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도올11회, 장학량의 마지막 사랑, 임진왜란 충무공

by 정순영 posted Mar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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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5/15 일) 오후 08:30 \'차이나는 도올\' 11회 방송 내용


0 제자들 : 박철민, 호란, 조승연, 신보라, 박재민,

알베르토, 박가원, 혜이니, 장성규, 박석우, 박석경

- 명량(영화) 김한민 감독이 특별 출연


[장학량의 마지막 사랑]


0 박가원: <자오쓰 샤오지에>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끝 사랑 자오쓰(趙一荻, 조일적, 자오이디)

- 별명: 자오쓰 샤오지에<조씨 가문의 넷째 아가씨> 란 뜻

⇒ 자오 (趙), 쓰(四 발음 ; 넷째 ), 샤오지에(小姐 xiǎojiě ; 아가씨)

팔방미인, 잡지 표지로도 많이 나옴

미녀라 말할 순 없지만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



* 자오이디(趙一荻, 조일적, 미국식 이름은 Edith Chao, 1912년 ~ 2000년)는 홍콩 태생의 중화민국 여성으로 중화민국 서북초비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장쉐량(張學良)의 2번째 부인


- \'자오이디\'가 언니 따라 사교장에 간 거예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

목 좋은 데서 장학량을 기다린 거죠.



오케스트라 반주

왈츠를 추며 사랑에 빠진 두 사람

그 후 상사병에 걸린 자오쓰



그해 여름 북대하 해변에서 숙명의 재회



그 뒤로 장학량이 좀 아파요.

자오스가 천진에서 심양으로 날아가죠.

간호하고 그냥 가면 되는데... 계속~~



유부남과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던

아버지 조경화의 결단, 신문에 딸과의 의절을 알림



- 5일 연속 신문에 게재된 알림글 ; 난계조연익당계사

(蘭溪 趙燕翼堂 啓事, 난계의 조씨 연익당에서 알리는 글)


넷째 딸이 최근 들어

자유평등 사상에 현혹되어

사사로이 도망쳐서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됐다.

집안의 가규 家規 제19조에 따라

그녀를 족보에서 삭제한다.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장학량에게 압박을 가한 거지.

내 딸을 책임져라!!



장학량의 본처 우봉지 于鳳至 ,

- 자오쓰에게 조건을 제시

조건1. 본가에서 살 수 없다

조건2. 부인의 직함을 갖지 않는다



우봉지는 장씨수부(장작림의 본가)가

한눈에 보이는 예쁜 집을 지어줘요.

어차피 장학량이 거기 가서 살 걸 알기 때문에



서안사변 후 계속 가택연금 상태 ; 장학량 우봉지 부부

- 4년의 유폐 생활 중 유방암에 걸린 우봉지,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못 돌아옴(이혼)




그 동안 장학량은 대만으로 강제 이주

그 이후로 장학량의 곁을 지킨 자오쓰

- 만난 지 37년 만에 결혼하게 됨

죽을 때까지 73년을 해로, 하와이에 합장





0 승연) 정치가의 연애≠일반인의 연애



우리나라는 굉장히 민주적인 나라여서

보편적인 중산층의 도덕 가치관을

모든 계급에 적용시키는데

프랑스나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2014년 프랑스를 뜨겁게 달군

올랑드 대통령 스캔들

동거녀가 있음에도 ​18세 연하 여배우와 밀회



정치인의 염문설에 관대한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스캔들에는 비난 쇄도

프랑스 국민이 화난 또 다른 이유는?

Fashion 종주국 프랑스 대통령 패션이 저게 뭐야?!

낭만국가 프랑스의 이미지 손상!!

→ 나라마다 다른 가치관



0 수업을 알리는 딩동댕동! - 종소리




특별 손님 김한민 감독이 도올 선생님과 함께 등장

- 최종병기 활 연출, 각본, 명량 연출, 각본

새로운 역사물을 준비 중





[1760만 명이 본 ‘명량’]

어느 덧 2년이 됐어요.



도올 쌤 질문 ; 영화 속 등장한 배를 직접 만들었어요?



감독 답변 ; 그럼요!



실제로 바다에서 운용하고 기동할 수 있는 배 4척을 만들었고요.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판옥선) 한 척

일본의 대형선인 누각선(아타케부네) 한 척

일본의 돌격선이자 전투선(세키부네) 두 척

그 4척을 고스란히 상갑판만 만들어서 육지에서 찍을 수 있게끔

블루 스크린을 크게 치고 짐벌(Gimbal)이라고 요통치는 장치가 있어요.

