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 로그인
  • 회원가입
  •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 대종회
    • 회장인사
    • 조직도
    • 임원명부
    • 발자취
    • 종헌
    • 종토목록
    • 종중소식
    • 전자종보
    • 전자앨범
    • 회비 헌성금
  • 서정유래
    • 서정기원
    • 원시조
      • 본관
      • 원조
      • 시조
      • 공신록권
      • 인물평
    • 설단향사
    • 서산유래
    • 세계표
    • 항렬표
    • 기념사업회
  • 사적지
    • 간월도
    • 남원마을
    • 망운대
    • 해동제
    • 송곡사
    • 오현각
    • 양렬로
  • 자료실
    • 원시조연구
      • 시대적배경
      • 성리학전파
      • 탄생과 간월도
      • 瑞山 대사동에서
      • 입신과 폐위사건
      • 보국과 충렬왕
      • 마지막 영광
    • 원외랑실기
    • 양렬공실기
    • 묘지명
    • 영의정래암공
      • 시대적상황
      • 과연 역적인가?
      • 차가운 땅속에서
      • 출신과 성장
      • 남명학의 만남
      • 신진정치세력
      • 나라의 위기
      • 임진왜란
      • 광해군시대
      • 대북정권
      • 권력강화
      • 인조반정
    • 해동재사적비
    • 역사인물
    • 상조동계확인
  • 보학상식
    • 용어
    • 10간12지
    • 24절기
    • 本의기원
    • 족보
    • 世와代
    • 절의 의미
    • 관례
    • 혼례
    • 상중례
    • 제례
    • 수연례
    • 호칭
    • 서식
    • 집례(홀기)
    • 축문
    • 장묘관리
  • 생활예절
    • 인간관계
    • 예절이란?
    • 개인예절
    • 가정에서
    • 학교에서
    • 직장에서
    • 이웃간에
  • 게시판
    • 공지사항
    • 방명록
    • 궁금해요
    • 생활정보
    • 좋은글 모음
    • 영상방
  • 인터넷족보
    • 인터넷족보열람

서브페이지

home 자료실
  • 원시조연구
    • 시대적배경
    • 성리학전파
    • 탄생과 간월도
    • 瑞山 대사동에서
    • 입신과 폐위사건
    • 보국과 충렬왕
    • 마지막 영광
  • 원외랑실기
  • 양렬공실기
  • 묘지명
  • 영의정래암공
    • 시대적상황
    • 과연 역적인가?
    • 차가운 땅속에서
    • 출신과 성장
    • 남명학의 만남
    • 신진정치세력
    • 나라의 위기
    • 임진왜란
    • 광해군시대
    • 대북정권
    • 권력강화
    • 인조반정
  • 해동재사적비
  • 역사인물
  • 상조동계확인
  • home
  • 자료실
  • 원외랑실기

con_18od5B.jpg

동정은 태자첨사 최수랑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송나라 년호 가희년부터 몽고가 득세 강대해지자 양양, 회촉이 차례로 함락되고 왕민, 이백영 등이 성곽과 창고를 불질러 태우고 이르러 항복을 한다 몽고는 요추, 양유중을 시켜 문자를 통달한 선비를 널리 구하였고 덕안골이 이미 함락되어 조복이란 선비를 얻고 보니 그는 儒學의 비중이 크다 함을 알게 되고 그 무리들이 강한선생이라 부르던 터였다.

원태조는 이를 아주 좋아했다 또 원외랑공의 고명을 듣고 요추로 하여금 백단으로 설득하고 위협하여 조복과 함께 수레에 싣고 함께 가기를 원하였는데 공은 말하기를 “옛말에 열녀는 두 남편을 받들지 않으며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이니라 하였거늘 차라리 죽을 지언정 북쪽(元) 조정에서 신하되기는 싫도다”하셨다.

요추가 그 뜻을 태조에게 고하자 태조는 그 절개를 오히려 가상히 여기였다. 이에 공께서는 원태조의 회유를 피해 소항으로부터 태마루에 몸을 싣고 바다 건너 마한(고려) 서주땅 간월도에 기착하였으니 이때가 1237년 고려고종 24년이다.

당시 고려 풍속은 불교를 숭상할 때이고 공이 성리지학(性理之學)으로 유생들을 가르치게 됨으로서 동방사람이 정명도, 정이천 兩程 선생의 글을 접하게 된 시초이기도 하다. 신해년 2월 대사동으로 이거 망운대를 쌓고 망향의 思念을 달래었다 그 후 공은 군북 3십리 사장동 밝은 뜰에 안장되었다.

공은 위위승 동정 오영노의 딸을 처로 맞이하여 두 아들을 낳으시니 장남 仁卿은 관직이 <군부판서> 였고 차남 俊卿은 관직이 <중랑장>이며 다시 인경이 4남2녀를 낳으니 장남 信柔 의 관직은 <우문관대제학>이고 2남 信英은 <전의령> 3남 信和의 관직 <중랑장>이며 4남 信綏의 관직은 <전객령>이었다. 그리고 장녀는 蔡宗瑞에 출가하니 벼슬은 <사직부사>요 2녀는 정기(鄭?)에 출가하니 벼슬은 <광릉군>이다 한편 준경은 1남을 두니 이름이 芬으로 관직은 <군기감>이다.
 

con_18od5B.jpg

logo
  • 대종회
  • 서정유래
  • 사적지
  • 자료실
  • 보학상식
  • 생활예절
  • 게시판
  • 인터넷족보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생동사동길 192-6 010-5473-8852 COPYRIGHT © 서산정씨대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