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祖와 鄭仁弘-1 [조선왕조실록]-不取仕 정인홍

by 杓先 posted Aug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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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46권 35년(1602년) 2월 15일 (무인년) 006 /
선조임금이 대사헌 벼슬을 제수해도 사양하며 취임하지 않는
정인홍에게 한양으로 속히 올라오라고 하서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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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대사헌 정인홍에게 올라오라고 하서(下書)할 것을 입계하니, 상(임금)이 다시 친히 글을 지어 내렸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정원; 승정원을 이름, 왕명의 출납을 담당)

“오래 전부터 고의(高義)를 들어오다가 10년전에 일찍이 한번 보았고, 그 뒤로 경은 고향으로 돌아가 세월이 그럭저럭 오래되었다. 임진 변란이 일어나자 경은 곧 의병을 일으켜서 적을 토벌하여 한 방면을 막아 산림(山林) 아래에서 나라를 위해 사력을 다하였으므로, 비록 파천 중에 있었으나 감탄하며 사모하는 마음이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한데도 좌우에 초치하여 부덕한 나를 보필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현인을 버린 잘못을 내가 진실로 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은대(銀臺)4856) 의 소임에 제수하여 아침저녁으로 도와주기를 기대하였더니, 경이 병을 이유로 오지 않아 참으로 서운하였다. 그러나 다시 항상 복잡하기만 한 기무(機務)를 맡겨 수고롭게 할 수 없었다. 이에 경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아 조강(朝綱)을 총괄하게 한다.
대체로 학문을 쌓는 것은 장차 큰 일을 하기 위해서인데, 자신의 절조만 지키는 것이 어찌 군자가 하고자 하는 일이겠는가. 마땅히 국경을 벗어나 타국을 나갈 때 안절부절하는 의리4857) 를 간절히 생각하여 초야에 있으면서 자득하는 즐거움을 일거에 바꾸어 고산(故山)의 연하(煙霞)를 사양하고 쟁기와 보습을 놓아둔 채 한번 일어나라. 지금 봄날이 따뜻해져서 길 다니기에 매우 좋으니 역말을 타고 속히 올라오라.”
【원전】 24 집 346 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人事)

[註 4856]은대(銀臺) : 승정원의 별칭. ☞

[註 4857]국경을 벗어나 타국을 나갈 때 안절부절하는 의리 : 《맹자(孟子)》 등문공하(藤文公下)에 “공자는 3개월을 벼슬자리가 없으면 안절부절하여 국경을 떠나갈 때에 반드시 다른 나라 임금을 만날 때에 필요한 폐백을 가지고 갔다.” 하였다. ☞



선조 147권 35년 윤2월 20일 (계축) 002 /
대사헌 정인홍이 성명을 거두기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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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임금이 신하의 개인 신상에 대해 내리는 명령.)
대사헌 정인홍이 사은(謝恩)한 뒤에 아뢰기를,

“신은 본디 한 가지 장점도 없는데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둑질하여 외람되게 성세(盛世)에 수용되어 군읍의 수령을 두루 겪었으나 모두 명성과 치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사헌부에 임명되었으나 또한 보탬이 된 바가 없었으며, 게다가 편협하고 소루하여 시배(時輩)들에게 크게 미움을 사 죄에 빠질 뻔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전하께서 친지처럼 생성(生成)해 주신 은택을 입어 삭탈 관작만 하여 이 세상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남쪽 지방에 물러나 있었으니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불행히 변란을 만나 비록 나라를 위하여 적을 토벌할 줄은 알았지만 재주와 지혜가 부족하여 왜적을 방어한 공이 전혀 없었으니, 백관의 대열에 스스로 끼일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지금은 나이가 70에 가까와서 근력이 이미 다하고 이가 빠졌으며, 지팡이에 의지해 다니고 죽만 먹고 사는 형편입니다. 또한 임진년 난리에 외아들이 죽음을 당하였는데, 자식을 사랑하는 구구한 정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애틋하여 낮에는 발작이 일어나고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정신이 아득하고 지려(智慮)가 혼미하여 몸뚱이는 살아 있으나 땅속에 들어가지만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찌 성명께서 노쇠한 신을 버리지 않으시고 갑자기 부르실 줄이야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신은 전에 참의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승지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직(就職)하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신병 때문이기는 하였지만 신의 형적이 포만(逋慢)에 관계되므로 황송하여 몸둘 바를 모르며 주벌(誅罰)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죄로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총탁(寵擢)을 내리시어 충심으로 정녕한 성지를 내리시니 무상한 신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바가 있으므로 놀랍고 황공하며 감격하여 눈물이 쏟아집니다.
다만 전일의 병이 아직도 낫지 아니하여 시일이 오래 지난 뒤에야 길에 오르게 되었고 길에 오른 뒤에도 하루 종일 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은명(恩命)을 오래도록 지체하고 중한 직무를 오래도록 폐하게 되었으니, 신의 죄가 더욱 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함부로 언관의 자리에 처하여 분수에도 맞지 않는데 무릅쓰고 있는 죄를 거듭 범할 수 있겠습니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매양 헛된 명성으로 사람을 쓰시어 명기가 적합하지 못한 사람에게 여러 번 내려지니, 참으로 덕은 없으면서 관직만 성대하여 성명(聖明)께 누가 될까 염려됩니다. 청컨대 성명을 빨리 거두시어 물정이 안정되게 하소서.”
하니, 宣祖가 답하기를,
“경이 지금 올라오니, 창생의 복이다. 사양하지 말고 더욱 국사에 마음를 다하라.”
하였다.
【원전】 24 집 354 면
【분류】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