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도올 7회, 시진핑 인생 총정리, 킹메이커 쩡칭홍 曾慶紅

by 정순영 posted Mar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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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도올 7회, 시진핑 인생 총정리, 킹메이커 쩡칭홍 曾慶紅

< 출연자들 강의전 대화 내용>


중국에서 二代 얼따이(금수저)로 인정받으려면?

1억 위엔 정도는 있어야.

우리나라 돈으로 약 177억 원!

이런 사람들(재벌2세)이 중국에는

6만 7천 명 가까이 있음

#후얼따이들의 이색 취미

무척 귀여운 알파카 사진!

페루나 남미에서 사는 동물인데

쟤가 태평양을 건너서 중국으로 왔어요.

부자들이 그냥 얘를 키우는 거예요.

가격이 수천만 원

또 병신년(丙申年) 원숭이 해!

피그미 마모셋이라는 다 커도 14~16cm

가장 작은 영장류 중의 하나

멸종위기등급 IUCN 관심필요종

#중국 부유층 #새해 선물 #불법밀매 극성

530만 원


cf. 달팽이족; 비싼 집값 때문에

비좁은 집에서 사는 사람

생쥐족; 북경 시내 지하 방공호에 사는 저소득층

北京에서만 100만 명 추정

중국의 놀라운 빈부 격차


모택동(주석 뽑힐 때 단 1표 반대) 이후 최대

시진핑의 지지율은? 99.86%


< 본 강의 내용>


왕국유 王國維(1877-1927) wáng guó wéi

​청말 민국초기의 대문호, 신문학의 개척자

못말리는 천재

문학, 미학, 사학, 철학, 금석학, 갑골문, 고고학 등등

특기: 문학

취미: 공부(물리학, 수학, 논리학)

언어 천재 10개 국어 능통, 유학은 일본에만 다녀옴


Q. 그런데 어떻게 죽었을까요? = 자결


이화원 어조헌(魚藻軒)에서 곤명호수를 들여다 보다가...투신

- 魚藻軒 yú zǎo xuān

藻 말 조 ; 물속 조류 식물

轩 수레 헌 ; 작은 집, 서재 등

이화원; 이허위안, 颐和园 yí hé yuán

- 颐(頤) ; 턱 이(보양하다. 휴양하다. 양생하다. 기르다)

​북경 서교에 위치한 청나라 황실 별궁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

사상가 왕국유의

인간사화(人間詞話) rén jiān cí huà

중국 문학의 경지를 서양의 철학, 미학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차원 높은 평론서


<인생 삼경계三境界 >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업적과

위대한 학문을 성취한 사람들은

반드시 세 차원의 경계를 거친다.”

<제1경계>

어젯밤 서풍이 불어

푸른 나무조차 다 시들었네.

나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끝이 없는 길을 끝없이 바라보네.

“昨夜西风凋碧树。独上高楼,望尽天涯路”


⇒ 우리는 험악한 세상에 던져졌는데

서풍에 푸른 나무도 시드는 험악한 세상.

그럴수록 인간은 높은 이상을 향해 발돋움한다



<제2경계>

몸이 말라

의대(衣帶)가 느슨해지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

너를 위한 근심에 초췌해지더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衣带渐宽终不悔,为伊消得人憔悴

⇒ 너를 위한 근심에 초췌해 지더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제3경계>

군중 속에서 그대를 찾아

천 번 백 번 헤매었지.

문득 고개 돌려보니

스러져 가는 희미한 등불 아래

그대가 있었다.

众里寻他千百度,蓦然回首,那人却在,灯火阑珊处


시진핑은 “내 인생을 이처럼 잘 표현해준 말이 없다.

중국 젊은이들이여 <인간사화>글귀를 되씹어다오.”


왕국유의 인생 삼경계 (三境界)

동양철학 전체를 이해해야 알 수 있어요.

오늘 얘기하는 것만 이해하면

내(도올) 학문의 진리는 여기서 다 끝나요.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山是山,水是水


인간이 태어나서 이 세계를 인식하게 될 적에

가장 소박하게 느끼는 인식 방법이에요.


naive realism(소박실재론)

사물은 우리가 지각하는 대로 존재하며,

지각하지 않더라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이론.


