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祖와 鄭仁弘-2 [조선왕조실록]-벼슬사직 상소

by 杓先 posted Aug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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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48권 35년 3월 5일 (정묘) 001 /
대사헌 정인홍이 정사하니 휴가를 주라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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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신하가 임금에게 사직을 청하는 願書}

대사헌 정인홍(鄭仁弘)이 세 번째 정사(呈辭)하니, 임금이 휴가를 주며 조리하라고 명하였다.


선조 148권 35년 3월 6일 (무진) 003 /
대사헌 정인홍이 차자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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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정인홍(鄭仁弘)이 차자를 올리기를,
{*.차자;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

“삼가 신이 휴가를 받고 조리한 지가 벌써 여러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세가 더욱 무거워지고 회복될 기약이 없어 세 차례나 병고(病告)하였는데도 아직 체파(遞罷)의 명을 받지 못하였기에 신은 어쩔 수 없이 구구한 정성으로 성총(聖聰) 전에 아뢰려 합니다. 신이 질병 때문에 공직(供職)할 희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앞서 진달한 바와 같은데 눈앞의 형세 또한 끝내 출사(出仕)할 수 없게 하고 있으니 그 대략을 진달할까 합니다.
신이 윤승훈(尹承勳)을 논박한 것에 대해 간원에서 중도를 얻지 못하였다고 배척하면서 윤승훈이 탑전에서 한 말은 우연한 언어의 실수라고 하였고, 옥당에서 양사(兩司)를 처치할 때에도 논의가 일치되지 않아 회피하고 흩어져 관(館)을 텅 비게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끝내는 정언 박건(朴楗)이 윤승훈을 논핵한 ‘군부(君父)를 기망(欺罔)하고 중신을 저격(狙擊)했다.’는 등의 말을 가지고 논사(論事)하는 체모를 잃었다고 하여 체직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망했다는 것과 면대해서 속였다는 것이 어찌 경중의 차이가 있겠으며 중신을 저격했다는 것과 청의(淸議)를 억눌렀다는 것 또한 쟁점에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단지 박건의 체직만 청했으니, 이는 신 등도 아울러 체직시키려는 뜻이 이미 그 사이에 있는 것으로 업신 여기고 조롱하는 정상을 환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만일 윤승훈이 면대해서 근거없는 말로 상을 속인 말은 오히려 언어간의 실수에 불과하고 박건이 일을 논하면서 저지른 문자간의 착오에 대해서는 도리어 체직해야할 잘못이라고 한다면 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적하여 탄핵한 것이 합당치 못하여 서로 알력이 생기게 하였으니 신이 이 때문에 피혐하려고 하였습니다만 동료들이 소요스러울까 염려하고 신도 이의를 내세우는 것이 미안하였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함께 피혐하게 되었으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미온적인 행동이어서 마치 체증(滯症)이 있는 듯 마음속이 매우 불쾌하였습니다. 그러다 신병이 더욱 중해져 급히 정사(呈辭)하였는데 출사하라는 명을 함께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물러나서 삼가 전 군수 이귀(李貴)의 상소를 보니 신의 죄를 따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그의 말과 같다면 신의 한 몸에는 온갖 악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인간의 도리는 조금도 없는 것이 되니 사적(仕籍)에서 삭제하여 진신(縉紳)의 반열에 끼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비록 작은 관직이라도 함부로 취할 것이 못되는데 더구나 풍헌(風憲)의 중한 지위이겠습니까.
이귀는 전에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의 소모관(召募官)으로서 군현에 공문을 발송하여 수금된 노비를 추문(推問)하였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또 소장을 올려 국가에 방해된다고 배척까지 하여 놀라운 언어를 주상 앞에 주달하였으니, 신이 그 사유를 알 수는 없으나 어찌 무단히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앞서는 옥당이 관(館)을 비운 변이 있었고 뒤에는 이귀가 죄를 따지는 소가 있었으며 물정도 마찬가지로 여겨 신을 배척하여 잘못이라고 하니 ‘나라 사람 모두가 옳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신에게 죄가 있고 없는 것은 하늘의 해가 밝게 비치고 귀신이 곁에 있으니 사실 변명할 것도 없으며 또한 별로 개의치도 않습니다. 그러나 무함하는 배척을 당하였으니 결코 버젓이 직위에 있으면서 죄를 무겁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 차례나 질병을 아뢰고도 면직되지 못하면 다시 출사(出仕)하는 것이 규례이니, 신의 사세가 낭패스럽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진퇴 양난에 처한 신의 형편을 살피시고 신이 떠날 수 밖에 없는 의리를 양찰하시어 속히 파직을 명하심으로써 물정을 쾌하게 하소서.
더구나 신은 평소 한 가지 취할 만한 장점도 없고 한 가지 볼 만한 선행도 없는데 헛된 명성만 훔쳐서 아래로는 한 세상을 속이고 위로는 군부를 속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찍이 대부(臺府)에 몸을 담고 제멋대로 경거망동하여 시류배(時流輩)들의 뜻을 거스렸다가 간신히 살아난 적이 있었는데, 이제 다시 시의(時議)가 이처럼 분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신이 형편없어서 이런 결과를 빚은 것이니, 그대로 지위에 있으면서 명기(名器)를 거듭 욕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신이 남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출사하여 총권(寵眷)만 연연한다면 신은 단지 비부(鄙夫)가 될 뿐인데, 전하께서 이런 비부를 뭐 애석하게 여길 것이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빨리 파직을 명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남쪽 시골에 내려가 두문불출하며 잘못을 뉘우치면서 땅속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게 하소서. 이것이야말로 전하께서 신을 끝까지 보전해 주시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하니, 차자에 답하기를,
“경은 어째서 갑자기 물러나 돌아갈 뜻을 품는가. 전일 대신의 계사에는 진실로 의심을 갖게 하는 점이 있었다만 이귀(李貴)의 사람됨은 경도 알지 않는가. 이 사람은 일찍이 김덕령(金德齡)의 양편 겨드랑이에 호랑이 두 마리가 출입한다는 설을 지어낸 자이다. 이러한 말도 만들어 내는데 무슨 말인들 만들어 내지 못하겠는가. 경을 낭패시켜 물러나 들어가게 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또 모두가 반드시 이귀의 수단에서 나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듣건대 경이 남중(南中)에 있으면서 성혼(成渾)이 최영경(崔永慶)을 음살(陰殺)한 사실을 강력히 말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말이 옳은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이런 일로 인해 이러한 상소가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조사(詔使)가 와 있는데 헌부의 장관이 물러나 있을 수는 없다.”
하였다.
【원전】 24 집 360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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