군으로부터 고려조정을 지킨 공로로 同知密直司使가 되었다.

12 월 무오에 왕 및 공주가 묘연사에 이어하였다. 계유에 왕이 질환으로 미행102)하여 밀직 안향의 집에 이어하였다. 乙酉에 전 찬성사 송분과 동지밀직사사 정인경(鄭仁卿)을 해도에 유배하였다.

해설=> 충선왕파의 정치적 모함을 받아 정인경이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충렬왕에서 충선왕으로 교체하기전, 충렬왕 지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는 편이 시대적으로 옳을 것인지도 모른다.
원나라 조정은 12월에 정인경을 유배보내고, 다음해 1월에 충렬왕을 상왕으로 퇴위시키고 충선왕을 즉위시킨다. 원조정 내부의 권력투쟁이 고려의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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