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도올 8회,향수와 정지용, 율곡, 중국과 한국 고대사

by 정순영 posted Mar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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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도올 8회 방송 - JTBC (2016. 4/24) 방송내용>

제목 ;차이나는 도올 8회,향수와 정지용, 율곡, 중국과
한국 고대사

0 출연한 제자들: 박철민, 호란, 조승연, 신보라, 박재민,

알베르토, 박가원, 혜이니, 장성규, 김정훈


0 수업 전엔 역시 잡담!

철민) ⇒ 중국 4대 미인의 별명을



침어 낙안 폐월 수화.....라 한다

(沈魚 落雁 閉月 羞花)

* 미인의 이름은 <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1] 침어 서시 沈魚 西施 xī shī

물고기도 가라앉힌 미모

중국 춘추시대 월국의 미녀.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접근시켜

오나라를 멸망케 함


[2] 낙안 왕소군 ; 낙안(落雁) - 왕소군(王昭君) wáng zhāo jūn

기러기도 떨어뜨린(\"낙안\"의 뜻) 미모

중국 전한 원제의 후궁이었으나

강성한 흉노의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흉노의 왕에게 강제로 시집 보내짐



[3] 폐월 초선 閉月 貂蟬 diāo chán

달이 부끄러워 숨는 미모

- 후한 말기 때 사람. 사도 왕윤(王允)의 집 가기(歌妓)였다.

동탁(董卓)과 여포(呂布)의 후처(後妻)



[4]수화 양귀비 羞花 杨贵妃 yáng guì fēi

꽃이 부끄러워 할 미모

서양엔 클레오파트라, 동양엔 양귀비

155cm, 65kg ; 당시에는 이런 몸이 미인?


승연) = [중국 男과 女의 현실]


소생우생 행복일생

少生優生 幸福一生 shǎo shēng yōu shēng xìng fú yī shēng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계획 생육 정책

1978년부터 강제 시행한 산아제한 정책

한 가정당 1명의 자녀로 출산 제한

2명 출산하면 벌금이 3,500만 원(현재 기준)

단, 남아선호 사상은 그대로

여자아이 낙태는 물론 유기까지

​↓

최악의 성비 불균형

남자120 명:여100 명

0-14세 남자 1,900만 명이

짝을 못 찾을 것!


드라마 ‘사위 왔다’ 女壻上門了

nǚxùshàngménle

를 보시면

결혼 허락 위해 장모에게 현금 선물

결혼 후에는 장모 아침밥 차려주는 사위


안타까운 점은

가정내 여성의 권리는 올라가는 반면

사회생활에서는 여전히 제한적,

그래서 남성을 통한

성공을 이루려 한다고 해요.



혼인할 때 기준이 물질적으로 흐름

무가무차무혼

無家無車無婚

집 없고 차 없으면 결혼도 없다!


♪ 도란(도올ㆍ호란이 같이 합창)의 ‘향수’ ♬

정지용의 시 ‘향수’ 鄕 愁

(작곡 김희갑)

+

필기 40분 후

수업 시작! 차렷 경례!



철민Q. 선생님의 미美의 기준,

어떤 여인을 볼 때 설레십니까?

도올A. 나?

나는 뭐...

지나가는 모든 여자는 다 아름다워!

역시 <여자란 무엇인가>저자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자기가 체험 해보기 전에는

객관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어떤 관계가 생기고

거기서 어떤 느낌이 발생하고

아름다움은 체험의 세계지,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전 세계에서 내가 많은 나라에서 유학도 하고

공부도 하고 깊게 체험을 했잖아.

그런데 진짜 한국 여자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계에 없어.

평균적으로 볼 때



일본 여성은 차갑죠.

친절하고 예의 바른 건 말할 수 없지만

딱! 여기 얼음벽이 있다고.



중국 여성은 ... 좀 드세다 할수 있다.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순종하면서 양보하는 듯 하는데

결국은 제일 세다고!

당해내는 남자 있나 보세요?

한국 여성이 최강자인데



기승전-한국여인은 아름답다



[‘향수’의 숨은 이야기]



정지용(1902~?)

한국 현대시의 모든 가능성을 확립한 시인

김소월과 같은 나이고.

서정주의 추상주의,

김소월의 토속적인 맛도 있고.

20세기 한국의 최고의 시인

시의 星座(성좌)로 불립니다.



우리말을 발굴

그 의미를 발현하는데 탁월했어요.

21세부터 시작, 25세 등단,

34세 <정지용 시집> 출간



본인의 시와는 다른 파격적인 시

‘향수’는

서정적, 토속적 느낌입니다.

