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祖와 鄭仁弘-4 [조선왕조실록]-정인홍의 정책건의

by 杓先 posted Aug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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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48권 35년 3월 25일 (정해) 006 /
대사헌 정인홍이 올린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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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정인홍이 상소하기를,

“삼가 정혹(鄭㷤)의 계사를 보건대, 신에게 분심을 품고 드러나게 조롱을 하면서 방자하게 천청(天聽)에까지 미쳤으니, 사람들이 모두 피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은 삼가 스스로 생가하건대, 피혐이란 것은 미세한 형적이 드러났을 때 잠시 피하였다가 물론이 정해지면 체직이나 면직될 수도 있고 출사(出仕)할 수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 같은 경우는 이처럼 신병(身病)이 있으니 결코 그대로 본직에 있을 수 없는 만큼 구구하게 예를 따라 남과 각축을 벌일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로 인해 며칠을 지연하여 크게 규례를 어겼으니 언책의 지위에 있는 신으로서는 더욱 그대로 그 직위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이 형편없는 몸으로 분수 밖의 은혜를 받아 마침내 형세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장차 조만간에 국문(國門)을 떠나게 됨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한 마디의 말씀도 드리지 않는다면 신은 살아서 성은에 대해 만분의 일도 보답 하지 못하고 죽어서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병이 들어서 시사(時事)에 대해 차례로 거론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감히 노망한 한 마디 말씀이나마 드림으로써 병든 몸을 대신하고자 하오니 전하께서는 살펴주소서.
신은 듣건대 임금은 한 국가의 주인이 되고 마음은 한 몸의 주인이 되니, 나라에 임금이 없으면 만 백성의 마음을 모을 수 없고 몸에 주인이 없으면 온당하게 사물을 제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마 승정(司馬承禎)4891) 이 임금에게 고하기를 ‘국가는 몸과 같은 것이므로 인군이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국가를 사랑하면 원기를 배양하여 질병을 공격하는 데에 마땅히 지극하지 아니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 역시 일찍이 말하기를 ‘몸과 마음의 관계는 국가와 임금의 관계와 같은 것이니, 몸을 기르는 것처럼 인군이 마음을 배양한다면 그 명명(明命)을 돌아보고 사욕을 버림에 또한 마땅히 지극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맹자(孟子)》에 「사람은 자기 몸의 어떤 부분도 모두 사랑한다. 모두를 사랑한다면 그 모든 것을 다같이 배양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세상의 임금들이 자기 몸을 사랑할 줄을 알지 못하는 자가 없으면서도 자기 나라를 사랑할 줄은 모르고,자기 몸을 배양할 줄을 알지 못하는 자가 없으면서도 자기 마음을 배양할 줄은 알지 못하여 끝내 국가를 망치고마는 자들이 많습니다. 진정 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몸을 배양하는 정성으로 자기 마음에 배양하게 되면 사욕이 없어지고 천리(天理)가 행해져 방촌(方寸)4892) 속에 요(堯)의 하늘이 맑게 전개되고 순(舜)의 태양이 빛나 바람에 쓸리듯이 교화되는 정사가 이미 정일(精一)한 가운데에 이루어질 것이니, 명을 거역한 유묘(有苗)4893) 가 스스로 양계(兩階)에서 춤을 추게까지 되어, 자신을 공손히 하고 남면(南面)하고 있기만 하여도 정치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양하는 방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몸을 기르는 것이 모두 도리어 마음을 해치는 것이 되어 왕보(王甫)와 조절(曹節)이 좌복(左腹) 속에 몰래 웅거하고4894) 동탁(董卓)과 조조(曹操)가 몸 안에서 함께 휘몰아치게 되니, 한(漢)나라의 천자는 직위를 잃고 빈 껍질만 남아 다시 천하의 군주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임금이 한 나라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것인 만큼 몸과 마음, 임금과 국가는 본래 일체(一體)가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거의 40년 동안 밤낮으로 치세(治世)를 이루고자 생각하시어 서정(庶政)을 근심하고 부지런히 하셨으나 전의 일을 되돌려 헤아려 보면 볼 만한 공적이 없고 뒷날을 점쳐 보아도 기대할 만한 공효(功效)가 없습니다. 