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렬공 정인경은 1241년 - 1305년 , 즉 고려 고종, 원종, 충렬왕 시대의 인물로, 고려 의종때 정중부의 난으로부터 시작된 100년 간의 무신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몽고와의 오랜 전쟁에서 뛰어난 외교적 능력을 활용하여 고려의 정치적 안정과 고려의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며 고려사 열전에도 기록되어 있고,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의 그의 묘에서 발견된 그의 묘지석에서도 그에 대해 역사적으로 잘 기록되어 있다. 그 묘지석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또한, 이것은 고려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물로 인증받고 있다.
그가 태어나던 때는 고려 고종, 신축년, 1241년이다. 그 당시의 고려는 최충헌 무신정권 100년의 말기에 해당된다. 원래 고려는 불교를 숭상하고, 가문이 중심이 된 門閥 貴族 社會였다. 이들이 높은 벼슬과 군사의 지휘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정인경이 태어나던 해, 고려 고종 24년에,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기를 염원하는 뜻에 의해 고려 팔만 대장경이 만들어 지기 시작한 해 이기도 하다. 그후 팔만 대장경은 1248년에 완성되었다.그러나, 그 고려 고종이전, 12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고려는 문신중심의 귀족 문벌 사회로,문신과 무신과의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1146년에 왕위에 오른 의종 때는, 의종의 환관정치 그리고 문신과 무신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는 대부분 무신을 천대하는 풍조에서 비롯되어 (무신은 주로 중하층 계급출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문신들의 연회에 경비를 서는 무신들의 불만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된 정중부의 난(1170년)은 결국, 의종을 거제도(폐왕성:거제시 둔덕면 거림리)에 유폐시키고, 동생 호를 명종으로 왕위에 앉힌 후, 모든 권력을 무신들이 차지하였다. 이 때부터 고려는 1270년대까지 100년간 무신의 집권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집권을 한 무신들은 서로의 목을 겨누는 정권싸움으로 정치는 불안했고, 백성들은 이들의 부패와 수탈로 생활이 피폐해졌다. 정중부는 해주지방의 군졸출신이었고, 이의민은 소금장수의 아버지와 절의 노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많은 군졸 출신과 노비 출신들이 권력의 쟁탈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후, 1213년 8월에 즉위한 고종시대에는 최충헌을 중심으로한, 최씨 일당독재, 무신정권의 안정기였고 고려조정에서는 실제의 왕권은 크게 약화되어 있고, 최충헌과 그의 가문에서 4대에(최충헌, 최항, 최우, 최의) 걸쳐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정세는 몽고가 크게 일어나 고려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 전체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고려는 몽고의 팽창 정책에 의해 수십 년 동안 영토 수호 전쟁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중국의 宋나라는 남쪽으로 쫓겨가, 南宋으로써, 절강성의 항주에, 임안이란 이름의 도읍을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