성철스님은 수행 단계에서

山不是山,水不是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라 했음

인생의 절망감이 온단 말이죠.

인간은 부정의 벽에 부닥쳐서

크아~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게 되는 거죠.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게 뭐냐! 하면서


스님께서 다시 하신 말씀

山是水,水是山

이렇게 됐어요.


무차별 경계, 모든 만물은

경계가 없이 평등하다고 보는 것


고승의 마지막 고찰, 네 번째 게송

山是山,水是水


“동양철학에는 (서양에서 말하는)

초월(transcendence)이 없습니다.”


칸트, 헤겔,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초월의 개념 # 서양철학의 기둥


항상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동양철학

한국인들이야말로 고조선부터 문화적 소양+ 철학을

쌓은 민족


* 시진핑 인생 총정리

0 도올의 포인트


시진핑의 아버지 혁명원로 시종쉰!

그러나 문화혁명 이전에 이미 숙청

정치적 변화 속에서

삶의 비애를 깨달은 시진핑

하방下放을 당하지만 북경에 도망 왔다가

다시 자발적으로 돌아감

인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겠다!

이를 악물고 견딘 7년간의 하방생활


1. 시진핑 아버지의 고향 섬서성에서

하방 생활, 엄청 고생을 했다 그랬죠?

어릴 땐 잘 먹고 자라서 체력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

농사뿐 아니라 취사, 세탁, 재봉 스스로 해결



2. 11번째에 공산당 입당이 됩니다.

운 좋게 1975년, 22세때 청화대 화학공학과에 입학

대학시절 4년 동안, 北京에서 생활

졸업하고 바로 국무원 판공청




3. 대학 졸업후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비서가 됨

(1979~82년)



실력자 껑빠오(1909~2000) 耿飇 경표 gěng biāo(빛날경, 폭풍표)

중국의 전 국방부장,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껑빠오의 비서가 됨

- 껑빠오는 시종쉰(아버지)과 오랜 전우 사이



실력자 껑빠오의 비서로 3년간 근무

이렇게 살다간

당 기관 사무원밖에는 안될 것 같다..라 생각해서

결단을 내린 거죠!

⇒ 하북성 정정현에서 부서기, 서기로 근무


이때 쓴 시가 있어요.

여러분들, 양주팔괴 扬州八怪 yángzhōubāguài 라는 걸 아는가?

- 청나라 양주에서 활약했던 여덟 명의 화가를 지칭

< 양주 ; 지금의 쟝쑤성[江蘇省] 중부, 장강(長江, 양쯔강(揚子江)) 하류의 북쪽에 위치>

그 중에 정판교 郑燮 zhèngxiè 라고 있어요.


정판교(1693~1765) ,원명은 정섭, 호가 판교

蘭, 竹에 뛰어났던 중국 청대의 문인화가

- 강소성 출생. 1752년에 60세로 퇴관한 후, 시ㆍ서ㆍ화로 세월을 보냈음.

대나무 그림에 시가 있어요.


꼿꼿한 대나무

청산을 꽉 물고 놔주질 않네.

바위를 뚫고 그 뿌리를 내렸기 때문.

천 번 부딪히고 만 번 때려도

흔들림 없이 서 있네.

동서남북 바람이여, 마음대로 불어라.

아무리 불어도 끄떡없으리.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 시를 인용한 시진핑의 詩


내 뿌리를 군중 속에 내리겠다.

동서남북 바람이여, 마음대로 불어라.

누가 나를 쓰러뜨리랴!

나는 꼿꼿이 설 수 있다.

성실한 일꾼 시진핑

“나는 시골로 가겠소”

껑빠오: 너는 군인으로서 장성까지 가라.

⇒ “아닙니다” 하고는

⇒ 인민속으로 들어가는 위대한 선택을 한다


4. 이렇게 하여 1982~85년까지

하북성 정정현에서 부서기, 서기로 근무

고생의 시작, 가보니 막막한 거야.

근데 거기가 어디?

상산常山 조자룡; 본명은 조운 [趙雲] ;

삼국시대 촉나라의 무장으로 자는 자룡(子龍).

유비를 보좌하며 장비, 마초 등과 더불어

오호대장군으로 불림.

호를 꼭 쓰는데 이 ‘常山’이라는 게

오늘날 하북성


상산 조자룡의 고향이란 것을 파악하고

뭘 하면 지역이 좀 살아날까?