어찌 전하가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국가를 사랑하고 몸을 기르는 것처럼 마음을 배양했는데도 이처럼 다스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더구나 전하는 지난번 대건(大蹇)4895) 의 운세를 만나 온갖 험난함을 겪게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회복함을 받게 되었고 옛 천명을 새롭게 함으로써 잘 계승해야 할 시기를 만나셨습니다. 내외의 신민들이 학수고대하며 일신(一新)하게 되는 정치를 보고자 기대하고 있는데 있는데, 오늘에 이르도록 한결같이 서로 잘못된 길로만 들어서고 있으니, 신은 생각건대 전하가 과연 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몸을 배양하는 정성으로 한 마음을 배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신이 삼가 오늘날의 사세를 보건대, 마치 병이 복심(腹心)에까지 침투하여 어느 한 구석도 병들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만일 그 근원부터 바로잡지 않고 지류의 말단만 잡고 단속한다면, 아무리 자세히 논설하며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하여도 전하가 슬쩍 한 번 보고 난 뒤에는 휴지 조각이 되어버려 나라 안에는 다만 아무 쓸모없는 하나의 문자만 행해지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끝내는 시대에 보탬은 되지 않고 한갓 말만 허비하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낱낱이 열거할 겨를이 없이 그저 급선무에 속하는 큰 조목만 골라 하나하나 아뢰겠으니, 전하께서는 유념하여 들어주소서.
신은 듣건대 만물이 모두 자신에 갖추어져 있고 뭇이치가 마음속에 구비되어 있으니 마음에 밝혀서 부족한 점이 없고 못에 되돌려서 부실(不實)한 점이 없고 나서야 마음이 한 몸뚱이의 주인이 되어 온갖 변화에 모두 마땅하게 응수하지 않음이 없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임금의 한 마음은 정사가 나오는 본원으로서 국가의 치란(治亂)과 존망(存亡)이 모두 여기에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정미롭고, 오직 한결같이 하라.[惟精惟一]’는 것이 요(堯)와 순(舜)이 서로 전한 오묘한 뜻이고, 선을 밝히고 몸을 정성되게 하는 것이 모든 제왕의 변할 수 없는 상법(常法)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성현의 말씀을 일단의 부질없는 이야기로 여긴다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 종사하지 않고서 제대로 융성한 정치를 이룬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버리고 정치를 말한다면 형명(刑名)일 뿐이고 법률일 뿐이며 그저 고식적으로 안일하게 세월이나 보내는 데 불과할 뿐이니, 어찌 오늘날 행해야 할 도리가 되겠습니까.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성학(聖學)의 고명함은 역대의 여러 왕들보다 뛰어나십니다. 시험삼아 요즘의 일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시비와 사정(邪正)을 분변하심이 황금과 무쇠, 옥과 돌을 분별하는 것처럼 하실 뿐만이 아니니, 전하의 선을 밝히는 공(功)이 옛 현철(賢哲)한 제왕에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하겠습니다. 공손하고 검소한 마음을 가지고 통렬하게 사치를 억제하시어 가무와 사냥의 즐거움을 일체 물리쳐 버렸으며 자칫 빠지기 쉬운 오락이나 근습(近習)에 대한 폐단도 지금까지 듣지 못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몸을 단속하시는 것은 전대 제왕도 능히 미칠 바가 아닌데도 치적이 이루어지지 않고 겨우 국세(國勢)만 보존한 채 도리어 형명(刑名)•법률(法律)의 정치만도 못해 부끄러운 실정입니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세월이나 보내며 위태롭게 되는 상황을 앉아서 보고만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걱정이라 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스스로 한 번 반성해 보십시오. 