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와 정인홍-18 [조선왕조실록]-영창대군 옹립사건

by 杓先 posted Aug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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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20권 41년 (1608년) 1월 18일 (병오) 003 /
전 공조 참판 정인홍이 영의정 유영경의 잘못에 대한 상소를 올리다

(註; 선조 말년에 왕의 의중에 따라 영창대군을 세자 광해군에 대신하여 옹립하려 하였다. 1608년 선조는 죽기 전에 영창대군을 부탁하였는데, 이때 저위문제(儲位問題)를 둘러싸고 대북과 소북이 논쟁을 벌여 그를 비롯한 소북 일파가 정인홍의 대북으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나 오히려 정인홍이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되었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 등이 유배 도중에서 돌아왔다. 청금록(靑衿錄)에서 유영경의 이름이 삭제되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관작이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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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조 참판 정인홍(鄭仁弘)이 상소하기를,

“신이 멀리 남쪽 지방에 있으면서 옥후(玉候)가 미령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난 봄부터 뜨음하여 일을 전일처럼 결재하여 적체하지 않는다고 하니 신의 생각으로는 의외에 생긴 병이므로 당연히 물약(勿藥)의 기쁨이 있으리니 약을 쓸 것 없다고 여겼습니다. 세월이 쌓여 10월에 이르러 옥후가 더욱 미령하시다 하니 중외가 당황하고 원근이 근심하였는데, 열흘이 못되어 즉시 회복된 경사가 있으니 이는 실로 천지가 도운 것이고 신명(神明)이 돌본 것인바, 종사의 다행함이 어떠하다 하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평일에 아직까지 원증(元證)이 한결같다는 하교가 있었다고 하니, 먼 지역에서 전해 듣고 몹시 민망스러움과 염려됨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영외(嶺外)에 있어 서울과 거리가 거의 천리나 되고 나이는 70이 넘어 안으로는 쇠퇴함이 극심하고 밖으로는 질병이 침범하여 시골에 움츠려 있으니 기력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약(侍藥)하지 못했으니, 죄가 매우 중하여 회피할 바가 없으므로 북쪽의 대궐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신이 국가의 후한 은혜를 받고 보답할 길이 없는데, 조만간 죽는다면 지하에서 무궁한 유감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지금 비록 스스로 조정에 나아가 충성을 바칠 수는 없지만 어찌 성명(聖明)의 시대를 만나 상소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혼자 생각건대 성후(聖候)가 아직 다 쾌차하지 않으셨는데 갑자기 미친 말로 성상께 아뢰니,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어찌 마음 속으로 불안함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다만 종사의 위험한 상황이 명확히 눈 앞에 있고 국가 존망의 기미가 조석에 박두했으니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하겠으므로 죽음을 무릅쓰고 입을 열어 거의 죽게 된 시기에 국가에 보답하려는 것이고, 고식적으로 부시(婦寺)의 충성을 하여 덕으로 임금을 사랑한다는 대의(大義)에 아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전하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신이 삼가 도로에서 듣건대 지난 10월 13일에 상께서 전섭(傳攝)한다는 전교를 내리자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마음 속으로 원임 대신을 꺼려 다 내어 쫓아서 원임 대신들로 하여금 참여하여 보지 못하게 하였고 여러번 방계(防啓)를 올리고 유독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공모하였으며 중전(中殿)께서 언서(諺書)의 전지를 내리자 ‘금일 전교는 실로 여러 사람의 뜻 밖에 나온 거사이니 명령을 받지 못하겠다.’고 즉시 회계(回啓)하여 대간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고 정원과 사관(史館)으로 하여금 성지(聖旨)를 극비로 하여 전출(傳出)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니, 영경은 무슨 음모와 흉계가 있어서 이토록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아, 중전의 깊고 진실한 분부는 전하의 뜻을 깊이 몸받았으니 국가를 위한 원대한 계획은 비록 옛적 송(宋)나라의 고후(高后)•조후(曺后)와 한(漢)나라의 마 태후(馬太后)•등 태후(鄧太后)처럼 어진 황후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경이 힘을 다해 가로막고 꺼리는 바가 없었으며 마땅히 비밀로 하지 않을 성지(聖旨)를 극비로 하고 내쫓지 않을 원임 대신을 내쫓았으니 중외(中外)에서 전해 듣고 여정(輿情)이 놀라고 분개합니다. 아, 국사(國事)는 한 집안의 사적인 일이 아니므로 원임 대신이 참여하여 듣는 준례가 있습니다. 영경이 원임 대신을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은 무슨 뜻인지 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임금께서 연고가 있으면 세자가 국가를 감독하는 것은 고금의 통례입니다. 영경이 여러 사람의 뜻 밖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대간이 듣지 못한다면 국정(國政)이 아니고 사적인 일입니다. 정원과 사관이 함께 비밀로 하였으니 이는 사당(私黨)이 있는 것만 알고 왕사(王事)인 줄은 알지 못한 거사입니다.
신이 상세히 진달하겠습니다. 전하께서 종사의 중대함을 깊이 생각하고 옥후(玉候)를 헤아려 세자에게 위임하고 한가히 조섭하려 하셨으니, 성명(聖明)의 하교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습니다. 신민들이 마땅히 함께 듣고 만물이 모두 보아야 하는데 더구나 원임 대신으로서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들의 음흉하고 속인 작태와 심사를 멋대로 부린 정상은 불을 보듯 환하여 엄폐할 수 없습니다.