< 성산 조자룡 공원을 조성>

정정현 상산 근무시절

영화세트장인 롱꾸어후우 조성

드라마 <홍루몽>의 촬영지로 유명세

지역 관광명소로 발돋움, 경제여건 개선에 기여하죠.

5. 그러다가 복건성 福建省 Fújiàn Shěng 으로 가서 17년 근무

↳ 중국 남동부 연안, 대만해협에 연해 있는 성

해상교역의 요충지 , 풍부한 자연과 역사


여기서 자그만치 17년을 근무합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

지역 개발을 위해 해외 기업 유치 중요


잠깐 심천에 대해 살펴보자.

심천​은 중국 광동성에 위치, 최초 경제특구로 지정된다.

중국경제발전의 신호탄으로 평가 받는다.

70년대 후반 심천 거주민들은 경제 활동을 위해서 홍콩으로 밀항했는데 이에 자극을 받은 한 인물이

\"여기에 홍콩 못지않은 특구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이상을 펼치게 하자\" 하며 심천 경제특구를 만든다.

​그가 바로 시진핑의 아버지 시종쉰이다



지도와 같이 70년대 후반 거주민들이

경제 활동하려고 홍콩으로 밀항을 했죠.



-- 시종쉰: “여기(심천)에

홍콩 못지않은 특구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이상 펼치게 하자”

심천 경제특구를 만듭니다.



시진핑은 이 복건성에서 아주 잘했어요. 탈 없이



하문시: 복건성 남부에 있는 도시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

중국 6대 경제특구 중 하나


경제특구로 지정될 때 시진핑이 하문에

해외 기업 유치 위해 다양한 노력

당시, 한국에도 옵니다

1995년 첫 방한

그때는 한국에서 얼마나 얕잡아 봤겠어요.

이때 우리가 잊지 못할 대접을 했더라면...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된다고요.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거예요.



복건성 재임 시절 대규모 공업촌 설립 등의 성과

일반적으로 각 성의 서기급 인물

6. 1997년, 중앙위원으로 선출



시진핑의 행운숫자, 151

1997년 제15차 당대회

중앙위원 193명 중,

리커치앙(당시 공청단 제1서기 신분) 포함



리커치앙(1955~)

현 중국 국무원 총리

제17, 18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시진핑은 97년에 복건성 부서기였고

중앙위원에도 못 들어가고

여기 후보위원 150명에도 못들어가요.



근데 뭐냐면 151위였다고.

왜 시진핑이 빠졌냐?

특별히 그 해에만 151명을 뽑습니다.

특별 선발 이유?

시진핑을 좋게 평가했던 당 간부들



중앙위원 후보에 들어간 것만 해도

이건 천행이고



7. 2002년 10월에 절강성 부서기 & 성장 대리로 부임


절강성(浙江省)은 복강성하고는 또 위상이 다릅니다.

대단히 급이 높죠. 이거는 벌써 대단한 일이죠.



성내 총인구 5,400만 명 이상으로

省급 행정구 중 10위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성(省) 중 하나

이해 5월에 아버님이 돌아가세요.

혁명영웅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절강성 부임 전 타계

국가에 헌신한 공로 인정받아

國葬으로 치러

장례를 상무위원급 국장으로 지냅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들이 문상객으로

- 지앙쩌민 ; 강택민 江澤民 jiāng zé mín

- ​후진타오 ; 호금도 胡錦濤 hú jǐn tāo

- ​원지아빠오 ; 온가보 温家宝 wēn jiā bǎo

상주가 시진핑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다는 게

아버지의 장례식이 정치적 호기

발로 뛰는 시진핑

그래서 그해 2002년 10월

절강성 부서기로 부임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정력적 행보

절강성 90개 현시 中

9개월 동안 69현시 민생ㆍ기업 시찰

결과를 전부 공표

모든 민원은 공정하게

의논해서 처리하도록 지시


완전히 새로운 기풍이 잡혔지요.

平安, 法治, 綠色 浙江을 만들자!!

2007년!

상해 권력 쟁탈전

츠언리앙위(1946~) 陳良宇 chén liáng yǔ

- 전 중국 상해시 당 서기 상하이빵의 핵심인물


상해 당서기면 중국권력위계에서 매우 높아요.