이렇게 된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신은 생각건대 근원이 맑으면 맑지 않은 흐름이 없고 꼿꼿이 선 표적에 곧지 않은 그림자는 없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이런 상황은 어쩌면 전하께서 마음을 배양하는 것이 지극하지 못하고 마음에 밝히는 것이 극진하지 못하며 몸에 체득한 것이 부실하고 모든 일을 온당하게 시행하는 데 미진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옛 성왕들을 고원(高遠)하게 여기시거나 옛 융성한 정치를 어림없다고 여기지 마시고 정일(精一)한 공부를 더 쌓으시고 실제로 명성(明誠)하는 노력을 극진히 하신다면 근본되는 체(體)가 성립되어 응용하는데 행해지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니, 이는 마치 근원이 깊으면 어느 곳이고 흘러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이를 가정에 응용하고 다시 가정에서 국가에 확대 적용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올바른 마음을 바로잡아 조정을 바로잡고 조정을 바로잡음에 원근(遠近)이 모두 한결같이 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공자의 말씀에 ‘곧은 이를 등용하고 굽은 이를 제거하면 백성이 복종한다.’ 하였고, 《주역(周易)》에 ‘군자가 환란을 해소시켜 버리면 길(吉)하니, 이는 소인의 물러감에 징험된다.’4896) 하였습니다. 안으로 심술(心術)의 은미함에서부터 밖으로 사물의 현상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천리(天理)에 따라 곧게 하고 인위적 판단을 제거해 버린다면 곧은 이는 반드시 제거되어 자연히 사사롭고 간사함이 끼어들 틈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漢)나라의 신하 제갈양(諸葛亮)이 ‘궁중(宮中)과 부중(府申)이 모두 일체인만큼 선악에 대한 상과 벌을 다르게 함은 마땅하지 않다.’고 한 것은, 정죄의 근본을 깊이 체득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등용되는 사람이 반드시 곧지 못하고 굽은 이를 반드시 버리지를 못하고 있으며, 군자가 등용되고 소인이 반드시 물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음양(陰陽)의 소장(消長)이 무상(無常)하고 대소(大小)의 왕래가 서로 잇달게 되었으니, 전하의 등용하고 버리는 조치가 자못 사람들의 마음에 만족하지 못함이 있고, 군자가 해소시켜 버리는 것 역시 아직 소인이 물러감에서 징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므로 원기를 배양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 역시 진실되지 못하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류(士類)는 국가의 원기이고 조정은 공론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조정의 사대부가 서로 분열하여 각자 이쪽과 저쪽편으로 갈라져 천백 갈래로 마음이 쪼개짐으로써 공도(公道)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이런데도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겠습니까.
신은 일찍이 생각하건대, 선비로서 간흉(奸凶)과 왕래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이라고 해서 꼭 모두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마치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는 자는 성인의 사도라고 하는 말처럼 사류의 법도를 잃지 않은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간흉의 무리로 지목되는 자라고 해서 어찌 모두 그의 응견(鷹犬)이 되어 흉모(兇謀)를 함께 이루는 자라고 몰아부치겠습니까. 자못 좋은 의사(意思)도 갖고 있고 그들의 잘못됨을 잘 알면서도 안면과 정분이 친숙하여 서로 절교하지 못한채 그대로 지목을 받게 된 자 역시 당연히 많을 것인데, 모두 흉인으로 단정하여 몰밀어 배척을 한다면 또한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안 될 일인데 더구나 이밖에 한때의 작은 분노나 어떤 일을 지나치게 거행한 잘못에 걸려들어 그대로 견책을 당하여 오래도록 엄체(淹滯)되어 있는 자의 경우이겠습니까.