그 위에 상갑판을 얹어서 찍었죠.



0 오늘의 강의 주제 ; 도올 김용옥이 이야기하는 임진왜란



0 도올 ; 軍人과 武士가 어떻게 다른 거 같아요?

​ - 일본을 무사 武士의 나라 ...라고들 하지요




- 같은 점 ; 무기를 소지

- 들고 있는 무기가 자기꺼냐 아니냐

무사는 내 꺼, 내 맘대로

군인은 조직의 것, 나라의 것

양아치는 무사

싸워서 센 사람이 항상 올라와요.



무사는 학술적으로 자율 무장집단

군인 = 타율 무장집단



이순신은 뼛속까지 군인이죠.

선조의 말을 100% 따라야죠.



일본에서는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 1467-1615

군사와 영토를 가진 지방 영주(다이묘)들이

난립해 싸우던 시기



토요토미 히데요시(1536-98), 일본 전국시대 당시

일본을 통일한 일본의 무장



완벽하게 프로페셔널하게 훈련받은 무사 무려 30만 명

8년 간 무수한 전쟁을 통해 일본 전국 통일

무사들을 무찌르고 나서 뭘 줘야 하는데 줄 게 없었죠.

개인 영지도 없고, 약 100년간 싸움에 익숙해진 무사들

자기 존재의 의미? 전쟁


조선은 군인의 나라

성리학의 국가, 무보다 문을 숭배했던 나라

조선을 지킨 명장의 출현 ; 그야말로 기적!



이순신(1545-98) ; 조선 왕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수군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쳐 국가를 보위한 성웅


전쟁준비라곤 아무것도 없어!



금강산에서 도를 깨달은 이율곡 선생이

끊임없이 선조한테 지금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습니다.

분위기가 수상합니다.... 라고 진언



왜냐하면 그때~~~

명나라(황제 ‘만력제’)는 주원장으로부터

군사들을 탄압해서 환관정치

붕괴지경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죠.

포르투갈을 통해 조총, 화약 제조법 유입

동아시아 최초로 서양식 총, 화약으로 무장

우리나라와 게임이 안 됐죠.


[하루 만에 끝났을 왜란]



1592년 4월 13일 오후 4시

부산 앞바다에 500척에

5만 명의 왜군 선봉대, 조선 침공 개시



4월12일에 이순신 장군 거북선에서

지ㆍ현자총통 대포 실험 완료



일본배들은 조총, 장창 등으로 무장한 안택선 (安宅船)

<안택형선(安宅型船, 이하 \'안택선\') ; 안타케부네>

일본의 해적 습관, 선체가 얇고 속도가 빠른 반면

대포를 싣지 못한 왜군 선박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선

- \'판옥선\' 板屋船으로 대비

판옥선 24척과 기동력 강한 거북선을 준비

* 판옥선(板屋船)은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전선(戰船)으로 명종 때 개발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전투선.

거북선의 모형(母型)으로, \'판옥전선\'이라고도 한다



정발( 鄭撥 1553-92 ; 본관 경주(慶州) ) ; 임진왜란 당시

부산 수비를 담당한 부산진 첨절제사



4월 13일 정발장군은 사냥을 가고 있었어요.


4월 30일 이순신 장군 장계 내용 중

지난날 부산, 동래 연해안 여러 장수들이 배와 노를 잘 정비하여...

...

적들이 뭍으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더라면 나라를 욕되게 하는 우환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당시 일본에서 배로 오려면

당진(카라쯔)에서 대마도(쓰시마)까지 10시간

다시 부산까지 10시간이에요.

꼬박 20시간 항해로 5만 명의 군사들이 파김치

그날 밤에 그냥 불화살만 쏴도 완전히 적벽대전으로 끝내는 거예요!


첫 날에 끝낼 수 있는 거였다고요!


[민중을 버린 왕, 선조]

이때부터 해서 1592. 4. 30 새벽, 선조가 도망을 치죠.


강남 봉은사→압구정 →용산→동대문



부산에 착륙한 거니까

한성에서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어.

왜냐하면 보급품 없이 이동이 불가능한 왜군



명을 칠려고 하더라도 호남지방을 터줘야 가는 거예요.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신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한성 도착 즈음 보급품(식량) 고갈

보급품 실은 왜군 선박

이순신과의 초기해전에서 모두 침몰



만일 한강에서 여객석, 수송선

조직해 대응했다면 한강에서 왜군을 깰 수 있었겠지



그런데 한강에 갈매기만 날아들었죠.