어렸을 때의 소박한 자신의 언어로 쓴 거죠.



- 고향은 충북 옥천

- 경력은

1945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1945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1939 문장지 추천위원
1933 구인회


♪ 향수 鄕 愁 가사
(정지용 鄭芝溶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돗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지줄대다’: ‘주절대다’의 방언

; 낮은 목소리로 말을 계속하다

- 지줄대는 옛이야기는 \'오래된 우리민족의 역사\'라고도

할수 있다

‘해설피’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없어요.

설핏하다 [형용사]

1. 사이가 듬성듬성하다

2. 해의 밝은 빛이 약하다



해+ 설핏하다

; 해가 뉘엿뉘엿 져, 빛이 약하다



‘잊힐리야’ 언어감각의 대가

보통은 ‘잊을 수가 있을까’ 이 정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함초롬; 젖거나 서려 있는 모습이

가지런한 모습



모래성은 은하수를 말함



우리 국문학자들이 해석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게 다 출전이 있거든요.

다들 漢學한 사람들이라

당나라 시를 다 외웠거든요.



월락오제상만천(月落烏啼霜滿天) yuè luò wū tí shuāng mǎn tiān

- 달이 떨어지고 까마귀가 우는데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다(새벽 풍광)

- 장계의 시 ‘풍교야박’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한시의 영향


45년부터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문과대학 교수,

한국어와 라틴어 강의


[정지용 사망 미스터리]

비극적 보도연맹 사건!

1949년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국민 보도연맹’ 결성

예술ㆍ문학계 인사들

반강제적 가입

이승만 대통령이 6.25 전쟁 중 인민군에

협조할 것으로 의심하여

30만 명에 이르는

보도연맹 가입자 학살



광복 후

예술, 문학계 인물 빈곤이

이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죠.



쌍백 雙百 이 뭔 줄 알아요?

백가쟁명(百家爭鳴)

백화노방(百花怒放)

or 백화제방(百花齊放)



모택동은 ⇒ 많은 학자는 서로 주장을 펴고 논쟁하라.

백가지 꽃이 서로 경쟁하듯이 뽐내라.



문화, 사상의 황금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를 만든 밑거름 ‘쌍백’


< 쌍백운동(雙百運動) > shuāng bǎi yùn dòng

백화제방·백가쟁명(중국어 간체: 百花齐放, 百家争鸣, 정체: 百花齊放, 百家爭鳴, 병음: bǎihuā qífàng, bǎijiā zhēngmíng)

또는 쌍백운동(雙百運動)은

1956년부터 1957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전개된 정치 운동이다.

1950년대 후반 동유럽에서 반공주의 운동, 유혈 폭동이 일어나자 이에 자극받은 중국 공산당이 사상의 유연함을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1957년 5월 1일부터 인민일보에 사상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글을 게재했고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가능하도록 했으나 비판은 수준은 날로 높아졌다. 38일이 지난 1957년 6월 8일 중국 공산당은 태도를 급변하여 반우파 운동을 주도하여 그동안 입을 열었던 비판적 지식인들을 탄압하였다

- 위키백과사전


0 1949년에 모택동,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중국 인민정치 협상회의(정협)

중국 공산당과 여러 민주당파,

정치단체 등의 대표로 구성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직



‘왜 비판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

“백화제방, 백가쟁명이

우리의 방침입니다.”

-1956년 중국정치국 확대회의 중



모택동 - “나는 관대하다”

예술, 학술, 정책 분야에 비판 독려

했어요...

그다음에 바로 반우파 투쟁

反右运动 Fǎn Yòu Yùndòng

모택동에 대한 비난 커지자

1957년 공산주의에

비판적인 지식인 색출해

투옥 및 사형

희생자만 50만 명 이상



이미 그 전 1950년에 이승만은

보도연맹 학살 했었고

똑같은 얘기지요.


정지용 선생은

① 북한 납치설 vs 월북설

→ 북으로 가지 않았다는 얘기가 강함

② 보도연맹 희생설

2의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도올의 향수’ 와 고조선]


정지용 선생의 ‘향수’를 노래하고 해석한 이유?

꿈에도 잊지 못할 곳이

광활한 아시아 대륙 전체

고구려의 옛 터전,

고조선의 옛 영역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너무 잊고 살고 있다는 거예요.

대륙을 호령하던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인류의 고대사는

이집트, 그리스의 역사도

어차피 재구성되는 것입니다.

자료가 희박해요 어떤 고대사든지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고대사는 싸그리 지워서

기원전으로 가면 우리는

역사가 없는 것처럼 생각한단 말이죠.