신은 들으니 왕도(王道)는 본래 편벽됨이 없다고 하였는데 인재의 등용에 어찌 좁게 사사로움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그 사이에 주객과 경중의 분별이 없을 수 없을 뿐입니다. 삼가 전조(銓曹)에서 근일에 주의(注擬)한 것을 보건대, 자못 공론에 부합되지 않은 점이 있어 인심이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시의(時宜)에 애써 부합하고 이재를 수습한다고 핑계를 대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것을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 할지를 잘 몰라 주객이 분명하지 못하고 경중이 구별되지 않아 일이 구차스럽게 되고 있으니 앞으로 후회하게될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당국자(當局者)와 이런 점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끝내 시행되지 못한채 공론이 창달되지 않아 걸핏하면 개인적인 감정으로 해를 받기 일쑤이니 신은 국가의 원기를 다시 되살릴 수 없을까 걱정됩니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시험삼아 사대부 중에 간흉에게 달라붙지 않아 사류가 중히 여기고 공도가 그를 의지해 서게 될 사람 약간 명을 중요한 지위에 두어 동량(棟梁)의 책임을 맡겨보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같은 기맥을 가진 자를 찾아가 그들이 아는 자를 천거하게 하되 사사로운 분노는 버리고 제한을 두지 말도록 할 것이며 봄날 얼음이 풀리듯 융해되어 정의(情意)가 서로 돈독해지도록 하고, 띠풀을 뽑아 쓰듯 여러 직위를 담당케 하여서 집을 지을 때 여러 종류의 재목이 필요하듯 대소인(大小人)이 각기 제자리를 얻고 경중에 따라 그 온당함을 얻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일단 이렇게 된 뒤에는 의심을 하지 말고 오래도록 유지하도록 해야 하는데, 만약 이익을 탐내 대의를 범하거나 명예를 다퉈 진출할 것을 꾀하는 등 그 사이에 장애물이 되는 자일 경우는 다시는 통적(通籍)하지 못하게 하고 그대로 내쫓아 유배시키십시오. 이런 식으로 먼저 탕평(蕩平)의 법도를 보인 다음 다시 서합(噬嗑)4897) 의 위엄을 베푼다면 조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한 번 바꿔 시행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전하께서 국가에 대해 과연 그 사랑하는 도리를 다 하시게 되어 억만년토록 근심이 없도록 보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니, 삼가 전하께서는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이 국가를 위해 안타깝게 여기는 점은 내치(內治)를 동독(董督)하고 외적인 침입을 엄히 방비하는 이 두 가지 일에 불과할 뿐입니다. 내치가 동독하지 않으면 국가의 근본이 공고해지질 않고 외적 방비가 엄중하지 않으면 가까운 적이 침입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에 벌읍(伐邑)하는 상(象)과 도적을 막는 뜻이 있는 것은 대체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은 국가의 근본이 극도로 무너졌는데 생취(生聚)할 방도를 강구하는 정사는 없고, 남방과 북변에 모두 우환이 있는데 국경의 방어는 형편이 없습니다. 대소 신하들은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날로 직무를 게을리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제비와 참새가 재잘거리고 서로 즐거워하면서 집이 불타는 것도 모르는 것과 꼭 같습니다. 위란(危亂)이 이미 극도에 달했는데도 다스릴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 국가의 근본이 견고해질 시기가 없고 국경의 방어가 튼튼해질 시기가 없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내치(內治)는 현인을 등요하고 백성을 보존하는 것을 힘써야 하며, 외적의 방비는 장수를 가리고 군대를 양성하는 것을 급히 해야 합니다.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 목민관이 과연 백성들을 상한 듯이 애틋하게 여기는 군부(君父)의 생각을 체념하여 살아남은 백성들을 어린 아이 대하듯 보살피며, 장수의 책임을 맡은 이가 군부를 위하여 난을 막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잔약한 병사를 수족처럼 길러 위급할 때 사력을 대해 싸울 수 있으리라고 전하께서는 생각하십니까. 