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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경의 마지막 榮光 충선왕이 원나라로 압송되고 충렬왕이 복위되자, 충렬왕은 즉시, 섬으로 유배되어 있던 정인경을 고려 조정으로 복귀시으며 이때, 정인경의 나이 59세 였다 이렇게 정인경이 고려 조정의 重臣으로 복귀하자 그것만으로 고려는 곧 바로 정치적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는 親元派(친원파)와 反元派(반원파) 權臣(권신)들 사이에서 양쪽 모두에게 존경과 신망을 받았고 또한 그의 정직하고 온화한 인품과 학문, 그리고 뛰어난 對元外交(대원외교)능력으로 원나라와의 관계에서 큰 외교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전, 원나라에 가서 원황제와 원조정과의 외교적 협상으로 많은 고려 유민들을 귀국시켜 고향으로 돌려 보냈고, 고려의 동녕부(서경)과 자비령 이북의 땅을 고려로 복귀시켰으며, 또한, 합단군이 침략했을 때 왕과 모든 신하가 강화도로 피난가는 지경에도, 그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경에 남아 서경유수로서 합단군과 맞서 싸웠던 것이다. 또한, 제주를 원나라로부터 복귀시키는 등, 그리고, 원나라의 무리한 정치적 요구에 반대하다가 오랜 세월을 섬으로 유배당한 것에 더욱 고려 백성들이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든 것이다. 1299년 3월, 59세의 정인경은 고려 조정에 重臣으로 복귀하여 匡靖大夫(광정대부), 判三司事(판삼사사), 上將軍(상장군)이 되자 그는 곧 바로 고려의 정치적 안정과 민심을 수습하고 또한, 正朝使가 되어 원나라를 방문하여 원나라와의 관계에서 고려의 유리한 외교적 입지를 구축하였다.그해 7월, 知都僉議司事(지도첨의사사), 典理判書(전리판서)에 다시 제수되고, 9월에, 都僉議(도첨의) 參里(참리)에 임명된다. 원과의 원만히 외교관계를 통해 고려 조정이 정치적 안정을 되찾게 된다. 이로 인해, 그해 12월, 정인경은 또다시, 都僉議侍郞(도첨의시랑), 贊成事(찬성사)에 거듭 승진 제수된다.

그는 늘 가슴속에 누구보다도 元나라로 부터 고려의 국권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단지, 오랜 무신 독재정권과 몽고와의 항쟁, 그리고 여몽연합군에 의한 일본정벌.등.으로 민생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지고 국력이 허약해진 고려의 위치를 냉철히 판단하고 원나라와의 실리적 외교 관계를 통하여 고려의 국권회복과 부흥을 꾀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1300년, 그가 60세일때, 한 때,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은 친원파 權臣이 정인경의 가문과 혼인하여 정인경을 친원파에 가담시키려고 하자, 그는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게 되나 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이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충렬왕의 간곡한 요청으로 다시 고려 조정에 복귀하게 된다.

1301년 9월, 61에, 정인경은 匡靖大夫(광정대부), 都僉議侍郞(도첨의시랑), 贊成事(찬성사)上將軍(상장군) 判典理司事(판전리사사)에 다시 제수된다. ① 정1품의 최고 官爵位 ② 조선시대의 吏曹에 해당, 지금의 내무부 장관의 직책 ③ 참지정사의 벼슬을 일컫고 都僉議 中贊(국무총리)를 보좌하는 고위관리.조선의 議政府 左(右)參贊 정도의 고위벼슬이다. ④ 조선의 議政府 左(右)議政의 벼슬로 부총리격 직책.

1302년 8월, 62세에, 그는 고려의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국가를 위해 세운 공으로 壁上三韓三重大匡推誠定策安社功臣 匡靖大夫 都僉議中贊 上護軍 判典理司事의 고려 최고의 관작과 최고의 벼슬에 임명된다. 정인경이 고려 조정에 재 복귀 한 후, 1305년까지의 고려는 정치적 안정을 꾀하게 되고 친원파, 반원파의 신하들 모든 이를 이끌고 좋은 인간관계로써 원나라와의 실리적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고려의 국권회복과 국력을 신장하려 하였다.

고려사에서도 이 시기를 짧은 기간이나마 고려의 주체성 회복과 국권회복을 기하려고 노력했던 시기로 기록하고 있다. 그해 1305년 을사년 12월 17일, 정인경은 죽게되고 향년 65세였다. 그 후 서산의 송곡서원에 윈외랑공 정신보, 그리고 양렬공 정인경을 기리며 지금까지 매년 배향하고 있다. 고려 조정과 충렬왕은 몹시 슬퍼하며 그의 묘지에 묘지명을 세우고 三韓三重大匡推誠定策安社功臣匡靖大夫都僉議中贊上將軍判典理司事瑞山君 襄烈公(삼한삼중대광추성정책안사공신광정대부도첨의중찬상장군판전리사사서산군 양렬공)이라는 국가에서 예우하는 최고의 諡號(시호)를 하사한다.

이 묘지명으로 고려조정과 충렬왕은 정인경의 업적을 후세에까지 전하도록 하기 위해 정인경의 墓안에 墓誌石을 세웠다. 그리고 고려사의 열전편에 정인경에 대해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고려 묘지명에 의하면, 그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연구자 : 정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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