21세기 우리 역사는

​모든 관점을 바꿔야



예를 들면, ‘중국’이 뭐지?

‘중국’이 과연 있느냐?

​19세기만 해도 중국은 존재하지 않아요.

​청나라가 있을 뿐이고.

​자, 공자가 중국 사람인가?!

​중국에 가서 아니라고 하면

​다들 표정이

​공자가 중국사람이 된다면

​공자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해도 돼요.

​왜?

​공자는 노(魯)나라 사람이니까.

​당시 중국 땅엔

​작은 도시 국가뿐

역사를 볼 때 오늘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시각이 어떻게 되어야 하냐면 한국 역사도

​중국 역사도 존재하지 않아요.

​​‘국가’는 20세기의 산물이에요.

​손문(孫文 쑨원 sūn wén ) 이전에는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 손문 ; 1866년 - 1925년 - 중화혁명당 창설
1912. 01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

그 전에 중국인들은 중국 전체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말하자면

근세적인 국가의 개념이 없었단 것이죠.



재미난 대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온 국민 여러분들에게

소신껏 이 강의 하나를 소개함으로써

우리 문명이 얼마나 위대한 문명인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민족 조상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래도 가까운 조선왕조 사람들이죠.

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사상가

누굴 꼽겠어요?



제자들) 정약용?



가장 위대한 군인을 꼽으라면?



제자들) 이순신 장군



물론 그렇습니다.

그 시대에 같은 덕수 이 씨의 사상가?

신보라) ⇒ 이율곡!



이이 (李珥, 호: 율곡 栗谷)

(1536-1584)

-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정치가, 장원급제를 9번한 천재

수미법과 10만 양병설 등 사회 개혁안을 제시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 元秀와 신사임당 사이에서 난 셋째 아들,

조선유학의 집대성자. 저서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



이 분의 본가가 파주 율곡(밤동네)


[위풍당당 신사임당]

율곡 이이는 어디서 태어났죠?

오죽헌!


신사임당 아버지 평산 신 씨

“장가를 와라”

남편이 장가를 와서

친정집을 떠나지 않은 신사임당



대게 출중한 여자가

남편을 잘 만나요, 못 만나요?

못 만나요~



남편 이원수 그냥 좋은 사람

과거에도 합격도 못하고

부인한테 야단맞고...



불행하게도 신사임당이 오래 못 살아요.

율곡 이이 나이 16세 때(1551년) 신사임당 별세



신사임당이 남편에게 유언을 했어요

- 자녀 7명을 낳았고 다 우수한 애들이니

절대 재혼하지 마시오.

재혼하면 애들 교육 망가진다.

부인 얻지 말고 애들을 키워라.

그런데 이 멍청한(?) 사람이...

결혼을 했겠어요, 안했겠어요?

술주정뱅이 여자랑 재혼



19세 되던 해 율곡이 참다 못해서

엄마 그립고 인생무상

에잇! 금강산으로 가자!

가서 스님이 돼요(불교를 배워요).

19세 율곡 이이가 겪은 이야기를

본인이 써놨어요.



도올이 율곡 문집에 있는 글을 칠판에 씀



도올생각> 이 글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감성을 나타내는

​가장 심오한 철학



[공자와 석가, 누가 성인인가?] 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내가 풍악(가을 금강산)에서 놀았을 때(수도할때)



하루는 혼자 깊은 계곡 속으로

수 里를 걸어 들어갔는데

거기 작은 암자가 있더라.

거기 한 노승이 가사를 입고 정좌를 하고 있었다.

노승은 나를 보고도

일어서지도 않고 아무 말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 봤으나

부엌에 취사한 흔적도 여러 날은 되어 보였다.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노승은 그저 웃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무엇으로 요기하십니까?”

스님이 소나무를 가리키며

“저것이 내 양식이오.”

이에 내가 이 자와는 변론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에 묻기를

“공자와 석가 중 누가 성인이오?”

“선비는 이 노승을 놀리지 마시오.”

“부처라는 것은 오랑캐의 가르침이오.

오랑캐의 가르침을

중국에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소?”

*중국=동북아 문명 지역



스님 “야, 이놈아.

중국의 가장 존경받는 성군

순(舜) 임금도 동쪽 오랑캐고

주나라 문왕(文王) 역시

서쪽 오랑캐일 뿐이다.”

(이게 오랑캐들의 가르침이 아니고 뭐냐?)

“그래봤자, 불가의 묘한 이론은

우리 유가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소.

(당신은 유가에 달통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유가를 버리고

불교에서 도를 구합니까?”



