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와 정인홍-7 [조선왕조실록]-상소문과 답문

by 杓先 posted Aug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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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49권 35년 4월 23일 (갑인) 002 /
행 용양위 부호군 정인홍이 올린 상소와 답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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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용양위 부호군 ; 현직에 있은 용양위 부호군)
행 용양위 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정인홍(鄭仁弘)이 상소하기를,

“신병(身病)으로 천청을 번독케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늘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헌부에서 체직되어 바로 도성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또 부호군의 명을 받게 되었으므로 놀라고 두려워 어쩔 줄 몰라 세 차례나 정소(呈疏)하였습니다. 그리고 몸을 끌고 강을 건너 촌사(村舍)에 기숙하면서 면직의 명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 행여 한걸음 한걸음 남쪽 고향으로 돌아가 죽게 되려나 하였는데 규정 외의 휴가를 주는 명령이 갑자기 내려왔으므로 신은 은총에 감격하여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낭패된 실정을 아뢰어 삼가 상을 번독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외아들이 죽은 뒤로 육신은 살아 있으나 속병이 더욱 심해져서 예사로운 일을 처리할 때에도 잘못 그르치는 예가 많습니다. 지난번 대부(臺府)에 있으면서 정경세(鄭經世)를 논핵하려고 할 때에도 그저 다시 서둘러 탄핵해야 할 줄만 알았지 규례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몰랐으며, 단지 동료들이 우물쭈물 늦추는 줄만 알고 혼자 피혐하는 것이 재촉하는 결과가 되는 것을 살피지 못했으니, 거조가 잘못되어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병이 극히 중하고 정신이 흐려진 탓으로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 편책(鞭策)의 임무를 감당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풍현증(風眩症)이 근래에 더욱 심해져 앉거나 일어설 때 갑자기 땅에 쓰러지는가 하면 말을 타다가 길에 추락하기도 하여 한참 동안 인사불성이 되었다가 깨어나기 추질(醜疾)과 흡사하여 남의 이목을 놀라게 합니다. 그러니 내 한몸만 위의를 잃을 뿐 아니라 진실로 명기(名器)를 거듭 더럽히게 될까 두렵습니다. 재직 중에도 한결같이 움추려 엎드려 있기만 하고 공식 모임에 나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은 없으나 그래도 하찮은 충성심은 본연의 천성에서 나옵니다. 일찍이 성조(聖朝)에서 수용(收用)해 주신 은덕이 깊고도 무거우니, 저의 경우야말로 애초부터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몸을 허락하지 않은 자의 경우와는 견줄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직책에 매임이 없이 병으로 궁벽한 시골에 엎드려 있다 하더라도 국가에 유익하고 성은을 갚을 수만 있다면 오히려 험란함을 피하지 않고 마음과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지금은 이처럼 남다른 은총을 입어 천안(天顔)을 가까이 할 수 있고 친히 머물러 있도록 하라는 전교까지 받았음이겠습니까. 근력과 정신이 심하게 쇠진되지 않아서 대부의 반열에 끼일 수만 있다면, 신이 무슨 마음으로 굳이 성상의 뜻을 저버리고 꼭 체면(遞免)되어 돌아가려고 하겠으며 천청을 번독케 하면서 그만두지 않겠습니까. 정리(情理)로 따져보아도 그럴 이치는 반드시 없을 것입니다. 신은 들으니 공자(孔子)의 말씀에 ‘힘써 반열에 나아가 해낼 수 없다면 그만두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처럼 노쇠하고 병들었는데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않는다면 성문(聖門)의 죄인이 될 뿐만 아니라 왕법(王法)에 있어서도 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옛사람 중에는 나이가 50도 채 못어 치사(致仕)한 이도 있고 고향에 자신의 뼈를 묻기 위하여 귀향을 허락받은 이도 있는데, 이는 꼭 연로하고 병이 많아서 직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염퇴(恬退)하는 기풍을 숭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만둘 줄 아는 대의를 가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임금도 죄로 여기지 않고 끝내 억지로 머물게 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지금 신은 나이가 70에 가깝고 몸과 마음의 질병도 고질이 되어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염퇴하는 절조나 그만둘 줄 아는 대의야 생각할 겨를도 없고 감히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구히 돌아가기를 비는 것은 부득이한 사정에서 나온 것일 뿐 작록을 가벼이 여긴다거나 포만(逋慢)함을 즐기려 함은 더욱 아닙니다. 이미 물러난 이상 다시 나아가기 어려우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절박한 실정을 살피시어 속히 본직의 체면을 명하소서. 그리하여 신에게 다시 머물러 있도록 하지 않고 전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마침내 죽어서야 돌아가는 탄식을 면하게 하여 주신다면 그지없이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올린 글을 잘 보았다. 경이 사양하고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을 내가 유시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경은 어째서 줄곧 고집만 하고 조금도 마음을 돌리지 않는 것인가. 나와는 일할 수 없다고 여겨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지금 강을 건넜다는 말을 들으니 진실로 두렵다. 고향 산천의 풍경이 꿈속에 자주 나타난다 하더라도 내가 돌아가라고 허락한 다음에 호연히 돌아간다면 또한 어찌 늦는 일이 되겠는가. 지금 곧바로 성문을 나가다니 사체에 온당하지 못한 듯하다. 나는 듣건대 맹호가 산림에서 거닐게 되면 여우나 이리가 자취를 감춘다 하였다. 곧은 선비 한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 그 공효가 어찌 적겠는가. 어찌 꼭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직책에 구구히 얽매이게 하려는 것이겠는가. 경은 질병을 참고 속히 돌아오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24 집 377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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