아, 영경은 실로 간사한 자이지만 원임 대신들도 어찌 잘못이 없겠습니까. 정사에 이미 참여하여 들을 수 있었다면 어찌 영경의 방자함을 듣고도 묵묵히 쫓겨나기를 마치 양떼처럼 할 뿐입니까. 대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빈청에서 널리 의논하는 것은 바로 권간(權奸) 횡포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인데 끝내 이와 같다면 장차 저런 정승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심지어 여러 사람의 뜻 밖에 나온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이른바 여러 사람의 뜻이란 무엇을 지적한 것입니까. 만약 사당(私黨)이 원치 않는 바였다면 다만 소수 무리들의 음모와 간계(姦計)로 여러 사람의 뜻이라 지적하여 임금의 이목(耳目)을 속인 것입니다. 만약 온 나라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면, 혹 전위(傳位)하고 혹 섭정(攝政)하여 인심을 결집시키고 국가의 근본을 안정시키며 옥후(玉候)를 조섭하여 완쾌되는 경사를 빨리 부르는 것은 조정 신하들의 뜻이고 서울 남녀들의 뜻이며 온 지방 백성들의 뜻인데, 혈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같은 뜻을 여러 사람의 뜻이 아니라고 한 것이니 이는 현저하게 무군(無君)의 마음이 있어 감히 합조(盍朝)의 울음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신은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상의 뜻을 먼저 정하고 여러 아들 중에서 선택하여 세자의 지위를 바룬 일이 전하께서 아들을 잘 알고 한 것이 아닙니까. 의인 왕후(懿仁王后)가 자기 소생처럼 무육(撫育)하여 옥책(玉冊)에 실은 것이 전하의 본 뜻이 아닙니까. 대가(大駕)가 의주(義州)로 갔을 때에 분조(分朝)를 명하여 대조(大朝)와 소조(小朝)라 이름하고 감국 무군(監國撫軍)을 위임하여 백관들이 신하라고 일컫게 한 것이 전하의 분명한 분부가 아닙니까. 들어와 병을 간호하라 명하고 ‘생각해도 이에 있고 다른 자를 구해봐도 이에 있으며 명언(名言)도 이에 있고 성심(誠心)도 이에 있다.’ 여긴 것이 전하의 훌륭한 생각이 아닙니까. 세자가 입시(入侍)한 후로 밤중에 눈물을 흘리며 이슬을 맞고 서서 하늘에 원성(元聖)의 명(命)을 빌은 정성은 전하께서 아시는 바가 아닙니까. 대저 이 몇 가지 일은 성상의 마음으로 사랑한 바이고 하늘이 본 바이며 온 나라 사람들이 아는 바인데, 영경의 이간질이 이와 같으니 이는 세자를 업신여긴 것이고 천하를 배반한 것입니다. 옥체의 병이 비록 완쾌되지는 않았으나 차츰 회복되는 것도 세자의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소치입니다. 온 나라 백성들이 그 소문을 듣고 감읍하지 않는 자가 없어 모두가 ‘성상의 올바른 교훈이 이와 같고 세자가 효성으로 상하를 감동시킨 것이 이와 같으며 성부(聖父)가 현자(賢子)를 둔 것이 이와 같으니 국가의 복(福)이 무궁하다.’고 합니다.
물정(物情)의 다소(多少)로 말한다면 전섭(傳攝)하고 병환을 조리하는 일은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원하는 바인데 나라 사람 이외에 다시 여러 사람의 뜻이 있겠습니까. 그 말을 가지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면 후일 장차 스스로 사미원(史彌遠)이 되어 우리 동궁(東宮)을 제왕(濟王)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경이 스스로 세자를 해치려는 정상이 이미 폭로된 것을 알고 시기(猜忌)가 날로 극심하니 자신을 위한 모략이라면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영경이 다시 우리 임금의 아들을 세자로 여기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형세는 장차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간사한 계책을 이룩하여 마음이 상쾌한 뒤에야 말 것입니다.
삼가 조정에 의당 칼을 청하는 사람5814) 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10월부터 지금까지 그러한 소식 듣기를 기다렸으나 그런 사람이 없으니, 현재 요로(要路)에 있는 자 모두가 영경의 사인(私人)으로 영경이 있는 줄만 알고 전하가 있는 줄은 알지 못하며 차라리 전하를 저버릴지언정 차마 영경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간으로서 말하지 않은 자는 영경의 조아(爪牙)이고 대신으로서 묵묵히 따르는 자는 영경의 우익(羽翼)이며 정원(政院)과 사관(史館)으로서 사사로이 성지(聖旨)를 숨긴 자는 영경의 복심(腹心)입니다. 전하께서는 대신들을 팔 다리로 삼아야 하는데 대신들이 이와 같고 대간을 이목(耳目)으로 삼아야 하는데 대간이 이와 같으며 정원은 후설(喉舌)로 사관은 춘추(春秋)로 삼아야 하는데 정원과 사관이 또 이와 같아 전하께서는 위에서 고립되어 개미 새끼 하나 의지할 곳이 없고 어진 아들을 두고도 장차 보호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의 부자(父子)를 해치는 자도 영경이고 전하의 종사(宗社)를 망치는 자도 영경이며 전하의 나라와 백성을 해치는 자도 또한 영경입니다. 아, 참으로 세자가 당초부터 선택되어 사자(嗣子)가 되지 않았더라면 또한 한 명의 왕자일 뿐입니다. 어찌 동요시키고 위태롭게 하는 걱정이 이에 이르렀겠습니까. 이는 전하께서 처음에는 선택하여 사자(嗣子)로 세우고 끝내는 불측(不測)한 곳으로 들여보내는 것이니, 전하께서 일개의 흉신(兇臣)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다고 장차 현사(賢嗣)에게 화(禍) 끼치는 것을 면치 못하겠습니까.
