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경은 1241년 서산 간월도에서 태어났다. 부친 정신보가 중국 절강성 금화부 포강현을 떠나와서 서산의 간월도에 도착한지 5년이 지나 뒤였다. 서산의 간월도는 옛날부터 아름다운 고장이었다.태안반도의 남쪽으로 길게 내려 뻗은 천수만은 항시 잔잔한 바다로 석양이 지는 해질녁의 광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또한 간월도는 천수만 한 가운데 떠 있던 섬으로 예전에는 고기잡는 배나 드나들던 간월암 암자가 들어 있는 외딴섬이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상인들 배가 황해에서 천수만으로 들어와 이 간월도를 거쳐 서산지역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간월도에는 10평 남짓한 작은 암자 하나가 자그마한 돌 섬위 마당에 있고, 그나마 하루에 두 번 물이 들 때만 물에 떠 있다. 간월도내 조그마한 암자는 佛家에서는 중요한 聖地처럼 여기고 있고, 천수만 안에서는 그 앉은 위치며 내력으로 보아 제일의 명소로 꼽힌다. 그 명성만큼이나 실제 간월암 마당에 서면, 천수만 앞 바다의 사방이 그대로 한눈에 들어와 작은 섬으로만 느껴지지 않으며, 특히 천수만에서 보는 밤바다와 달빛.. 또한 그만큼 아름답고 대단하다는 것이다.
천수만 안에는 옛날부터, 갖가지 어패류가 많이 난다. 지금은 간월도와 7 Km 나 이어지는 긴 방조제가 육지와 연결되어 간월도 주변에는 많은 바닷가 횟집과 배에서 갓 잡아온 어패류가 인기를 끈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7 km 의 긴 방조제를 위를 달리는 맛은 상상만으로도 신바람 나는 일이다. 그리고 해질 무렵의 천수만의 황혼을 바라보며 이 방조제위에 서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그리고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진상할 정도로 그 맛이 독특한 간월도 어리굴젓은 다른 지방의 굴과 자라는 과정이 특이하여 돌과 바위 등에 붙어 석화로 자라다가 완전히 자란 에는 돌과 바위에서 떨어져 사는 토굴로 변하며 이 토굴로 변했을 때 이를 채취하여 어리굴젓을 담그는데 굴의 색깔이 검고 몸에 날개(굴알에 난 미세한털)가 많이 돋아 있기 때문에 양념이 골고루 묻어 발유됨으로서 특유의 맛이 난다.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유명한 간월도 어리굴젓을 보존, 전승하기 위하여 건립된 세계 최초의 음식물 탑이 바로 '어리굴젓 기념탑'이다.
이제 이런 간월도에서 부터 시작하여 770년 전, 1237년 봄, 꽃샘 추위가 한창이던 날, 중국 절강으로부터 망명의 배로 서산정씨의 원조 원외랑공 정신보가 고려에 오게 된다.정신보는 고려에 와서 주자의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고려의 많은 선비들이 그의 문하에서 주자학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후 5년 뒤 1241년 8월에 시조인 양렬공이 태어나고 부친에게 어릴 때부터 성리학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1253년 13세 되던 해 봄에, 정원사(지금의 부석면에 있는 부석사)에 올라가 공부방을 정하고 성리학을 공부하였는데, 하루는 뒷산(도비산) 꼭대기에 올라 바다 멀리 바라보며 부친 정신보가 늘 그리워하던 옛 고향을 바라다보았다.그러면서 시를 지어 큰 바위에 새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