“유가에도 즉심즉불이라는 말이 있소?”

*卽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다



“맹자께서는 성선을 말씀하셨고

말마다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게 즉심즉불과 뭐가 다를 게 있겠습니까?

왜 유학이 즉심즉불이 없다고 하십니까?

다만 유가는 출가해서

허황된 해탈을 구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속에서만

진리를 얻으려고 할 뿐이지요.”



노승은 수긍하지 않다가

한참 후에 말하기를



“불가의 非色非空을 아시오?”

*(“인간의 깨달음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다”

-반야심경-)



“저 앞에 보이는 것이 다

비색비공이 아니겠소?”

있는 그대로 저 자연이 비색비공입니다.



이에 노승은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내(이이)가 이어서 말하기를

“연비어약이라고 하는 이것은

색이요, 공이오?”



*연비어약(鳶飛魚躍)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에 고기가 튀어노는 것이

조화로운 천지의 생명력이라는 <시경>의 문구



“그것은 색도 아니요, 공도 아닙니다.

그것은 진여(眞如) 그 자체지요.”

*진여체; 진리의 본체

스님이 다시 이어서 말하길

“어찌 그 <시경>의 구절 하나로

불교의 경계와 비교할 수 있으리오.”



율곡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미 언설이 있으면 경계가 있는 것인데

어찌 진리의 본체를 따로 말하십니까?

진리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오.

만약 그렇다면

유가의 현묘한 이치는

오히려 말로 전할 수 없는 높은 경지가 되고

문자 밖에서 논다는 불가의 도라는 것은

문자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오.”

스님이 경악하며 내 손을 잡고서는 말하기를

“그대는 속유(속세의 유생)가 아니다.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위대한 학자다.

나를 위해서 그 글귀를

시로 적어다오.”
그래서 내(이이)가

7언절구 하나를 써주었다.




노승은 읽어본 후 소매 속에 넣고는

몸을 돌려 벽을 향해 앉았다.




나는 그 계곡을 빠져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그 노승이 누구인지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3일 후 다시 가보니

작은 암자는 그대로인데

노승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 참고자료> <栗谷先生全書卷之一 詩 上>에 있는 글

제목 ; 楓嶽贈小菴老僧幷序

- ​제목은 「금강산의 조그만 암자에 있는 노승(서문과 함께 있음)」) 이다.




余之游楓嶽也. 一日獨步深洞中. 數里許得一小菴.

내가 풍악산[금강산]을 유람하던 어느 날, 혼자서 깊은 골짜기를 몇 리쯤 가다보니 조그만 암자 하나가 나타났다.

有老僧被袈裟正坐. 見我不起. 亦無一語.

노승 하나가 가사를 걸친 채 정좌하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고서도 일어나지도 않고 또 말도 없었다.

周視菴中. 了無他物. 廚不炊爨. 亦有日矣.

암자를 한바퀴 둘러보니 아무 것도 없고 아궁이에는 불을 땐 지 며칠 된 듯하였다.

余問曰.在此何爲? 내가 물었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시오?”

僧笑而不答.노승은 웃음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又問食何物以療飢. 내가 다시 물었다. “무엇으로 허기를 다스리시오?”

僧指松曰.此我糧也. 노승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이게 내 양식이오.”

余欲試其辯. 나는 그의 식견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問曰孔子釋迦, 孰爲聖人.이율곡 “공자와 석가, 둘 중 누가 성인이오?”

余曰浮屠是夷狄之敎, 不可施於中國.

율곡: “불교는 이적(夷狄:오랑캐)의 가르침이어서 중국에선 시행될 수 없소이다.”

僧曰舜東夷之人也. 文王西夷之人也. 此亦夷狄耶.

노승: “순(舜)은 동쪽 오랑캐(東夷) 출신이고 주나라의 문왕(文王)은 서쪽 오랑캐(西夷) 출신이니 이들 역시 오랑캐요.”

余曰佛家妙處, 不出吾儒. 何必棄儒求釋乎? 율곡: “불교의 오묘한 점은 우리 유가를 벗어나지 않거늘 굳이 유학을 버리고 불교를 찾고 있소?”

僧曰.儒家亦有卽心卽佛之語乎.노승: “유가에도 또한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소?”

余曰: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 何異於卽心卽佛. 但吾儒見得實.

율곡: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말하면서 입만 열면 요순을 들먹였는데 (이것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그렇더라도 우리 유학의 견해가 훨씬 실증적이오”

僧不肯, 良久, 乃曰, 非色非空, 何等語也.

