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 世家(忠烈王)에 나오는 始祖 鄭仁卿 -1299년 (2)

by 杓先 posted Dec 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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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辛巳 朔에 장군 백효주를 원에 보내어 요를 바쳤다. 丙戌에 인후 이□ 원□ 정□ 원경 허평이 파면되었다.
丁亥에 판삼사사 정인경(鄭仁卿)을 원에 보내어 사은하니 표에 이르기를

[사화가 이르매, 문득 구원의 명륜(밝은 조서)이 전해지고 제덕이 패연하매 문득 일방의 감주가 되었나이다 기성을 살피매 송구한 느낌이 더욱 깊읍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다행히 천재의 조봉에 양조의 □우를 외람되이 입었나이다 백성은 못이 길어 고기가 유영하는 것과 같아서 오래 □린에 목욕하였고 나라는 나무가 늙어 좀이 나는 곳과 같아서 스스로 허물과 뉘우친(우회)을 부르게 되었나이다 액수가 다시 량덕에 겹쳤으며 예언이 일찌기 단총134)에 미쳤나이다 비록 산해와 같은 관용이라 하여도 오히려 뇌정과 같은 일로를 두려워하나이다 어찌 창궁보다도 먼 곳에서 사정을 곡진하게 살피시와 적자의 무지로 하여금 도리어 애육을 입게 될 줄을 알았아오리까 이미 법언을 나열하여 계를 내리시니 인하여 한호135)를 베풀어 써 하반를 세척케 하셨나이다. 자손에게 전하는 보훈이 정령하매 거국의 환성이 양일하나이다 이것은 대저 탕의 창미를 법받고 순의 호생을 체득함을 만나(우) 적은 것을 사랑하는 인을 가하시고 황예136)를 포용하는 도량을 넓히시와 무□한 것이 혹시나 억울하게 될까 두려워 하여 차라리 떳떳치 못한데 실수하려 하심이외다 신이 감히 공경히 신료들을 거느리고 직무를 닦아(술) 거의 천심에 응부라고 길이 □속을 편히 하여 써 정성을 피력하와 성수의 연장을 축원하지 아니하오리까]

라고 정인경(鄭仁卿)이 원나라 조정에서 표하였다.

계사에 이죄이하를 유사하였다. 경자에 안평공주의 대상로 묘련사에 행차하였다. 을사에 수강궁에 행차하였다.
추 7월 을미에 장군 김유로 경상 전라 양광 3도의 채방사를 삼았다. 정미에 밀직사 유□를 원에 보내어 성절을 축하하였다.
8월 기유 삭에 일식하였다. 정사에 수강궁에 이어하였다. 병인에 밀직사사 류비가 도망하였다.
9월 기묘 삭에 대장군 민보를 원에 보내어 □를 바쳤다. 병수에 감찰사 채우를 해도에 유배하였다. 기해에 송#(빈)으로 감수국사를 안향으로 수국사를 민지로 동수국사를 삼고 차신과 최유□ 류비 오인영 유복화 홍선를 파면하였다. 병오에 허평의 집에 이어하였다.
동 10월 갑자에 원이 활이길사를 보내어 정동행중서성 평장사를 삼고 야율희일로 좌승을 삼았는데 그때에 합산이 돌아가서 아뢰기를 [왕이 능히 그 중인을 복어하지 못하니 조정이 마땅히 관을 보내어 함께 다스려야 한다]하므로 제가 이를 좇은 것이다. 병인 에 왕이 정동성에서 시사하였다. 이달에 행성을 증치한 것으로 써 표를 올려 진정하기를 [소방의 누세로 근왕하는 공이 무릇 80여년으로 해마다 직공을 닦았고 신이 일찌기 세자로써 입부하여 제실에 연혼함을 얻어 드디어 □□가 되었으니 실로 지은을 느끼거니와 소국으로 하여금 조풍을 바꾸지 않고 길이 후직을 닦도록 함이 소망입니다]라고 하였다.
11월 경진에 지도첨의사사 송#(빈)이 퇴관하기를 빌었다. 을유에 묘련사에 행차하였다. 경자에 온천에 행차하였다.
12월 무신 삭에 장군 이백초를 원에 인삼과 □육을 바쳤다. 甲寅에 찬성사 정인경(鄭仁卿)을 원에 보내어 하정하였다.

해설 =>
찬성사 정인경을 원나라에 보내어 고려와의 외교적 갈등 문제를 원만히 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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