송 고종(宋高宗)은 말세(末世)의 중주(中主)였고 또 질병이 없었으니 종실(宗室)의 아들 보안 왕(普安王)을 선택하여 사자(嗣子)로 삼고 인하여 손위(遜位)하면서 ‘훌륭한 사람을 얻어 부탁하니 나는 여한이 없다.’고 하였는데, 사신(史臣)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특별히 기록했고 군자는 요순(堯舜)의 선위(禪位)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지금 세자가 권섭(權攝)하는 것은 친한 것으로 말하면 친생자이고 인품으로 말하면 인자하고 효성스러운 덕이 있으며 시기로 말하면 옥후(玉候)가 미령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효성스러운 친아들에게 옥후가 미령한 때를 당하여 전섭(傳攝)하고 병을 조리한다는 명이 있으면 대신들은 마땅히 순종하기를 제대로 못할까 염려해야 하는데, 도리어 못된 마음을 품고 사(私)를 공(公)이라 하여 여러 사람의 뜻이 아니라고 하니 이런 짓을 한다면 무슨 짓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더구나 지난번 난리 중에 소조(小朝)가 남쪽으로 내려가 무군 감국(撫軍監國)하여 일국의 촉망을 오래 받았었는데, 대가(大駕)가 돌아오신 뒤에는 세자로 환위(還位)하였으니 전일의 법규가 이미 이루어진 것이고 사리(事理)가 정대합니다. 지금 권섭(權攝)하는 것은 바로 옛 일에 비추어 시행한 것이라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데, 영경이 속이고 저지하여 억제하고 남몰래 사주하며 멋대로 위협하고 내쫓아 한 번의 눈짓으로 전고(前古)에 없었던 일을 행하였습니다. 흉악함이 김안로(金安老)보다 심하여 항간에서 그를 지목하여 앞으로 차마 말 못할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이는 바로 세력이 성하여 다스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유영경이 이러한 짓을 하는 것은 전하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굳히고 국가를 멋대로 하려는 계획이 아닙니까. 이러한 것이 용렬하고 어두운 임금의 시대에 있다면 실로 멋대로 할 수 있겠지만 전하의 건강(乾剛)은 모든 사사로움을 굴복시키고 전하의 명석은 구석구석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데 감히 이와 같으니 신은 매우 의혹스럽습니다. 실로 어리석고 망녕된 자가 아니라면 아마도 혹 믿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신은 들으니 《주역(周易)》에 ‘지나칠 정도로 방비하지 않으면 이어 해칠 것이니 흉하다.’고 하였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종사(宗社)의 대계를 깊이 생각하시고 다시 과거의 전철을 거울삼아 간흉들의 정상을 명찰하시어 더욱 엄밀히 방비하고 혹 지나칠까 염려하지 마소서. 영경이 세자를 동요시키고 종사를 위태롭게 한 죄를 빨리 들추어 정당한 형벌로 다스려 계은(繼恩)과 창령(昌齡) 같은 간흉으로 하여금 후일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여 국본(國本)을 견고히 하고 종사를 안정시켜 억만년토록 끝없는 경사를 이룩하소서. 만약 신의 말이 지나친 생각이라고 여겨지면 먼저 망언(妄言)의 죄로 사형시켜 간사한 무리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소서. 그러면 신은 성명(聖明)의 밑에서 옳게 죽는 것이고 영경의 흉화(兇禍)에 죽는 것이 아니니 실로 다행스럽게 여길 일이고 한스럽게 여길 바가 아닙니다.
신은 실로 예로부터 권간(權姦)의 죄를 직언(直言)한 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장강(張綱)이 양기(梁冀)를 탄핵하고 호전(胡銓)이 진회(秦檜)를 죽일 것을 청한 것으로 말하면 모두 음해(陰害)를 입어 혹심한 화를 당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옛 사람은 임금을 시해한 이웃 나라의 역적에 대해서 비록 늙어 벼슬을 그만둔 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토벌할 것을 청했는데, 더구나 본조(本朝)에 있는 임금을 배반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흉적을 어찌 산직(散職)에 있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 성명(聖明)을 저버리며 불충한 신하가 되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천지 귀신의 책망을 범하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신은 지극히 황송함을 견디지 못하여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계(啓)자를 찍지 않고 도로 정원에 내렸다.