조정에서 사람을 등용하고 물리치는 데에 몽매하여 그 재질이 합당한지의 여부는 묻지도 않고 단지 안면이 많고 적으냐만 따지며, 방백(方伯)이 수령을 출척(黜陟)하는 데에 있어서도 공정하지 못하여 정치의 잘잘못은 헤아리지 않고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추느냐만 따져 진실하지만 겉치레가 없는 사람은 쓸모가 없다고 여기고 수완을 잘 부려 아부를 잘하면 현명한 인재라고 하니, 아 대부(阿大夫) 같은 자들은 거리낌없이 방자한 짓을 하고 즉묵 대부(卽墨大夫)같은 이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해체(解體)되고 맙니다.4898) 민생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수령에게 달려 있는데 조정에서는 돌보아주질 않고, 방백은 사욕만 채우려고 명목없는 세금을 걷어 착취하는 정치가 평시보다 더욱 심하므로 전하의 백성들은 항상 들볶이는 상태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영(留營)을 설치한 뒤부터는 방백들이 이웃 고을을 분할하여 더욱 자기의 탕목읍(湯沐邑)으로 삼아 다른 고을보다 무겁게 징색(徵索)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령을 단속하지 못함은 물론 도리어 본보기가 되어 더욱 날뛰게 만들고 있으므로 보살펴주지 않는 아픔과 하소연할 데 없는 원통함이 처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대개 조정이 깨끗하지 못한 탓으로 사문(私門)이 크게 열려 수레로 분주하게 실어 나르고 멋대로 보새(報賽)를 행하게 되었기 때문, 생민에게 끼치는 해독은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장수들은 백공(百工)을 불러모아 사기(私器)를 만들어 권문 세가를 섬기며, 국경을 수비하는 군사를 몰아 공인(工人)을 받들게 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화살이나 활 하나라도 만들어 위급할 때 대비하도록 하지는 않고 스스로 교만을 부리면서 사졸을 초개(草芥)같이 여길 뿐만 아니라 군사를 무휼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도 알지 못한채 날이 갈수록 연락(宴樂)에 탐닉하여 적이 진영 뒤에서 노략질하여도 모르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이러한 무리들을 장수로 믿고서 외적을 막고 다른 걱정이 없기를 바란다면 이는 밑바닥없는 배를 타고 창해로 나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삼군의 목숨과 국가의 안위가 한 장수에게 달려 있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위임한 까닭에 사졸의 마음이 이반되어 서로 원수처럼 여깁니다. 원통하게 부르짖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는데 서로들 도망하여 날마다 소진되고 있으니, 민생들을 돌보는 정사가 없고 국경 수비가 이토록 형편없이 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신은 듣건대 한 시대에 쓰일 인물은 한 시대에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하니, 수령과 장수에 합당한 인물이 어찌 없겠습니까. 단지 조정의 임용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더구나 수군 장수는 외침을 방어하는 중요한 직책이고 주사(舟師)는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신묘한 방책인만큼 장수를 더더욱 쉽게 선발할 수 없는데 도리어 무뢰배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평시에는 이익을 꾀하여 자신을 살찌우다가 병란이 있으면 군부에게 화를 전가시키는 자들이니, 장차 차마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전철(前轍)이 멀지 않은데도 태연히 주의할 줄 모르니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나라 사랑하기를 내몸 사랑하듯이 하여 기강을 진작시킴으로써 조정을 청명하게 하여 사람을 등용하고 물리치는 데에 적의하게 함으로써 공도가 크게 행해지게 하소서. 그렇게 되면 형식적으로 변모하든 진심으로 변혁하든 사람마다 각기 스스로 새롭게 될 것이니, 합당한 수령을 얻지 못할 걱정이 없을 것이며 장수의 임무를 맡을 인물 역시 자연히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면 인구가 번창하고 본업을 즐겨 마을이 연이어 들어서고 밥짓는 연기가 만리에 뻗칠 것입니다. 