한강에서 전투를 포기한 조선군

집으로 뗏목 만들어 편안히 한강을 건넌 왜군



한성에 보관 중이던 조선군 화약이

자그마치 2만 7천 근

하나도 못 쓰고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것을 못 막았죠.



30일날 도망을 쳤으니 보름 이상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러면 충분히 대책을 세울 수 있었는데

선조 주변 문신들이

“상감마마, 한성을 버리시면 안 됩니다”

선조는 점쟁이들과 별점만 치고 있었죠.

우리가 이길 거라던데....하며 아무 대책 없이 지냄



왕이 전라도로 내려 갔어야죠.

이순신과 합세해 새로운 작전을 짜는 게

이게 국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냥 도망가는 거죠.

4월 30일 새벽

따르는 신하는 겨우 100명뿐

다 도망가고



비를 맞으며 100여 명의 신하와

피란길을 떠난 선조 말을 타고 가죠.

나머지는 다 걸어가고요.



도성을 버린 왕을 조롱하는 백성들

이팔자 저팔자 ㅆ팔자

비옷과 군복 입고 나서는 모양이

임금님 피난 가는 거라네.

-조선왕조실록 선조 25년 4월 30일


파주, 임진강을 지나는 피난길

배를 쫄쫄 굶고 가는 거죠.

백성들에게 밥 한 톨도 얻을 수 없는 상황


선조 조선 최초 서얼(서자) 출신 왕

사람이 비뚤어졌다고요.

그러니까 율곡과의 관계도

견제대상으로 여겨 혼자서 라이벌 의식

- 율곡이 그렇게 시무책을 올려도 듣질 않습니다.


진실로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목이 잘리는 혹독한 형벌도 두렵지 않습니다.

- 율곡 이이의 상소문 중



선조는 율곡에 대해 황당하다. 오버한다 하면서

그러면서 한 관직에 두지 않고 계속 부서 이동(뺑뺑이)


[앞날을 내다본 이순신]


피난길에서 백성들의 냉대를 겪은 선조

VS

왜국을 격파한 이순신은 영웅 칭호



- 왜군을 격파한데 대해 기뻐해야 하는데

선조 ; “(이순신) 이 죽일 놈!! 반역할 놈이구나.”



이율곡을 대했던 것처럼

율곡과 마찬가지로

제2의 라이벌, 이순신



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국난의 결정적 시기에 투옥당하는 이순신

여러 차례 모진 고문



선조의 명령;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게 국문하라”



그 때 이순신장군은 병이 들었어요.

명량해전 당시에도 몸이 거덜 나 있었다고요.



이순신 형제들 이름

- 이요신李堯臣 -이순신李舜臣 -이우신 李禹臣 - 이탕신 李湯臣



\'요순우탕\' 堯蕣禹湯 을 다 썼어요.



요순우탕; 상고시대의 요임금과 순임금, 하나라의 우왕, 은나라의 탕왕

을 합친 말로 최고의 성군을 뜻함



노량해전(1598년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군 선박 500척을 섬멸시킨 마지막 해전

7년 간의 전쟁 후 본국으로 돌아가던 왜군



Q. 노량해전에서 결사항전한 이유?



이유는 딱 하나! “여기서 나는 죽겠다”



그러나 앞으로 이놈들이

다시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도록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겠다.



역사에 교휸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이 당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1910년부터 또다시 일본의 식민지배



이순신 개인이 아닌 조선 민중 전체의 승리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민중의 승리, 임진왜란]

임진왜란 일본에게 당한 전쟁?

그런데 햇수로 36년 동안의 일제강점기

사실은 임진왜란도

1592~98, 일본 식민지나 마찬가지

그러나 위대한 차이가 있다!


임진왜란은 100% 조선 민중의 힘으로

일본을 대패시킨 대첩입니다!

우리가 수동적으로 당한 역사가 아니라

고구려 전투 이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승리의 역사!



명나라 군대가 없었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전쟁 치를 수 있었습니다



호남을 지킨 것은!


엄청난 의병활동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오히려 명나라 10만 대군에게

군량 공급하느라 또 그 횡포에 고생한 조선 민중



도올 가라사대

“명나라 군대 없이(훨씬 더 잘)

임진왜란 제압할 수 있었다”



전투에서 꽁무니 빼기 바빴던 명나라 군대

적군을 앞에 두고 접대에 동원됐던 조선군

원군이랍시고 조선군을 무시한 명나라 군대

일본과 내통해 이순신의 위치를 알려준 명나라 장수 진린 陳璘



강조 : 이순신 장군과 민중이 쟁취한

위대한 승리의 역사입니다! 꼭 기억해야 해!!