【원전】 25 집 383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역사-고사(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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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814]칼을 청하는 사람 : 한 성제(漢成帝) 시대에 주운(朱雲)이 괴리 영(槐里令)이 되어 상방검(上方劍)을 빌려주시면 영신(佞臣) 장우(張禹)를 죽이겠다고 상소하자, 성제가 성이 나서 주운을 죽이려고 어사에게 명하여 끌고 나가게 하니 주운이 궁전의 난간을 붙잡아 난간이 부러졌는데, 신경기(辛慶忌)의 요청으로 모면하였다는 직신(直臣)의 일. 《한서(漢書)》 권67 주운전(朱雲傳). ☞



선조 220권 41년 1월 21일 (기유) 005 /
영의정 유영경이 정인홍의 상소에 대해 자신을 변명하는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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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영경이 상소하기를,
“삼가 신이 전 참판 정인홍의 상소를 보니, 낭자한 말은 오로지 신이 세자를 동요시키고 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으로 지목하고 멋대로 악명(惡名)을 가한 것이 이르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신하가 이처럼 천지에 끝없는 원통함을 당하고도 만약 천일(天日)의 아래에서 명백히 분별하지 않는다면 살아도 세상에 스스로 설 수 없고 죽어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어찌 번거롭히는 것으로 혐의하여 지극히 절박한 말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성상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작년 10월에 상께서 오래 조섭하던 끝에 감기 증세가 갑자기 발생하니 모든 신하들이 당황하여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신은 약방 제조로서 차비문 안에 있었는데, 정원이 삼공을 명소한 전교를 전하고 이어 밀부(密符)를 내리기에 신이 좌의정 허욱, 우의정 한응인과 함께 부절(符節)을 맞춰본 뒤에 차비문 밖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정원이 전언(傳言)하기를 빈청에 물러가 기다리라고 하기에 신이 좌상•우상과 함께 빈청으로 나아가니 원임 대신은 이미 없었습니다. 신들이 전섭(傳攝)한다는 전교를 받고 삼가 생각건대 창황한 이때에 특별히 이러한 명령이 있으니 종사를 위한 대계(大計)로서 근본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여겼습니다. 신들이 성지(聖旨)를 순종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다만 상께서 몸소 만기(萬機)를 다스리지 못한 것은 겨우 하루 이틀뿐입니다. 우연한 감기 증세는 자연 약을 쓰지 않고도 회복되어 하루 이틀이면 거의 나을 것입니다. 여러 신하의 큰 소망이 오직 여기에 있는데 내지(內旨)가 갑작스레 이때에 내렸습니다. 회계(回啓) 중에 이른바 금일의 전교가 여러 사람의 뜻밖에 나왔다고 한 것은 실로 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더구나 왕세자가 이러한 명령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근심하던 중에 더욱 민망스러워 식사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으니 모든 신하와 백성이 누가 감동하지 않았겠습니까. 신들이 준수하지 못한 것은 곡절이 이와 같을 뿐입니다.
그의 말에 원임 대신을 쫓아내어 참관하지 못하게 하고 여러 번 방계(防啓)를 올렸으며 유독 시임 대신과 함께 하였다고 하는데, 신들이 빈청에 미처 이르지 않았을 때 원임 대신은 이미 나갔으니 이른바 쫓아냈다고 한 것은 신이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상께서 이미 삼공을 명소하였고 신들도 또 삼공을 명소한 부절을 맞춰 보았습니다. 그때 회계(回啓)하는 일은 마땅히 시임 대신이 해야 하므로 신들이 상의하여 회계하였고, 그 비망기와 회계한 초고(草稿)는 즉시 사인(舍人) 오백령(吳百齡)으로 하여금 원임 대신이 모여 있는 곳에 가지고 가서 보이게 하였습니다. 원임 대신이 한때에 참관하지 못한 것은 형편이 그러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대간이 듣지 못하게 하고 정원과 사관이 성지(聖旨)를 비밀로 하여 오래 전출(傳出)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평상시 비망기로 삼공에 내리면 회계한 후에 비망기와 회계한 초고를 주서(注書)가 으레 가지고 갔으니, 그 후에 대간이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는 대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왕세자의 총명과 효성은 천성(天性)에서 나왔고 춘궁(春宮)에서 덕을 기른 지 17년이나 되었으니 신민이 모두 추대하는 바이고 종사를 부탁할 바입니다. 본래 세자로 결정되어 국가의 근본이 이미 견고한데 인홍이 감히 전선(傳禪)의 일을 핑계삼아 은밀히 화(禍)를 전가시키려는 계책을 도모하고 참혹한 말을 지어내기에 극성을 부리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이간질이 이와 같다고 하였고, 시기가 날로 극심하다고 하였고, 음모와 비밀 계책이라고 하였고, 위태로움을 꾀하는 계책이 이미 탄로되었다고 하였으며, 심지어는 전하의 부자(父子)를 해친다고 하였으니, 그 말의 흉악함과 기만은 차마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차마 들을 수 없는 바입니다. 인홍이 이 말을 한 것은 지적한 것이 무슨 뜻이며 모함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성명(聖明)은 위에 있고 원량(元良)은 아래에 있으면서 사랑하고 효도하니 양궁(兩宮)의 흡족한 즐거움은 비록 왕계(王季)와 문왕(文王)의 부자(父子)라도 더할 수 없습니다. 인홍이 감히 터무니없는 망극한 말로 다만 신을 모함하려고 하며 궁극한 흉악에 스스로 빠지는 것은 알지 못하였으니 그 계책은 참혹하고 그 마음은 망녕됩니다. 사미원(史彌遠)은 송(宋)나라의 적신(賊臣)인데 인홍이 신에게 비유하였으니 모함한 정상이 극심하다 하겠고, 심지어 제왕(濟王)의 일을 들어 비교하지 못할 곳에 비교하였으니 그 마음 둔 바를 더욱 헤아릴 수 없습니다.
