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역차별 후폭풍

by 一山 posted Feb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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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무님의 좋은 글 소개를 드립니다>


論壇-역차별이 몰고온 후폭풍


경쟁은 고달픈 일이지만 인간사회에서 어쩔 수 없으며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만 사회가 발전한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은 국경없는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공정경쟁이 최고의 규범이다. 공정경쟁을 감시하기 위해서 국제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있고 국내적으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자본에 대하여 차별조치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내자본에 대하여 불리한 대우를 하는 역차별 문제가 부각되면서 국민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외국자본도 나쁜 토종자본보다 못하다(資本의 身土不二)’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외국자본은 순기능도 있지만 자본의 생리상 역기능도 있다. 특히 역기능이 반(反)외국자본 정서로 연결된다면 수습하기 어려운 재앙을 맞이할 수도 있다.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외국자본을 우대하면서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였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에 들어온 외국자본의 규모는 150조 원 정도나 된다. 외국인의 비중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5% 이상을 차지하여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특히 외국자본은 삼성전자, 국민은행 등 30개 주요 기업의 주식을 50∼70%나 보유하고 있다.

최근 제일은행이 영국계 SCB에 매각되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IMF 위기 이후 제일은행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은 17조6천억 원에 달하지만 회수율은 70%에 불과하다. 결국 5조3천억 원의 국민세금이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한편 5천억 원을 투자한 뉴브리지 캐피털은 5년 만에 세금 한푼 내지 않고 1조2천억 원의 매각차익을 올렸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당국은 선진금융기법 전수라는 추상적인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제일은행을 조급히 매각하였지만 지금은 헐값매각과 국부유출이라는 후 폭풍을 맞고 있다.

세계화시대의 기업은 동일한 환경 아래서 국제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재벌이 제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금과 수출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심각한 문제이다. 정부에서는 국내의 재벌기업이 순환출자(循環出資)를 통하여 적은 지분을 가지고도 세습적으로 그룹을 지배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총액출자 제한과 금융기관 의결권 제한을 통하여 경영권 방어능력을 규제하고 있다. 그들은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재벌 대주주를 견제하면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해진다는 점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미 일부 알짜 기업들의 경영권이 외국으로 넘어가 그동안 축적된 기술이 외국의 경쟁기업으로 넘어가는가 하면 외국인들의 고(高)배당과 유상감자(有償減資) 결의로 막대한 이익을 해외로 유출하고 있다. 또한 제일•외환•한미은행 등 토종 은행들의 경영권이 외국의 거대은행으로 넘어가 금융주권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F 이후 구제금융을 받았던 금융기관과 워크아웃 기업들이 올해부터 M&A(인수합병)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소규모의 국내자본이 대규모의 외국자본에 맞서서 대항하는 방법은 많지 않다. 우선 능력 있는 기업들이 필요한 기업들을 직접 사갈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이미 퇴색되고 있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구분하여 출자와 투자를 규제하는 ‘산•금(産•金) 분리정책’으로 우리기업의 활동범위를 제약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시장에서 기업이 제값을 받고 국적(國籍)있는 산업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이 연합하여 사모(私募)투자펀드(PEF)를 만들어 거대한 외국자본과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사모펀드는 자금조달과 자산운용에 많은 규제가 따른다.

이처럼 외국자본은 자유롭게 \'\'기업사냥(Corporate Raider)\'\'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국내자본은 손발을 묶어 놓는다면 이는 차별을 넘어서 역차별하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제도개선으로 국내외 자본 간에 공정한 경쟁을 할 때 순풍을 달고 항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진무 KAIST 금융공학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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