근데 여기 슬픈 얘기가 하나 있어요.



선조가 민중에 대한 원한

실록을 읽어보면 계속 ...

피난 중에 자신에게 야유하는

민중을 욕한 선조

왜적보다 민중의 반란이 더 두렵다



개성→평양→의주까지 도망을 가요

여차하면 명나라로 튄다



이 사건을 보면

임진왜란 전체가 하나의 세월호입니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것을...


뒤바뀐 공훈 - 이순신보다 호종공신을 더 높게 생각]

최종적으로 공신록을 만들 때

\"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扈聖宣武淸難三功臣都監儀軌\"

< 선조실록』37년 10월 29일조에 호성(扈聖), 선무(宣武), 청난(淸難) 삼공신(三功臣)에게 교서를 반사(頒賜: 왕이 물건이나 녹봉을 내려줌)한 의식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호성공신은 임진왜란 중에 서울에서 의주까지 선조의 피난길을 호종했던 86명의 공신을 말한다

- 선무(宣武)공신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문무대신이 나라의 중흥을 협찬한 공으로 책록.

- 청난(淸難)공신 1596년(선조29) 이몽학이 일으킨 반란을 홍가신이 평정한 공으로 책록>


선조가 임진왜란을 총평한 공식문서

실록에도 실려 있고 , 규장각에도 있습니다.



“이번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명나라 군대의 공에 의한 것,

우리나라 장수나 사졸들은 천병의 뒤꽁무니를 쫓거나

혹은 요행히 잔적의 대가리를 얻는 수준에 그쳤을 뿐이다.

당당히 왜적 장수 목을 베거나

적진 하나라도 제대로 함락치 못했다.

이중에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가

해상에서 적을 몇 명 찔러 죽인 것,

권율이 행주에서 이긴 것,

이 두 개의 사례가 약간 드러날 뿐이다.

만약 천병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대활약을 하게 된 유래를 논하게 되면

그것은 모두 나를 어렵게

의주까지 따라온 호종공신들이

하늘에 기도하듯 천조(명나라)에 호소하여

왜적을 토평하고 강토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선조 가라사대

임진왜란을 끝낸 것은 내가 명나라 군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천병(하늘 군대) = 명나라 군





生 거짓말이지



그래도 권율은 이름을 썼는데

이순신과 원균은 \'李元二將\'라 기재

= 이 씨 - 원 씨 두 장수

이름도 적지 않은 비하의 표현



여러분들 분명히 알아두세요.

이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성웅 이순신은

자기(선조) 말을 끌고 간 내관 김응수의 공 아래다.



호성공신;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위하며 따른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



임진왜란이라는 극심한 고통을 민중 전체가 겪었는데



어떻게 불과 38년만에

또 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날 수 있냐?



결국엔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가

끝나는 거예요.



청나라(1616-1912) 명나라 말기

만주 여진족 누르하치가 세운

중원정복왕조



그리고 청나라가 일어나는데

우리를 후방에서 건드리지만 말아달라는

외교전략


청나라가 보내 온 첫 문서에서

“요동은 원래 조선 국토다

지금 명나라 사람들이 그 땅을 빼앗았는데

너희는 명나라가 원수인 것도 모르고 신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효종의 북벌(청나라 정벌)

멸망한 명나라를 위해 청나라를 친다


[노예적 발상, 再造之恩]


소위 말해 \'재조지은\'이라고 해요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다시 건립하는 은혜를 줌

숭정;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 주유검朱由檢 의 연호

- 숭정(崇禎)은 중국의 왕조였던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의 연호(年號)




조선은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고 숭정 연호를 사용



청나라와 잘 교섭했으면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反面敎師(반면교사)

우리는 슬픈 역사를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지도자라는 겁니다.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국민에게 피해 안 가도록

정보를 조정



우리가 얼마나 고구려의 대륙적 기질을

망각하고 초라한 인간이 되었는가.



조선왕조 때 우리들의 모습

그런데 그 속에서도 장학량을 능가하는

이순신과 같은 거대한 인물들이 보이지 않게 계속

이 나라를 지켜왔다!



오늘의 차돌상(액자) 내용을 쓰겠습니다.



[시대 정신 浩然之氣]



호연지기라는 말을 알죠?!