신은 외람되게 못난 자로서 지나치게 천은(天恩)을 입어 정승 지위에 있은 지 지금 이미 7년이 되었습니다. 오래도록 현로(賢路)를 방해하고 죄가 산처럼 쌓여 전후 비방을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오직 반성만을 생각하고 일찍이 스스로 진술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모함당한 것은 화(禍)가 일신에 미칠 뿐만 아니라 실로 종사(宗社)에 관계된 것입니다. 이 상소가 있은 후부터 심골(心骨)이 함께 놀라고 간담(肝膽)이 찢어지는 듯하였습니다. 석고 대죄한 지 이미 며칠이 지났는데도 형벌을 주지 않으니, 신하로서 이러한 악명(惡名)을 지고 하루라도 씻지 못하면 이는 하루의 역신(逆臣)이 되는 것이니 성명(聖明)께 호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신을 형관에게 내려 실상을 조사해서 신의 죄를 바로잡고 사람들의 말에 보답하소서. 몹시 원통하고 떨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정인홍의 상소를 보니 극히 흉악하나 다만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심병(心病)이 있어 똑바로 보지 못하고 슬쩍 보아 넘겼을 뿐이다. 그 중에 나에게 관계된 말이 있었으나 또한 말한 까닭을 모르겠으니 더욱 음흉하다. 인홍이 이유없이 임금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영상을 모함하였으니, 여러 소인 중에 영상을 모함하려는 자가 유언 비어를 조작하여 남쪽 지방에 전파시킨 것을 인홍이 주워 모아 이 상소를 한 것인가. 그 말을 비록 따질 만한 것이 못되지만 무사(無事)한 중에 일을 만들어 내어 지친간에 부득불 이로 인하여 의심하고 틈이 생겨 조정이 혹 조용하지 못하면 큰 불행이다. 스스로 반성하여 떳떳하면 비록 천만 명이 떠들더라도 어찌 혐의할 것이 있겠는가. 또 전교한 일은 원래 다만 삼공에게 전하게 한 것이고 범연히 대신에게 전한 것이 아니다. 저 떠드는 자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경은 안심하고 출사하고 개의하지 말라.”
하였다.
【원전】 25 집 385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선조 220권 41년 1월 21일 (기유) 007 /
진사 이정원 등이 유영경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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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유생(儒生)인 진사(進士) 이정원(李挺元) 등이 상소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적신(賊臣) 유영경은 음흉하고 교활한 자질로 끝없이 극악한 죄를 졌으면서도 정승 지위를 점거하고 천지간에 살아 있어 귀신과 사람들 모두가 분노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전 참판 정인홍이 의리로 목숨을 거고 멀리서 정론을 올렸으니 온 나라가 서로 경하하며 현륙(顯戮)을 기다렸는데, 이미 여러 날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성지(聖旨)가 없으니 여러 사람들의 울분이 하늘에 닿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2백 년 종사가 끝내 이 역신의 손에 무너져야 합니까. 신들이 보건대 흉악한 자들이 오래도록 실권을 장악하여 뿌리가 견고하고 기세를 마구 부려 세상을 속박하니, 조야(朝野)가 겁을 먹고 그들에게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마음 속으로는 그들의 잘못을 알지만 입으로는 말하지 못합니다. 원로 대신들은 그가 호척(呼斥)하는 대로 따르고 대각(臺閣)과 근시(近侍)는 그가 턱으로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여 국가의 위태로운 형세는 마치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누가 그들의 칼날에 맞서서 전하를 위하여 한 번 입을 열려고 하겠습니까. 인홍이 이미 말한 뒤에 흉당(兇黨)은 더욱 방자하여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고 언관(言官)으로 있는 자도 또한 대죄(待罪)하지 않으니 임금을 업신여기고 방자한 태도가 이에 이르러 더욱 현저합니다. 서리 밟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굳은 얼음이 이르게 되는 것이니 앞날의 화(禍)는 아마도 차마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들이 초야(草野)에 있으며 성상의 은혜를 많이 입었는데 교활한 자가 국가를 멋대로 하고 임금을 속이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아직까지 한 마디도 진동(陳東)5815) 처럼 아뢰지 못했으니 신들이 전하를 저버린 것도 매우 많습니다. 진심이 있으므로 울분이 격동하여 맹세코 이 역신과 함께 살지 않으려고 궁궐에 나와 호소하며 임금의 위엄을 범합니다. 전하께서는 빨리 영경의 죄를 바로잡아 신민(臣民)의 울분을 상쾌하게 하소서. 신들은 몹시 절실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비답은 아래에 이싸.】
【원전】 25 집 386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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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815]진동(陳東) : 진동은 송(宋)나라 사람. 흠종(欽宗)이 즉위하자 채경(蔡京)•동관(童貫)•왕보(王黼)•이언(李彦)•양사성(梁師成)•주면(朱勔) 등 육적(六賊)을 죽여 공론에 보답하라고 상소하였다. 고종(高宗) 시대에 진동은 이강(李綱)을 머물게 하고 황잠선(黃潛善)•왕백언(汪伯彦)을 파하자는 상소를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고 구양철(歐陽澈)도 상소를 올려 일을 논하니, 황잠선이 고종의 노여움을 격화시켜, 철과 함께 진동을 저자에서 참수(斬首) 하였다. 《송사(宋史)》 권455 진동전(陳東傳). ☞



선조 220권 41년 1월 22일 (경술) 005 /
정인홍의 상소에 불편한 심기를 정원에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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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기로 일렀다.
“정인홍이 세자로 하여금 속히 전위(傳位)를 받게 하려고 하였으니 그 스스로 모의한 것이 세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겠지만 실은 불충함이 극심하다. 제후의 세자는 반드시 천자의 명을 받은 뒤에 비로소 세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세자는 책명을 받지 못했으니 이는 천자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고 천하도 알지 못한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전위를 받았다가 만일 중조(中朝)에서 힐문하기를 ‘그대 나라에서 말하는 세자는 중조에서 책봉을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그대들 임금이 사적으로 스스로 전위하였다. 그대들 임금 자리도 천자의 벼슬이나 그대들 임금이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닌데 세자도 어찌 감히 사사로이 스스로 받겠는가. 중간에 그렇게 된 까닭이 있는가’ 하고 불측(不測)한 누명을 세자에게 더하고 대신에게 힐문하면 어떻게 결말을 짓겠는가.
