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와 정인홍-13 [조선왕조실록]-관직제수와 사직 반복

by 杓先 posted Aug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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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52권 35년(1602년) 7월 3일 (임술) 001 /
홍진•윤형•정인홍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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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政事; 인사발령)가 있었다. 홍진(洪進)을 행 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로, 윤형(尹泂)을 무성군(茂城君)으로,【윤형은 유릉(裕陵)의 수릉관(守陵官)으로서 이미 3년을 마쳤는데 이 때에 와서 자헌 대부(資憲大夫)로 올라 이 직에 제수되었다.】 정인홍을 공조 참판으로,【인홍은 이미 귀향했는데 상의 소명(召命)이 있었기 때문에 전조(銓曹)에서 이렇게 의망(擬望)하였다.】 윤안성(尹安性)을 북도 병사(北道兵使)로, 김대래(金大來)를 사간원 사간으로, 정혹(鄭㷤)을 의정부 사인으로, 유색(柳穡)을 사간원 정언으로, 이민성(李民宬)을 시강원 사서로, 채형(蔡衡)을 예조 좌랑으로, 백대형(白大珩)을 형조 좌랑으로, 성준구(成俊耉)를 시강원 설서로, 윤수겸(尹守謙)을 승정원 주서로, 이계선(李繼先)을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김윤신(金潤身)을 선천 군수(宣川郡守)로, 강인(姜絪)을 배천 군수(白川郡守)로, 권두문(權斗文)을 간성 군수(杆城郡守)로, 홍여성(洪汝誠)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오대남(吳大男)을 진도 군수(珍島郡守)로, 구계(具棨)를 평양 판관(平壤判官)으로, 문덕교(文德敎)를 흥덕 현감(興德縣監)으로, 정괄(鄭适)을 연일 현감(延日縣監)으로 삼았다.



선조 152권 35년 7월 17일 (병자) 001 /
동지 정인홍이 성지를 받았으나 병으로 갈 수 없음을 아뢰다
(*. 동지; 동지중추부사를 일컫는다. 종2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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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부사 정인홍(鄭仁弘)이, 부르시는 성지(聖旨)를 집에서 공경히 받았으나 병이 심하여 길을 떠날 수 없다는 뜻으로 글을 올렸는데, 입계(入啓)하였다.



선조 152권 35년 7월 23일 (임오) 002 /
김수•이용순•정인홍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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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金睟)를 형조 판서로, 이용순(李用淳)을 지중추부사로, 정인홍(鄭仁弘)을 대사헌으로, 이광정(李光庭)을 첨지중추부사로, 김우옹(金宇顒)을 홍문관 부제학으로, 이유중(李有中)을 공조 참판으로, 우복룡(禹伏龍)을 충청 감사로 삼았다.



선조 152권 35년 7월 24일 (계미) 001 /
정원에 전교하여 정인홍을 설득해 반드시 올라오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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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전교하였다.

“대사헌 정인홍에게 올라오라고 하유할 때에 꼭 올아와야 한다는 뜻으로 정원에서 말을 만들어 돈유(敦諭)하라.”



선조 153권 35년 8월 21일 (경술) 001 /
대사헌 정인홍이 병으로 출사할 수 없음을 아뢰었으나 또 올라오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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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정인홍(鄭仁弘)이 ‘성지(聖旨)를 받들었으나 병이 심하여 길을 떠날 수 없다.’는 뜻으로 올린 서장을 입계하니, 정원에 전교하였다.
“올라 오라는 뜻으로 다시 말을 만들어 하유(下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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