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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9 12:17

言官, 公平無事의 표상 정인홍

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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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분야 : 문화/생활
등록 일자 : 2001/04/22(일) 18:42

[언관 역사를 지킨다 7]공평무사의 표상 정인홍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에는 정인홍(1535―1623)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있다.
“정인홍이 사헌부에 언관으로 있으면서 위엄을 갖고 일을 처리하고 규율을 바로 잡으니 모든 관료들이 두려워 떨며 삼갔으며 시중의 상인들까지도 나라에서 금하는 물건은 감히 밖에 내놓지 못했다. 정인홍이 부모님을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니 서울 성안의 방종한 자들이 모두 기뻐하기를, ‘이제야 어깨를 쉬겠다’ 하였다.”
사헌부 장령(정4품) 시절 언관으로서의 그의 명성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정인홍은 16세기 중반 이퇴계과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 남명 조식의 수제자이다. 스승 조식은 평생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초야에 묻혀 살며 경(敬)과 의(義)를 중시하고 학문의 실천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조식은 당시 학자들이 관직에 나아가 제대로 개혁에 힘쓰지 않고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 등 성리학의 이론적 측면에만 관심을 쏟는 데 대해 손으로 마당을 쓸고 청소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떠들어 명망을 도둑질해서 세상을 속인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정인홍도 이런 스승의 실천적인 학문과 강직한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타락한 과거장을 보고 과거가 명예와 이익을 탐하는 것이라 해서 포기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던 정인홍이 관직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는 1573년(선조 6) 이지함, 최영경, 조목, 김천일과 함께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추천되어 6품직을 제수받고 경상도 황간현감으로 부임하면서였다. 여기서 그는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베풀어 당대 최고의 선정관(善政官)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1578년 영천군수로 재직할 때 청렴하고 백성을 우선하는 정치를 하다 상관과 마찰을 일으켜 사직하고 낙향했던 정인홍은 1580년 사헌부 장령에 임명된 언관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어 가던 상황에서 공평무사와 강직함으로 명망이 높았던 정인홍은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으며 상경했다. 그가 상경하자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려고 구름처럼 모여들 정도였다.
“정인홍은 비리를 탄핵하는 데 있어서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고 금령(禁令)을 매우 엄격하게 펴서 지켜 일시에 기강이 자못 숙연함을 깨닫게 했다.”
‘선조실록’의 이 기록처럼 정인홍은 언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수령과 아전들의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졌음을 통렬히 비판했다. 또한 우성전이란 관리를 같은 동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했다.
탄핵 이유는 우성전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 평소 좋아하던 기생이 머리를 풀고 상가를 출입했으며 지방관으로 나가서도 부모를 뵙는다는 핑계로 항상 서울에 있는 등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경중 역시 같은 동인이었지만 이조전랑으로 오래 동안 있으면서 인사권을 남용한 이유를 들어 탄핵했으며, 사헌부에서 관직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한 대사헌 이식(李쑱)이 궁중에 뇌물을 바치는 등 불미한 행적이 드러나자 관리들에 대한 감찰 임무를 소홀히 했음을 들어 스스로 사직을 청하기도 했다.
나아가 당시 대표적인 외척인 심의겸을 탄핵해 파직시켰다. 심의겸은 명종 때 척신 이량을 실각시키고 사림(士林)이 정권을 잡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서분당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구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정인홍은 그가 조정의 권력을 농락하고 여론을 분열시켜 나라를 혼미 속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탄핵했던 것이다.
이 시기 언관으로서의 정인홍의 활동은, 같은 동료 언관들이 봉공진직(奉公盡職), 즉 공직을 받들고 직책을 다 한다고 평가할 정도로 붕당에 치우지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충실했다.
그가 언관 활동을 하면서 펼치는 주장은 선비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공론(公論)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 우성전과 이경중의 탄핵에 반발한 유성룡도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의겸과 같이 탄핵을 받은 정철도 “정인홍을 길에서 만나면 술을 한잔 같이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붕당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공평무사하고 강직하고 백성을 생각했던 그의 언론활동은 점점 자리를 잃어갈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그 자신이 당쟁의 희생자가 되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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