나는 다만 일신의 고민으로 인하여 물러나려고 하지만 대신이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어찌 두루 생각하지 않고 조급하고 망녕된 사람의 생각과 같아서야 되겠는가. 대신이 어찌 다만 옛 임금이 물러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차마 못할 일이라고 할 뿐이어서야 되겠는가. 지금 인홍의 상소 때문에 위로는 내 마음이 불안하여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낮에는 밥을 먹지 못하며, 아래로는 대신과 대간이 모두 그 직책을 불안하게 여기니 전에 없었던 변고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은 자세히 알라.”



선조 220권 41년 1월 24일 (임자) 005 /
영의정 유영경이 자신을 변명하는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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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영경이 상소하기를,
“삼가 신이 흉금을 털어놓고 상소한 것은 명백히 조사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기를 기다려 기꺼이 형벌을 받으려고 한 것인데, 성상의 은혜가 하늘 같아 죄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따스한 뜻으로 위로하고 심지어 안심하고 출사하라고 하교하셨으니 신은 더욱 황공하고 민망하여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신이 무고를 당한 것은 어떠한 죄악입니까. 천지간에 용납하지 못할 바이고 신인(神人)이 모두 죽이려고 하는 바입니다. 분변하기 전에는 역신(逆臣)이니 결코 시간을 지연시켜 구차히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번거롭힘을 피하지 않고 두 번이나 호소하는 이유입니다.
당초 전섭(傳攝)한다는 명이 내려지자 여러 신하의 심정도 모두 몹시 민망스럽다 하였고 왕세자도 이 명을 듣고 한없이 당황하였습니다. 신이 좌우와 함께 상의하여 회계(回啓)하였으니 이는 실로 인정(人情)과 천리(天理)에 그만둘 수 없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계사(啓辭) 중의 말을 전용하여 이토록 교묘하게 끄집어내어 죄를 삼으니, 설령 그때 원임 대신이 꼭같이 참관하였다면 말없이 봉행하기를 정인홍이 말한 것처럼 하였겠습니까. 인홍도 사람입니다. 만약 이때의 곡절을 알았다면 비록 남의 사주를 받았다라도 그의 모함이 어찌 이토록 심하였겠습니까. 신의 나이 60에 임박하여 백발이 종종 있고 지위가 정승에 올랐으니 분수에 만족합니다. 구구하게 비는 바는 오직 국가의 안녕과 조정의 화합에 있는데, 인심은 흉악하고 세도(世道)는 점점 험난하니 신과 같은 자는 비록 세상에 있더라도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 번 물러갈 것을 청하였으나 이루지 못했고 성은(聖恩)을 탐하여 지금까지 머뭇거려 이러한 악명(惡名)을 받았으니 이는 신의 죄입니다. 아, 예로부터 소인에게 모함당한 신하가 어찌 적겠습니까마는 지금 신이 모함당한 일은 더욱 원통합니다.
이정원의 상소로 말하면 신을 적신(賊臣)이라고 배척하였으니 이는 신을 해치려는 간사한 자가 그의 정상이 성명께 모두 드러날까 염려하여 백방으로 모의하고 간교한 짓을 부려 반드시 그 계책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신을 사구(司寇)에게 맡겨 낱낱이 조사한 뒤에 형벌에 처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은 천지의 부모이시니 신이 모함에 빠진 것을 가엾이 여기고 신이 변명하는데 급급한 것을 살피시어 빨리 명백히 조사하라는 명을 내려 신의 죄를 바로잡고 사람들의 말에 보답하소서. 신은 몹시 원통하고 두려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경(卿)이 모함당한 실정과 인홍의 상소에 흉모(兇謀)가 들어있는 정상은 하늘의 해도 환히 아는 바이고 일국의 상하도 모두 아는 바이다. 어찌 간사한 자의 술책을 따져 변핵(辨覈)을 거행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의심스러워야 조사하는 것인데, 이미 자취가 없으니 이는 바로 모함이다. 또 무엇을 조사하겠는가. 통탄할 만한 것은 간사한 자의 흉악한 계책이 이르지 않은 바가 없어 임금까지 관련시켜 말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무군 반역(無君叛逆)의 무리이다. 조만간 반드시 탄로날 것이니 하늘이 어찌 이토록 간사한 자를 용납하겠는가. 마땅히 전지(前旨)를 따라 개의치 말고 안심하고 출사하라.”
하였다.
【원전】 25 집 388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선조 220권 41년 1월 24일 (임자) 006 /
정원에서 정인홍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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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도승지 권희, 좌승지 최염, 우승지 이형욱, 좌부승지 이경함, 우부승지 이덕온, 동부승지 유희분.】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그저께 본원에 내린 비망기를 보고 재삼 봉독(奉讀)하였습니다. 성명께서 정인홍의 상소에서 기만하고 중상 모략한 말을 이미 통촉하여 모함한 정상이 명백히 드러나 엄폐하기 어려워졌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명감(明鑑) 아래에 다시 덧붙이겠습니까. 다만 작년 이후로 성후(聖候)가 비록 조섭(調攝) 중에 있으나 모든 업무를 결재함에 있어 조금도 폐하지 않았으니, 10월 초에 우연히 감기 증세가 있자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 경사가 있기를 며칠 간 기다린 것은 온 나라 여러 사람들의 지극한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섭(傳攝)한다는 하교를 받자 대신들은 당황하고 염려하는 중에 다만 병이 없기를 갈망하고 감히 성지(聖旨)를 봉행하지 못한 것이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지금 정인홍이 계사(啓辭) 중에서 무정(無情)한 말을 끄집어내어 모함하고 화(禍)를 전가시키려는 계책을 세웠으니, 아, 참혹합니다.