잘 사게 하는 동시에 때때로 교육으로 깨우치고 적을 헤아려 승산을 마련하게 되면 예절이 있는 문화권 안에서 편안히 지내게 될 것이며 천리 밖에서 적을 꺾을 수 있을 것이니, 국가의 근본은 견고해지기를 기필하지 않아도 저절로 견고해지고 남북의 걱정거리도 저절로 해소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일개 무용지물인 신은 치사(致仕)할 나이에 가까와 온갖 질병이 겹쳐오니, 이는 마치 벌레먹은 고목에 가지와 잎은 남아 있어도 뿌리와 줄기가 텅 빈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분에 넘치게 전하께서 발탁하여 써주신 은혜를 입고는 어떻게 할 줄을 알지 못하여 병든 몸을 이끌고 멀리서 와 지리(支離)한 신병(身病)과 가물거리는 지려(志慮)로 위와 같이 아뢰면서 누차 전하를 번거롭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극히 두려운 마음으로 벌 내리기만을 기다리게 되었으나 그래도 구구하고도 절박한 심정이 있어 스스로 말씀을 다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은 도성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넘었으나 병으로 누워 있는 날은 많고 직책을 수행한 날은 적었습니다. 대부(臺府)는 요양소가 아니고 노쇠한 나이는 벼슬에 나아갈 때가 아닌데 분수를 뛰어넘고 직책을 수행하지 못하여 죄려(罪戾)가 날마다 중해지니 성명의 세상에 용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쇠약하고 병든 몸을 끝내 죄의 허물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어찌 전하의 뜻이겠습니까. 신은 결코 조정에 오래 있지 못하겠기에 감히 위처럼 맹랑한 말을 아뢰었습니다. 만약 신의 말이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면 대궐 아래에 있더라도 하찮은 보답조차 행할 수 없을 것이나, 쓸 만한 것이라면 전려(田廬)에 물러나 있다 하더라도 직책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은 성품이 본래 편벽되고 막힌 데다 학술도 없어 걸핏하면 허물을 초래하고 뉘우치고 나서도 다시 그런 일을 되풀이합니다. 이번에 올라온 것에 대해서도 물색(物色)이 서로 시기하여 시끄럽게 구설수에 오르고 있으니,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어찌 우두커니 홀로 서서 다른 사람이 모두 동조하지 않는데 제대로 일을 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생각건대 평소에 사우(師友)의 덕택으로 군자의 풍도를 얻어 듣고 늘 스스로 세상과 다툴 것이 없다고 여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정의 관직에 매여 조금이라도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으면 남들 역시 동조하거나 반대하여 문득 일변인(一邊人)으로 지목해서 승부를 겨루려고 합니다. 신이 파리한 얼굴 횐 머리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속의 무리와 함께 명예와 이욕의 마당에서 승부를 겨루겠습니까. 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그래도 수치스러움은 아는데, 결코 몽매함을 무릅쓰고 배운 바를 상실하면서까지 군자의 가르침에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신이 항상 두려워하며 스스로 편케 여기지 못하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쇠잔하고 병들어 쓸모없는 신의 실정을 살피시고 낭패하여 물러나기를 구하는 신의 정상을 헤아려 속히 체파를 명하시어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소서. 그리하여 다행히 죽기 전에 염퇴(恬退)하는 이 하찮은 절조나마 스스로 지켜서 만에 하나라도 풍화(風化)에 도움이 되게 한다면, 이 역시 전하께서 신을 쓰시는 하나의 도리이며 신 역시 이것으로 전하에게 충성하여 거의 유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답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어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글을 살펴보건대,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충성에서 발로된 정직한 논의임을 알겠다. 진실로 가상하니 당연히 띠에 적어놓아야 하겠다. 다만 물러가려고만 하는 뜻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 경을 기다려 정치를 하려고 하는데 어찌 물러나 돌아가겠다고 하는가.