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부성부원군 [정윤홍]에 대한 기록입니다.

by 杏木 posted Sep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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杏木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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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회군반대 충의지사 삼절 낙향
富城府院君 鄭允弘(부성부원군 정윤홍)

고려가 망한 뒤, 조선초에는 이씨 왕권 확립을 계기로 유학계는 학자들의 처신에 따라 양분되었다. 그 하나는 이조집권파, 또 하나는 절의파라 할 수 있다. 집권에 참여한 정도전,권근 등은 신왕조 건설대업을 성취하는데 크게 공헌하였고, 이를 반대하여 불사이군한 절의파는 연고 지방에 낙향하여 수학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향유사림을 형성했다.
절의파에 속하는 정몽주,이숭인,길재 등은 모두 영남 출신인데, 정몽주는 건국 과정에서 이방원에게 희생되고, 길재는 고향인 선산에, 이숭인은 성주에 귀향했다. 그리고 부성부원군 정윤홍은 추풍령의 재를 넘어 김천으로 이거하였다. 이들 모두 영남의 선산, 김천, 성주 등으로 낙향하여 함께 이웃하며 머물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이들을 麗末 嶺南落鄕三節 이라고 한다.
(여기서 嶺南(영남)이란 말은 추풍령 이남의 뜻임)
이때,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고려왕조에 종사하다가 금산(김천)으로 낙향하여 정착한 명문사족(名門士族)을 들면, 공조전서를 지낸 벽진인[이존인]이 [부항]으로 낙향하고, 판사재감사를 지냈다가 개령으로 낙향한 전의인[이사경]과, 여말에 안렴부사로있던 [이여량]이 있고, 서운관도정으로 있다가 지례로 낙향한 [나만]이 있고, 승선을 지냈다가 금산으로 낙향한 수원인[백귀선], 부사직이었던 해풍인[김효신], 富城府院君이었던 서산인[정윤홍] 등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