노승: 수긍하지 않고, 한참 있다가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다’가 무슨 소리요?”

余曰此亦前境也. 율곡: “이 또한 앞의 경치일 뿐이오.”

僧哂之.노승: 씨익 비웃다.

余乃曰鳶飛戾天魚躍于淵, 此則色耶?空耶?

율곡: “‘솔개가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 이것은 색(色)이오 공(空)이오.”

僧曰非色非空是眞如體也. 豈此詩之足比.

노승: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님은 진여의 본체요, 어찌 이런 시로 족히 견줄 수 있단 말이오?”

余笑曰, 旣有言說便是境界, 何謂體也. 若然則儒家妙處不可言傳, 而佛氏之道不在文字外也.

율곡: 웃으면서, “말로 설명을 했다면 바로 경계이니 어떻게 본체라 할 수 있겠오? 그렇다면 유가의 핵심(妙處)은 언어를 통해 전할 수 없는데 불교의 진리는 문자 밖에 있는 셈이오.”

僧愕然執我手曰.子非俗儒也.爲我賦詩. 以釋鳶魚之句.

노승은 경악하며 내 손을 잡고 “그대는 세속의 범속한 선비가 아닌가 보오.

나를 위해 그 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글귀의 뜻을 풀어주시오.”

余乃書一絶. 僧覽後收入袖中. 轉身向壁.

내가 그래서 칠언절구 시 한 수를 써 주었더니 승려는 보고 난뒤 소매속에 넣고는 벽을 향해 돌아앉아 버렸다.

余亦出洞. 怳然不知其何如人也

나도 또 골짜기를 나오고 말았는데 경황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後三日再往 則小菴依舊. 僧已去矣.

사흘이 지난 뒤 다시 가 보았더니 암자는 그대로 있는데 노승은 이미 떠나버리고 없었다

* 金剛山(금강산)摩訶衍(마가연)에서
율곡 이이 선생께서 19세때 쓰신 시

물고기 뛰고 솔개 날아 아래 위가 한가지네 魚躍鳶飛上下同

이런것은 색(色)도 아니오, 공(空)도 또한 아닌 것 這般非色亦非空

등한히 한번 웃고 내 몸과 세계를 둘러보니 等閒一笑看身世

노을지는 여러 나무들 사이에 홀로 서 있구나 獨立斜陽萬木中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편(旱麓篇)〉에 나오는
언비어약[鳶飛魚躍]

瑟彼玉瓚[슬피옥찬]산뜻한 구슬 잔엔
黃流在中[황류재중]황금 잎이 붙었네
豈弟君子[기제군자]점잖은 군자님께
復祿攸降[복록유강]복과 녹이 내리네
鳶飛戾天[연비려천]솔개는 하늘을 날고
漁躍于淵[어약우연]고기는 연못에서 뛰네
豈弟君子[기제군자]점잖은 군자님께서
遐不作人[하부작인]어찌 인재를 잘 쓰지 않으리


우리 조상들은 중국 알기를 우습게 안 거죠.



<틀에 갇힌 역사, 아웃!>


승연) 선생님

우리도 중국에서 동이(東夷)라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나라를 미워했다는 기록이 많더라고요.

같은 동이족끼리 왜 그랬어요?



그러니까 바로 그것이

남은 시간에 바로 잡아야 할 문제!



중화 문명 그 자체가

우리가 참여해서 만들어온 것,

중국이 따로 있고

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 은, 주(夏殷周)라고 해서

고대 중국 국가들



춘추전국시대(BC 770~221)

완전히 분열



진나라(BC 221~206)

진시황에 의해 전국시대를 통일한 국가



한나라 ; 유방이 세움



위촉오 삼국시대(220~280)

위진 남북조시대(221~589)



수나라(581~619) 통일



당나라(618~907)



송나라(960~1279)

북송, 남송 분열



원나라(1260~1368) ; 몽고가 들어옴



명나라(1368~1644)



청나라(1616~1912) ; 만주가 들어옴




군벌시대(1912~28)


분열과 통일의 반복,

중국 역사 속 주인은 없다

끊임 없이 외적이 다스리고 물러나면서

유지 되어온 역사

한족이 중국을 다스린 게 중국 역사의

반도 안 됩니다.



율곡의 대화 속에서도 중국 문명의 핵은

동이, 서이의 문명



우리 민족의 위상은 무엇이고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우리 자신을 새로운 각도에서

봐야 할 시기가 왔다.

이것이 21세기 우리 역사학의

최대 과제인 거죠.

오늘은 여기까지

< 이 글은 \"외국어 도전기\"의 \'레이나\"님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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