더구나 우리 왕세자가 저궁(儲宮)에 정위(正位)하여 국가의 근본이 이미 안정되었으니 책명(冊命)이 내려오는 것은 비록 지속(遲速)이 있지만 책봉을 청한 상소는 황제에게 이미 도달되었으며 종사(宗社)와 신인(神人)이 의탁한 지가 오랜 세월이 되었습니다. 성후(聖候)가 미령한 때를 당해서는 근심이 모습에 나타나 침식을 폐하고 밤이 새도록 노립(露立)하여 정성이 하늘에 다다랐습니다. 내지(內旨)가 내려오자 당황하고 민망스러워 처할 바를 모르고, 강관(講官)으로 하여금 사부(師傅)를 간절히 유시하여 기필코 지성으로 임금의 뜻을 돌이키게 하였으니, 대신이 성지(聖旨)를 순종하지 못한 것도 왕세자의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지방에 있는 신하로서 그 사이에 말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한 번 흉악한 상소가 들어오고나서부터 대신과 대시(臺侍)가 모두 그 직책에 안정하지 못하니 이는 실로 전고에 없었던 변고이며,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성상의 하교에 ‘내 마음이 불안하여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낮에는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면 부지 불식간에 심장이 모두 찢어지는 듯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모함한 이 상소로 동념(動念)치 마시고 마음을 화평하게 가져 섭양(攝養)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신들의 구구한 소망입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뜻을 알았다. 모두 지극한 뜻임을 알겠다.”
하였다.
【원전】 25 집 388 면
【분류】 *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선조 220권 41년 1월 25일 (계축) 003 /
정인홍의 상소로 왕세자가 비통한 심정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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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가 아뢰기를,
“신이 못난 자질로 감당하지 못할 지위에 있으므로 밤낮으로 근심하며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상후(上候) 미령함으로 인하여 갑자기 전섭(傳攝)한다는 명을 내리시니 신은 죽으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의 회계는 어찌 신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뜻밖에 정인홍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만들어 위로 천청(天聽)을 번거롭혔습니다. 성상의 하교에 ‘지친간에 부득불 이로 인해 의심하여 틈이 생기겠다.’고 하셨으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신은 만 번 죽는 것 이외에는 다시 상달할 바가 없으니 땅에 엎드려 황공할 뿐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근래 인심이 극히 흉하여 기필코 조정에 일을 일으키려고 불측한 말을 만들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니 몹시 마음이 아프다. 세자는 명위(名位)가 이미 결정되어 내가 세자와 조금도 틈이 없는 것은 하늘이 아는 바이다. 누가 감히 흉역한 마음을 두겠는가. 저 소인들이 스스로 흉악한 계책을 만들고 일망 타진의 계책을 꾸며 조정을 괴란시키고 부자(父子)를 이간시키려고 하였으니 그 마음이 몹시 흉참하다. 그러나 이는 입에 담을 것도 못되니, 세자는 안심하고 치지 도외하라.”
하였다.


선조 220권 41년 1월 25일 (계축) 004 /
왕세자가 궁관에게 어제 받은 비답을 보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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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가【강원(講院)에.】 하령(下令)하기를,
“내가 불초한 자로서 세자 지위에 있으므로 밤낮으로 염려가 되고 혹시라도 부탁한 성상의 뜻을 저버릴까 두려워서 항상 삼가고 조심하여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작년 10월 성후(聖候)가 미령한 중에 갑자기 감당하지 못할 성교(聖敎)를 내리셨다. 나는 이 하명을 듣고 심신이 흩어져 차라리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었으나 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강관(講官)을 보내어 사부(師傅) 앞에 간절히 청하여 정성과 힘을 다해 기필코 임금의 뜻을 돌이키고야 말도록 하였으니, 이는 나의 지극한 심정으로서 귀신에게 질정할 만한 것이다. 뜻밖에 정인홍이 차마 말하지도 듣지도 못할 말을 만들어 위로 성상께 번거롭게 아뢰었으니, 조섭하는 이때를 당하여 성상의 마음을 위에서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현사(賢師)가 아래에서 원통함을 호소하게 하였다. 엄한 비답을 누차 내렸을 뿐만 아니라 침식(寢食)이 불안하다는 하교까지 있었으니 내가 놀라고 민망스러운 심정은 어찌 한이 있겠는가. 근일 이래로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도 먹지 못하며 당황하고 염려되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제 절박한 심정을 대략 진술하여 성상께 호소하였는데, 성상의 비답이 이와 같으니 다 읽기도 전에 감격의 눈물이 스스로 떨어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궁관(宮官)은 나의 동료이다. 비록 안에서 한 일이지만 불가불 서로 알아야 하겠으므로 감히 봉하여 내리니 본 뒤에 즉시 들여보내라.”