맹자의 수제자 \'공손추 (公孫丑)\' 가 스승 맹자에게 질문

- 스승님의 장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맹자 답변 . 내가 잘 하는 게 두 가지 있소.

1. 나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2. 그리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건 자신 있다.



공손추 Q.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맹자A. 말로 하기 참 어렵다.

그 기氣됨이 지대지강至大至剛 하다.



곧은 것으로서 길러서

(* 直 ; 거짓말 없는 솔직함)



본성을 해침이 없다



내 몸의 기운이 6척 단신이라 할지라도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하다.



이게 고구려인들의 기상이라는 겁니다.


\'浩然之氣\' 해석 (한자 사전)


- 浩 넓을 호, 然 그럴 연/불탈 연, 之 갈 지, 氣 기운 기, 보낼 희

①도의(道義)에 근거(根據)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②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精氣)  

③공명정대(公明正大)하여 조금도 부끄럼 없는 용기(勇氣)  

④잡다(雜多)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自由)로운 마음

‘조선 반도’라는 말 좀 쓰지 마세요.

우리는 아시아 대륙의 주축

고조선 대제국의 후예



그 기상됨이

의로움과 도와 더불어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내 몸이 쪼그라지고 만다.



이것은 평소생활에서

의를 모아서 생겨나는 것

의로운 행동이 우발적으로 엄습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행동해서 마음에 만족치 못하는 것이 있으면

곧 시들고 마는 것이다.



호연지기야 말로

이 시대 젊은이들이 갖춰야 할 덕!

상무정신!


0 도올 선생님이 재민에게 제안

- 완전히 웃통을 벗고 푸시업을 정확하게 20번을 하자




- 도올 ; [모든 것의 근본은 ‘몸’]

부처의 해탈이나 예수의 천국보다 더 중요한 것은 修身(수신)이다

수신 ; 몸을 닦는다

인간은 몸으로 사는 것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대학 경전 1장>



인간이 산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몸 하나 지키고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큰 근심이 생기는 까닭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 제 13장 총욕약경장


나에게 근심이 있는 까닭은? - 노자 제13장




1)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총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是 謂寵辱若驚. 시 위총욕약경

2)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托天下.

오유하환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1)영화와 굴욕을 놀라는 것같이 하고,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같이 여긴다.

영화와 굴욕을 놀라는 것같이 함은 무엇을 이르는가?

영화를 나쁜 것이라 여겨, 그것을 얻으면 놀라는 것같이 하고,

그것을 잃으면 놀라는 것같이 하니,

이것을 일러 영화와 굴욕을 놀라는 것같이 한다고 한다.

2)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같이 여긴다 함은 무엇을 이르는가?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다면 나에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몸을 귀하게 여겨 천하를 다스린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

몸을 사랑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

[우리는 고구려의 후예]



0 박재민 배우의 차돌상 수상 소감 ; 처음에는

차돌상을 되게 받고 싶어 했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차돌상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느낌

배움이란 건 그런 게 아닌데

좀 반성을 많이 하는 11주였던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좀 많이 슬펐습니다.



국민은 어떻게 보면 힘이 없어요.

왜냐면 선조가 평양에서 그렇게

더 북쪽으로 가려고 할 때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엎드려서 가지 말라고 울부짖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것은 국민이었습니다.

국민이 때로는 우매하고 약해 보일지라도

호연지기를 갖고 있다면 가장 똑똑하고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우리 스스로이기 때문에

호연지기를 당부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아닐까

수상소감 대박 ...



0 김한민 감독님 ; 수업의 효과가 엄청나군요.



7년 전쟁을 쓰신 김성한 선생님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萬斬)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



* 만참 ; 만 번 목을 베다



국민들이 깨어있으면

...이 역사를 같이 지켜 나가시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결코 슬픈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0 김한민 감독의 소감

- 사실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교훈 중에 가장 큰 것이

역사를 통해서 잊지 않고

그게 반복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또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그냥 우리가 하나의 임진왜란

왜놈들이 난을 일으켰다가 아니라

그 7년이라는 전쟁이 얼마나 흉포했고

얼마나 처참했는지 그리고

그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거시적이고 또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비극적인 역사, 한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고

우리도 자긍심을 가지고

이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 이번주 시청자 퀴즈

Q.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돼란 당시

무패신화를 기록했던 장군입니다.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사했던 전투는?

- 노량해전

* 이 내용은 \'외국어 도전기\' 블로그의 레이나 님 글을 보완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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