이 사람은 누구의 사람이었나?

상해파가 누구랬죠?

상해 출신 장기집권 원로 지앙쩌민

그의 심복중의 심복이었죠.

강택민은 차세대 리더로

누구를 올릴려고 했겠어요? 츠언리앙위


실제로 우수한 인물이에요!

brilliant 딱 상해스타일!

그런데!

당시 중국의 개혁개방이란 것이

너무 과도하게 관 중심으로

움직여가다 보니깐

중국 성장률 매년 10% 이상!

그건 병 아냐? 그걸 뭐... 찬양을 하고 말야.

성장 중심ㆍ개혁개방 찬양 풍조

성장률 6%되면 세상 망하는 걸로.



후진타오는 뭐냐면 이거

무지막지한 성장위주, 개혁개방에 문제가 있다!

국정의 원칙,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하니까



츠언리앙위가 용기 있게 후진타오의 ‘개혁개방 문제점 제기’

강력 비판

“자전거 바퀴는 계속 굴러야지, 멈추면 쓰러진다.

중국은 페달을 더 밟아야 한다”



후진타오 upset!

그래도 내가 국가 주석인데 그렇게 대놓고 하니까 화가 난 거지

강택민 전 주석이 왜 정책에 관여?

후진타오가 츠언리앙위 조사해!



천량우 陳良宇 18년형 선고. 츠언리앙위 스캔들

“상해 사회보장기금 사건”

사회보장기금 중 329억 위엔(약 4조 6천억 원)

횡령 사실 2006년 발각

- 이래서 陳良宇 OUT! 낙마



이러니까 상해 제1서기 자리가 공석!

어마어마한 일이죠.

왜냐하면

2007년 당대회를 앞둔 마당에

이 자리가 비었다.

상해시 제1서기 선발의 의미?

국가 차기 주석 자리 물망에 오르죠.

보장되는 겁니다.



이 자리를 가장 노린 사람이 누구겠어?



이구동성: 뿨시라이! (박희래, 薄熙來 bó xī lái )

리커치앙! 李克强 lǐ kè qiáng

시진핑은 후보에도 없었습니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운이 찾아온다”

시진핑의 킹메이커

여기서 우리는 \"쩡칭홍\"이란 새로운 인물을 알아야 합니다.

쩡칭홍(증경홍 曾慶紅 , 1939~) zēng qìng hóng

- 2003-8 중국 국가 부주석

- 제16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오늘의 주석을 만든 장본인

거의 100% 이 사람 덕분


나이가 14살이나 위예요.

어릴 때 종난하이에서 같이 자랐어요.

어릴 때부터 형 형 하며 따랐어요.


중앙군사위 판공청 비서할 때

바로 옆에서 같이 국가계획위원회

판공청 비서로 근무했어요.



1984년 쩡칭홍은

상해시 서기 비서장으로 발탁

강택민의 오른팔 등극

이 분의 특징은 뭐냐면

지앙쩌민 (강택민 江澤民 jiāng zé mín ) Line이면서도

후진타오 (호금도 胡錦濤 hú jǐn tāo )쪽과도 엄청 친해.



모두와 원만하게 지낸 쩡칭홍

양쪽으로 설득시킨 거예요


갑자기 그래서 시진핑을 상해 제1서기로 미는데

지앙쩌민이 OK하는 거죠.


8. 2007년 3월부터 10월까지 상해시 서기

재임 기간 7개월


쩡칭홍의 위대함이란 뭐냐면

어려서부터 시진핑이 크게 될 걸 알았고

평생을 관찰을 하면서

국가주석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었나 봐요.

딱 2007년에 시진핑 올라가는 걸 보고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 자발적 퇴임

싹 물러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릅니다.

멋있는 사람입니다. 구질구질하지 않아요.


철민: 진정한 킹메이커네~

시진핑이 상해시 제1서기로 천거되는 것을 보고 다급함을 느낀 후진타오는

다급한 쪽이 어디겠어요?

후진타오 - 리커치앙

2007 운명의 비밀투표



후진타오 ; 무슨 수를 내야겠다

후진타오는 2007년 제 17차 당대회를 앞두고 고위간부 북경 소집


지앙쩌민 등 당ㆍ정ㆍ군 지도자 400명

거기서 후진타오가 제안을 합니다.


