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52년 당시 대종회는 물론 지역단위 종친회마저 전무한 시기이다. 동년 5월 縣令公派 21세 孫인 東九翁은 大邱의 元九, 昞烈, 鍾浩 諸씨와 하께 “瑞山鄭氏大邱花樹會”를 결성하고, 전국 각처를 순회하면서 산재한 서정 후손의 발굴과 규합 그리고 선조님들의 偉業과 遺蹟 찾기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2) 전국적 대종회 조직을 위하여 각처 종중대표들이 海東齋에 모여 大宗契를 만들고 이어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白米를 수집키로 했으며 전국 15개소에 화수회 지부를 설치하여 瑞山鄭氏全國花樹會 創立總會를 개최하고 滿場一致 회원들의 지지로 總會長에 추대되었다. 3) 1957년 瑞山市를 빛낸 위인들을 봉안한 松谷書院의 位牌 순위가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瑞山儒林과 松谷祠에 봉안되어 있는 五家本孫會議를 소집, 위패순서를 바로 잡기 위한 협의를 하는 등 노력했으나 일부 門中에서 이에 불응함에 東九회장은 瑞鄭의 昞熙, 昞殷, 煥玟, 宅永, 璣赫 제씨와 함께 왜곡 건립된 비석을 파기하고 위패봉안 순위를 1위 員外郞公, 2위에 襄烈公으로 재정립시킨 후 새로운 비석을 세움으로서 위패순위에 대한 더 이상의 異見이 없도록 하였다. 4) 1961년 수원지구에 모셔졌던 2세조 諱 信柔(우문관대제학)를 위시한 19위의 선조묘소가 멸실되었음을 확인하고 서산 시조묘소 하단에 설단을 마련하여 후손들이 享祀를 모시도록 하였고, 1964년 허물어져 가는 望雲臺를 重修하였으며, 1965년 3월에는 그 동안 집념으로 발굴한 선조님들의 역사적 사료를 하나로 묶어 <서산정씨세사(瑞山鄭氏世史)>를 단행본으로 발행하였다. 그밖에 대종회 운영 규정 등을 제정하여 오늘의 대종회 운영의 기본 틀을 이루었다.
二代 昞熙 會長 (1980 - 1984) 서울高法 部長判事, 서울辯護士會 會長
1) 대종회 東九 초대회장 후임으로 1980년 전국서산정씨화수회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한 昞熙 회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변호사 신분으로 각별한 숭조목종 정신으로 다소 침체되었던 대종회를 정상화시키는데 주력하였다. 2) 병희 2대 회장은 東九 초대회장과 함께 송곡사 위패봉안순위 정립에 앞장서 활동하였고, 원조 원외랑공, 시조 양렬공의 行狀을 소상히 밝히고 역사적 사실을 재정비 하였으며, 특히 11세를 기준으로 32계 종파의 분류를 정립시킴으로서 瑞鄭 뿌리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三代 聖九 會長 (1984 - 1988) 天眞敎 統官, 新都老人學校 校長
1) 1984년 10월 9일 서울 서대문 대양빌딩에서 대종회 총회를 개최하여 제3대 회장으로 취임, 1차 사업으로 시조묘소 성역화 및 정화 사업추진을 결의하여 동월 29일 해동재에서 구체적 계획을 협의 결정하여 묘소 전역에 잔디를 깔고 문관석과 장군석, 상석, 둘레석 등을 구축하고 失傳된 5世 設壇을 오석와비(烏石臥碑)로 중수(重修)하였으며 2) 소요예산은 약 3천만원 염출방법은 세대별 1만원 이상과 독지가의 헌성금으로 충당하기로 하고 공사기간은 1985년 2월 ~ 4월 말일까지 3개월간 간단없이 추진하여 동년 5월 서산지역의 유지, 유림대표와 종친 가족 등 1천여명이 넘는 인파가 참석하여 예상 외의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렇게 원․시조묘소 성역화 사업으로 종친들은 물론 지역 유지, 유림들에게 명예로운 서산정씨, 또한 瑞山人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3) 동 聖域化 사업의 집행위원으로는 斗永(서산) 武一(대전) 璣玉(충주) 象均(대전) 河一(충주) 등의 종친님들이 맡아 수고하셨다. 이밖에도 성구회장은 종친들의 숭조정신 함양을 위한 대안을 마련 종친들에게 주지시키는 등 열성적으로 대종회를 이끌었다.
四代 璣玉 會長 (1988 - 1992)
1) 제4대 璣玉회장은 무엇보다 차츰 쇠퇴해 가는 崇祖孝親 경시풍조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시조묘사의 제례절차 등을 바르게 정립하였고, 원근간의 崇祖敦睦정신을 主唱․장려하여 종친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각지에 산재한 종중재산을 상세히 파악하여 관리 기준을 정리하는 등 宗土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2) 또한 璣玉회장은 매년 실시되는 원․시조 묘사 때에 제관, 참배객들에게 원․시조의 인품과 나라와 백성을 위한 위업에 대해 전 종친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설명하도록 하여 參禮者들로 하여금 좋은 반응을 얻었다.