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나의 뜻을 체념(體念)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24 집 365 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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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4891]사마 승정(司馬承禎) : 당(唐)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미(子微), 호는 백운 거사(白雲居士)로 무후(武后)•예종(睿宗)•현종(玄宗)이 차례로 초청하여 만났는데, 현종이 왕옥산(王屋山) 양대관(陽坮觀)에서 살게 하였다. 전서(篆書)와 예서(穀書)에 능하였고 노자(老子)의 문귀를 간정하였으며 벽곡방(辟穀方)을 권하였다. 《당서(唐書)》 권196 사마승정열전(司馬承禎列傳). ☞

[註 4892]방촌(方寸) : 마음. ☞

[註 4893]유묘(有苗) : 종족의 명칭으로 삼묘(三苗)라고도 함. 《상서(尙書)》 대우모(大禹謨)에, 순(舜)의 명을 받고 우(禹)가 유묘를 정벌하러 나섰으나 실패하여 돌아와 문덕(文德)을 닦으니 유묘가 투항했다고 하였다. ☞

[註 4894]왕보(王甫)와 조절(曹節)이 좌복(左腹) 속에 몰래 웅거하고 : 왕보는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 황문령(黃門令)으로 조절(曹節)과 함께 진번(陳蕃)과 두무(竇武)를 모살하고 중상시(中常寺)가 되었으며, 또 발해왕 회(勃海王悝)를 무고하여 죽인 뒤 관군후(冠軍侯)가 되었다. 그 뒤 사례 교위(司隷校尉) 양구(陽球)의 탄핵을 받아 옥중에서 죽었다. 《후한서(後漢書)》 권78 환자열전(宦者列傳) 좌복(左腹) 운운은 소인이 인군의 신임을 얻었다는 뜻으로, 《주역(周易)》 명이궤(明夷卦)의 육사 효사(六四爻辭)에 “좌복(左腹)에 들어가 밝음을 상실한 인군의 신임을 얻어서 문정(門庭)에 나온다.” 하였는데, 정이천(程伊川)의 전(傳)에 “간사한 신하가 암군(暗君)을 섬길 때에는 반드시 그 마음을 먼저 고혹시킨 뒤에야 밖에서 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

[註 4895]대건(大蹇) : 난처한 지경에 처했다는 뜻. 건(蹇)은 《주역(周易)》의 괘명(卦名)으로 험난함이 앞에 있어서 나아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

[註 4896]‘군자가 환란을 해소시켜 버리면 길(吉)하니, 이는 소인의 물러감에 징험된다.’ : 《주역(周易)》 해괘(解卦) 육오 효사(六五爻辭)의 말로, 주자(朱子)의 본의(本義)에서는 “군자가 해소시키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소인이 물러남에서 징험되는 것이다.” 하였다. ☞

[註 4897]서합(噬嗑) : 형벌. ☞

[註 4898]아 대부(阿大夫) 같은 자들은 거리낌없이 방자한 짓을 하고 즉묵 대부(卽墨大夫)같은 이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해체(解體)되고 맙니다. :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즉묵 대부를 불러 “그대가 즉묵에 거처하고부터 헐뜯는 말이 날마다 들리기에 사람을 시켜 살피게 하였더니 전야도 개간되고 백성은 자족하며 관청은 일이 없어 동방이 편안하였다. 이는 네가 나의 좌우를 섬겨 도움을 구하지 않아서이다.” 하였다. 또 아 대부를 불러 “네가 아에 있고부터 칭찬하는 말이 날마다 들리기에 사람을 시켜 살펴보았더니 전야도 개간되지 않고 백성은 가난에 굶주려 있었다. 그리고 지난 날 조(趙)나라에서 연(燕)을 공격했어도 너는 구언하지 않았고 위(衛)나라에서 설릉(薛陵)을 취했어도 너는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후한 폐백으로 나의 좌우를 섬겨 칭찬을 구한 것이다.” 하고, 이날 아 대부는 삶아 죽이고 즉묵 대부는 만가(萬家)를 주었다. 여기서는 이와 반대로 출척이 공정하지 못하여 간신일 날뛰고 현신이 위축됨을 말한 내용임. 《사기(史記)》 권46 전경중원세가(田敬仲完世家). ☞



선조 148권 35년 3월 25일 (정해) 007 /
정인홍의 상소를 등서하여 입계하라고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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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의 상소를 정원에 전하면서 일렀다.

“이 상소를 등서하여 입계(入啓)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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