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文科及第와 在野 文章家

by 杓先 posted Jun 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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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文科及第

주: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조 초기에는 고려 사대부 문중에 조정에서
관작을 제수하려고 하였으나 서산정씨 문중에서는 전국 각지 지방으로
이거하여 관직을 사양하고 학문에 전념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조 중기부터 관직에 나가지 시작하였다.
조선 중기에 서산정씨의 총인원이 200-300여명으로 추정되고,
이 적은 인원 중에서도 문과급제가 있었다는 것은 명문의 사대부 선비집안으로
선조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와 후손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많은 문중 분파는 학문에 열중, 관직을 하지 않으려는 분이 많았다.

1. 鄭成良(정성량): 7세
文宗卽位 庚午年(1450년) 文科及第. 府院君 允弘의 손자, 斯仁公의 2째 아드님.
世宗朝庚午文科直講舍人寶城郡守退居龍門山下[]一絶詩以[]懹事載金陵誌
[]墓本郡牙川面德龍良坐有表石

2. 鄭僖(정희): 8세
燕山2年, 丙辰年(1496년) 文科及第. 斯仁公의 4번째 아드님, 成儉의 장남.
來庵公의 증조부.
號[]村受業于첨畢齊金先生許以[]學君子[]弘治任子司馬行三嘉縣監成化丙子文科庚寅十二月十五日卒
[]墓郡北伽倻面伊川村后名山등패좌유碣銘曾孫仁弘선贈吏曺判書.

3. 鄭仁涵(정인함):11세 (1546년 - 1613년)
宣祖34年, 辛丑年(1601년) 文科及第. 來庵公의 사촌동생.
號琴月軒明朝丙午年生癸丑年三月十六日卒

4. 鄭潔(정결):12세
光海10年, 戊午年(1618년) 文科及第. 文菴公 仁耆의 장남.



★. 四友亭(伽南亭)과 兄弟 文章家

정자는 경남 합천군 야로면 하림리 에 있음
인홍의 사촌동생들로 4형제 모두 뛰어난 문장가였다.
지금, 하림리의 경치좋은 개울가에 정자가 남아있는 데
그 옛날, 4兄弟 文章家가 모여 글을 짓고 읊던 유서 깊은 장소다.

1. 文菴公 (문암공);
來庵 仁弘의 사촌동생. 諱는 仁耆(인기) 號는 文菴

2. 琴月軒公(금월헌공)
文菴 仁耆의 同生. 諱는 仁涵(인함), 號는 琴月軒

3. 敎授公(교수공)
文菴 仁耆의 同生. 諱는 仁徽(인휘), 號는 愚川

4. 主簿公(주부공)
文菴 仁耆의 同生. 諱는 仁止(인지), 號는 樂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