五代 淳永 會長 (1992 - 1995) 釜山大學校 敎授, 理工大學長 (工學博士)
1) 瑞山鄭氏대종회 출범 이후 최초 競選에 의해 제5대 회장으로 선출된 淳永회장은 慶尙大學敎 工學博士로 종맹 퇴치라는 이슈를 내걸고 조직정비 강화를 시점으로 地域花樹會와 종파별 화수회를 구체화시켰고 전국망을 본격적으로 정비하였으며 산재된 종친을 발굴하여 1,500여명의 대종회 회원이 등재된 회원수첩을 처음으로 제작․배포하였다. 2) 종회의 운영과 회원 動靜에 대한 소식을 알리고 매몰된 기록들을 찾아 사료로 남기고자 <瑞鄭宗報>를 손수 제작하여 발간하였으며, 동시에 대종회 운영의 사무체계를 확립하고 대의원제에 의한 총회 구성 시스템을 정립시켰다. 3) 대종회 宿願事業이었던 시조묘 관리사 신축과 海東齋 보수를 말끔히 수행하였다. 소요재원은 5천만원 중 2천만원은 광주 죽포공파의 지원과 璣浩(청주)종친의 성금 그리고 부산화수회를 위시한 전국 각 종친회의 성금으로 충당했으며, 이에 대한 獻誠碑를 제작․건립하였다.
六代 相天 會長 (1995 - 1999) 公州大學校 敎授, 行政大學長 (經營學博士)
1) 대종회 6대 회장으로 당시 서울종친회 회장이었던 相天 공주대학교 교수가 취임하였다. 상천회장은 취임 후 대종회 定款을 대폭보완 하고 저변확충으로 대종회 운영관리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하였으며 2) 미완된 서산 종토답산(宗土踏山) 등 종중재산 권리확보를 적극 추진하였고 서정인의 상징인 종기(宗旗)를 처음 제작하여 대종회 심볼을 제시함으로서 종친들의 결속과 친목을 위해 진력하였으며 원외랑공, 양렬공 원.시조님의 영정을 컬러로 보완제작하여 원.시조에 대한 후손들의 친화감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3) 원.시조님의 역사적 위덕과 위업을 본격적으로 발굴하여 서정 조상님들의 업적 홍보에 진력하였으며 8차 정축(丁丑) 대동보(大同譜)를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체계적으로 제작 발간하는 업적을 남기었다.
七代 萬周 會長 (1999 - 2002) 경남 함양군 면장, 6.25 참전용사전우회 회장
1) 제7대 대종회 회장으로 취임한 萬周회장은 그 동안 거의 몇몇 종친님들의 헌성금 등으로 충당해 오던 대종회 운영비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항상 부족한 상황으로 대종회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代案으로 대종회 회원들에 대한 회비 의무납부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여 운영 기금 확보를 제도화 하였다. 2) 또한 김천시 봉산면 소재의 5世 富城府院君 墓所와 覽德齋 그리고 경남 거창군 위천면 소재 6世 禮安縣監公 墓所 및 感慕齋 등 先祖님들의 史蹟이 오랜 시간 방치함으로서 손괴가 심한 바 종친들을 설득 헌성금을 수납하여 重修 및 淨化하는 등 爲先事業을 적극 추진하여 史蹟 보존의 성과를 거두는 업적을 남겼다. 3) 2001년11월 河南省 滎陽에서 개최한 세계정씨 族系大典編纂會에서 포강의 義門鄭氏와 한 뿌리임을 확인하고, 여러 차례 서신왕래 및 자료교환 등으로 확인된 사료를 바탕으로 이듬해 3월에 다시 포강에 가서 江南第一家 종친회와 文史硏究會 그리고 宗系大典編纂會 및 韓國 瑞山鄭氏 대표가 상호 對照 확인하여 歸源金禧書에 서명함으로서 그 동안 원조 원외랑공의 고려에 망명하시기 전 중국에 남겨져 있는 원뿌리 찾기에 고심하던 종친님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 2002년 5월 대종회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2007년 5월까지 만5년을 역임하여 初代 東九會長에 이어 가장 오랜 기간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취임 초기 종친들간의 불협화로 대종회를 이끌어 가는데 다소의 혼란이 없지 않았으나 특유의 추진력과 친화력으로 난제를 극복하는 등 대종회 분위기 전환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2) 서정의 상고조 뿌리찾기사업 완결 기념으로 <서정상조세계보> 발간과 서정 후손들에게 서정의 뿌리와 선조의 위대한 업적 등 교육 자료가 담긴 전자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서정의 대외적 위상을 크게 높혔으며, 시조 양렬공 업적을 체계적으로 담아 제작한 책자를 발간.배포하는 등 위선 사업에 많은 재정을 지원하여 서정에 대한 이미지 쇄신에 크게 기여하였다. 3) 또한 위의 업적을 바탕으로 서산지역 관계, 학계, 유림대표 인사 200여명이 참여하는 “양렬공 정인경 기념사업회”를 조직 운영케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학계와 문화계가 주관하는 시조 양렬공의 나라와 백성을 위해 남기신 업적을 객관적 입장에서 증명하는 “양렬공 정인경 학술토론회”를 개최토록 하는 등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4) 이 밖에도 대종회 운영에 필요한 재정 충당에 회장으로서 대종회 운영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지원한 재정이 일반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의 큰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는 등 남다른 노고가 컸음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九代 弘熙 會長 (2007 - 2009) (주)로드랜드개발 회장, (주) 속리산개발 회장
1) 弘熙 회장은 청주 감찰공파로서 시조 양렬공의 25세손이다. 약관 나이에 건설업계 투신, 현재 국내 굴지의 레져 건설업체를 경영해 온 명망 높은 사업가로 2007년 5월 정기총회시 회원 만장일치로 추대 받아 서산정씨대종회 제9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대종회 위상을 한 층 더 높이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