하니, 입번(入番)이【유영근(柳永謹)•김성발(金聲發) 등이 26일에 회달(回達)하였다.】 회달(回達)하기를,
“신들이 어제 하령을 받고 또 계사(啓辭)와 성상의 비답을 보고는 감격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다만 하령 중에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도 먹지 못한다고 하셨으니, 신들은 염려되고 민망스러워 상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인홍의 모함과 흉악한 정상은 성명께서 통촉하고 공론이 격발(激發)하여 죄인을 찾아 이미 귀양보내는 형벌을 보였으니 온 나라의 신민들이 모두가 통쾌하다고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저하(邸下)께서는 마음과 생각을 편안히 하여 신들의 구구한 생각에 부응하소서.”
하였다.
【원전】 25 집 388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人事)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선조 220권 41년 1월 26일 (갑인) 003 /
정언 구혜가 전 참판 정인홍•전 사인 이경전•전 정랑 이이첨의 귀양을 요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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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 구혜가 내계하기를,
“신들이 삼가 정인홍의 상소를 보니, 그 뜻은 대개 유영경을 모함하려고 하는 것인데 임금을 동요시키고 지친(至親)을 이간시킨 정상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로부터 소인이 집정자를 모함하고 자기의 사사로운 일을 성취시키고자 한 자가 한없이 많지만 이처럼 지극히 흉악하고 교활한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저 인홍은 남의 사주를 들어 시행한 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는 실로 몹시 간사한 자가 흉계를 품고 유언 비어를 날조하여 초야(草野)에 있는 사람의 손을 빌어 남몰래 흉악한 계책을 성취시키려고 한 것이니 몹시 애통한 일입니다.
신들이 듣건대 작년 초겨울 성후가 미령하여 전섭(傳攝)한다는 명을 내릴 때, 약방(藥房)이 약을 잘못 썼다는 말과 전섭(傳攝)을 방계(防啓)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이 모두 이산해(李山海)의 집에서 나왔으며, 이경전(李慶全)•이이첨(李爾瞻)의 무리가 낮에는 흩어지고 밤에는 모여 백방으로 모함을 꾀한 것은 입이 있는 자는 모두가 말하고 귀가 있는 자는 모두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유경종(柳慶宗)에게서 약을 잘못 썼다는 논란이 갑자기 이때에 나왔으니, 경종은 바로 그들의 붕당(朋黨)입니다. 일국의 공론이 모두 이경전과 이이첨의 흉계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으므로 그때 대간의 계사(啓辭) 중에 이른바 뜻을 잃은 무리라고 한 것은 이를 지적하여 말한 것인데, 군자가 소인을 다스릴 때에는 항시 너무 후하여 우선 그대로 두고 논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음흉한 무리들이 흉악함을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계책을 성취시키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 또 근거가 없고 불측한 말로 남몰래 인홍에게 사주하였으니, 인홍은 바로 산해(山海)의 심복입니다. 한 번 그 말을 듣고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일을 도맡아 터무니 없는 거짓을 꾸미는 데 온갖 힘을 다했고 흉악하고 참혹한 말을 하는데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며, 영경 한 사람을 모함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하로서 차마 말하지도 듣지도 못할 일로 동요시키고 이간시키는 데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이정원(李挺元)의 상소에 연명한 사람으로 말하면 대부분 그 무리들의 친속(親屬)이니, 이 상소가 그들 무리에게서 나온 것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계책이 이루어진다면 어찌 사림(士林)에게만 화를 전가시킬 뿐이겠습니까. 종사(宗社)에까지 화가 미칠 것이니, 이를 생각하면 심장이 다 찢어지는 듯합니다.
아, 우리 세자는 천성이 효성스럽고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졌으며, 위로는 천자에게 아뢰어 천자가 알고 아래로는 팔방(八方)에 고하여 팔방이 추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온 중국 장수들이 몸소 뵙지 않은 자가 없으니 이는 천하가 본 것이고, 무군(撫軍)의 명을 받고 재조(再造)를 도왔으니 공로가 종사에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결정하고 천자께서 알며 천하가 보고 종사가 의탁하였으니, 위태로운 시기에 선위(禪位)한다는 전교를 내려 근본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계획은 전하의 원대한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사부에게 간절히 유시하여 전교를 내릴 때 지성으로 임금의 뜻을 돌이키도록 한 것은 세자의 효성스러운 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전교와 세자의 말은 비록 문왕(文王)의 지극한 사랑과 지극한 효도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를 당하여 설령 인홍의 무리들이 곁에 있었다 한들 아무 말없이 전교를 받들기만 하고 방계(防啓)하지는 않았겠습니까. 아니면 운운한 것처럼 순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심사를 추구해 보건대 만약 다른 일로 영경을 모함하면 해치지 못하고 반드시 부자간(父子間)의 일로 임금의 마음을 동요시킨 뒤라야 이에 제거할 수 있다 여겨 마침내 근거없는 말로 불측한 화를 구성하여 시배(時輩)를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으니, 만약 전하와 같은 아버지, 세자와 같은 아들이 아니었다면 양궁(兩宮)이 틈이 생기지 않았겠으며 사류가 어육(魚肉)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임금이 신하에 대하여 간사한 자 모르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알면서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간흉들이 더욱 꺼리는 바가 없어 장차 계속하여 일어나 반드시 국가를 전복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양궁을 이간시키고 사림에게 화를 전가시킨 그들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참판 정인홍, 전 사인(舍人) 이경전(李慶全), 전 정랑 이이첨을 아울러 우선 멀리 귀양을 보내어 국시(國是)를 정하고 인심을 진정시키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원전】 25 집 390 면
【분류】 *왕실(王室)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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