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와 정인홍-11 [조선왕조실록]-동지부사 사직상소

by 杓先 posted Aug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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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51권 35년 6월 20일 (경술) 001 /
동지중추부사 정인홍이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물러가기를 청하다
(*.동지중추부사; 종2품, 왕명의 출납, 군사기무.등 업무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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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부사 정인홍(鄭仁弘)이 상차하기를,

“신이 삼가 고인들의 물러가기를 청한 경우를 보니, 일곱 차례 또는 열 세 차례나 상소를 올린 경우가 있었으며 심지어 수십 차례까지 올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오늘날 형세도 전일 진달한 바와 같이 물러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번거롭게 했던 것입니다.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니, 이토록 간절하게 반복하여 타이르셨으므로 눈물을 훔치느라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혼자서 생각해 보니, 신은 전하께서 ‘내가 물러가기를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고 하신 명을 받고부터 도로 도성 안에 머물고 있으면서 또 다시 두어 달이 지났는데, 특별히 역변(逆變)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감히 청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은 직임을 지니고서 의리를 범한 것 뿐만이 아니므로 불안한 마음 그지없고 낭패스런 형세가 날로 심하여 마치 백척 간두에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분수를 망각하고 개진(開陳)하여 그대로 아뢰기는 어려웠습니다.
또 생각건대,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임금의 명령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임금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은 뒤에라야 충효의 도(道)를 다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큰 매를 때리려 할 때는 도망쳐도 효는 그 가운데 있는 것이며, 법을 어기고 시행했으나 충성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4926) 이니, 만약 구구하게 명령만을 따르면서 임금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지 않는다면 이는 도(道)를 모르는 자입니다. 지금 신의 형편을 번거롭게 다 아뢸 수는 없으나 실로 날짜를 끌어가며 결코 머물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바입니다. 이 점이 신이 군부의 마음으로 신의 마음을 삼아 전하의 뜻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으로 귀함을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상의 비답에 ‘우선 기다리도록 하라. 내가 반드시 조처하겠다.’고 하셨으니, 이는 신이 더욱 황송하여 머무를 수 없는 점입니다. 전하께서는 장차 신을 어떻게 조처하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신으로 하여금 다시 머물러 지체하도록 하신다면 비단 신의 마음에 미안한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신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신이 직임을 지니고 도성에 머문 지가 오래 되었는데 지금 다시 그와 같이 한다면 식자(識者)들의 비난을 어찌할 것입니까. 비단 식자들의 비난뿐만 아니라, 전하께서도 만류하면서 마음을 의심하지 않으실지 기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하께서 이 늙은 신을 부르시어 결국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더욱 전하의 마음을 신의 마음으로 삼아 전하의 미덕을 성취해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점입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양찰(諒察)하소서.
쇠약하고 병든 신이 이제 도성 문을 나가면 결코 다시는 군부(君父)를 뵐 수가 없을 것이기에 마정란(馬廷鸞)의 눈물4927) 을 금하지 못하여 한 마디 말씀을 올려서 떠나는 신의 몸을 대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사욕을 막으며 어진이를 구하고 인재를 기르라.’는 것은 송(宋)나라의 신하 정호(程顥)가 당시 임금에게 고했던 말입니다. 군자와 소인은 형세상 반드시 한쪽이 지게 마련인데 군자는 이기지 못하면 몸을 거두어 물러가 도를 즐기며 민망히 여기지 않지만, 소인은 이기지 못하면 무리를 지어 온갖 술수를 다 부려서 기필코 이기고서야 그만두며, 그들이 뜻을 얻게 되면 선량한 이들에게 독을 부리므로 아무리 천하가 어지럽게 되기 않기를 바라지만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부필(富弼)이 그 임금에게 고한 것4928) 이니, 이것이 바로 자신을 수양하고 사람을 임용하는 술(術)이며 정치를 하는 법도이니, 다른 데서 구할 바가 아니므로 신이 다시 전하께 고합니다. 그리고 전일 진달한 바 나라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 사랑하듯이 하고 마음 수양하기를 몸 봉양하듯이 하라는 말씀을 거듭 아룁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시어 끝까지 중단하지 않으신다면 ‘말이 행해지면 도(道) 또한 행해진다.’고 한 고인(古人)의 말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신은 돌보아 베풀어주신 전하의 은혜를 거의 보답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물러가더라도 물러가지 않는 것이며, 죽어도 눈을 감을 것입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았다. 경이 비록 물러가더라도 반드시 나의 허락을 기다려 물러가야 할 적당한 때가 된 뒤에 조용히 물러가도 늦을 것이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토록 급급히 하루도 기다리지 못할 듯이 하는가? 경은 나의 지극한 뜻을 알도록 하라. 그리고 진달한 말은 실로 사리에 합당한 말들이니 마땅히 경을 위하여 깊이 명심하겠다.”
하였다.
【원전】 24 집 390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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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4926]부모가 큰 매를 때리려 할 때는 도망쳐도 효는 그 가운데 있는 것이며, 법을 어기고 시행했으나 충성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 : 부모나 임금의 본심을 알아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8에 “순(舜)은 작은 매는 맞았지만 큰 매는 맞지 않고 도망쳐서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다.” 하였고, 한 무제(漢武帝) 때의 직신(直臣) 급암(汲黯)은 하내(河內) 지방의 화재를 조사하러 나갔다가 가뭄이 들어 굶주리는 것을 보고는 황제로부터 받은 부절(符節)을 이용, 하내 창고의 곡식을 풀어 빈민을 구제해 주고, 귀임하여 무제에게 사실을 복명하면서 황제의 명을 가탁한 죄[矯制罪]를 받겠다고 청하였으나 무제는 훌륭하게 여겨 용서해 주었다. 《한서(漢書)》 권50 급암 열전(汲黯列傳). ☞

[註 4927]마정란(馬廷鸞)의 눈물 : 마정란이 국사를 걱정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물러간 일. 송 도종(宋度宗)이 마정란의 재상직 사임을 만류하자, 정란은 눈물을 흘리면서 “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다시 폐하를 뵙지 못할 것입니다.……폐하께서는 원로 대신들과 영구한 계책을 도모하소서.” 하고 물러갔다. 《송사(宋史)》 권414 마정란 열전(馬廷鸞列傳). ☞

[註 4928]부필(富弼)이 그 임금에게 고한 것 : 송 신종(宋神宗) 때의 재상 부필이 인재의 등용에 관하여 “군자와 소인의 진퇴에 왕도(王道)의 소장(消長)이 달려 있는 것이니, 깊이 분별하고 살펴서 자신의 뜻에 맞느냐의 여부에 따라 희로(喜怒)하고 희로에 따라 인물을 버리거나 등용하지 마소서.”라고 한 말을 말한 것이다. 《송사(宋史)》 권313 부필 열전(富弼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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