차기 상무위원을 투표로 뽑자!

후진타오는 믿고 있었죠.

- 투표로 하면 리커치앙이 100% 승리!

지금 강택민에 대한 여론이 나쁘니까

그의 추천을 받은 시진핑이 불리할 것이다.


그런데!

9. 2007년 6월 25일 무기명 투표 실시했는데....

압도적으로 차기 상무위원 시진핑 선출

왜요? 이상한 거지?

그만큼 시진핑의 진실이 소리 없이 먹혀 들어간 거예요.

예상치 못한 결과에 후진타오의 속이 얼마나 쓰렸겠습니까.


재민 질문: 선생님!

- 후진타오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권력을 한꺼번에 이양 하잖아요.

근데 자기 라인이 아닌 사람한테

어떻게 마지막에

그렇게 신임을 보여줄 수 있죠?



⇒ 그렇게 함으로써

지앙쩌민 권력을 끊기 위해

결국은 자기가 논개가 되는 수가

최선의 수였다.

마지막 전략은 후진타오가 강택민에게 승리한 거죠.

중국 정치사에 무게를 더하는 나름의 합리성

알베 질문:

- 시진핑은 2002년부터 주석을 향한

야망이나 목표가 있었나요?


⇒ 시진핑은 절강성 성장을 할 때까지

스스로 주석이 되리라는 희망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해 서기가 되고선 이제는 나의 때가 왔다

시진핑의 대권 전략

2007년 3월부터 10월까지 상해시 서기 재임 기간 7개월

밖에 안 됐어요.

그 시간 동안에 작전이 뭐였냐?

모든 연설은 반드시 써서 낭독


즉흥적인 연설 없이 신중한 문구만 골랐다!

단 한 번의 애드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평가가 유명합니다.

“그의 언행에는 풍채가 없고, 특징도 없고

강직함도 없었으나 일체의 허물이 없었다.”

때가 왔다는 걸 알고 기다린 거죠.

우리가 이렇게 시진핑을 연구한 목적은?

우리를 알기 위해서

오늘 우리 입장에서

중국에 대해 바라는 것들

[도올, 시진핑에게 바란다]

임기까지 정책을 잘 수행해 주길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체중을 좀 빼시라라는게

내 첫 번째 부탁이고


반부패 전략 관철 中

반작용으로 모택동 숭배론을 부상시킴

- 이 문제는 난 허약한 점이라 생각해요.



- 왜냐하면, 2015년 9월 3일

북경 천안문 광장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



열병식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시진핑의 발언

30만 감군 선포!

7개의 군구를 5개의 전구로 개편

별이 우르르 떨어지죠.

군수출납, 예산 공개

군대 소속 기업 일괄 정리

제도적 개혁 실천 위해

사회주의 원칙을 표방한다.

그럴려면 모택동 찬양을 다시 해야죠.

알겠어요?

그런데 이건 역사의 후퇴라는 거예요.



하나만 말씀 드리면



1981년 6월 중공 11기 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역사결의”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전면 부정’을 선언



문화대혁명의 이론과 실천은

모두 착오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의미맥락에서도

혁명, 또는 사회진보로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영도자 모택동의

한판 착오 발동일 뿐이며

반혁명집단에게

이용당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당과 국가, 인민에게

엄중한 재난을 가져온

내란일 뿐이다.

모택동은 주요 책임을 져야 한다.

단지 그의 착오는

한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인간이

저지른 착오일 뿐이다.



그러면은 이걸 지켜라 이겁니다.

사회주의 원칙, 평등주의 원칙

반파쇼, 프롤레타리아혁명도 좋은데

사상적 근거를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에서 찾지 말고

중국 경전에서 찾아라! 이거예요.



그것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대를 중국선진철학으로

교육시켜 나가야만 미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그의 임기동안

우리가 얻을 것이 ‘많다’예요

시진핑 세대까지

한국에 대한 애착이 있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중국 공산당을 도와주면서

오늘의 혁명정부를 수립하는데

우리 조선의 젊은이들이

엄청 도움을 줬습니다.

이러한 情을 아는 시진핑



역사적 무게를 느끼며

한국을 바르게 바라보는 시진핑



남북대립 아닌

평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국가의 비전

평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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