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곡서원은 서산시 인지면 소재지에서 부석면 방향으로 약 3km정도 떨어진 애정리 울 창한 송림 가운데 위치해 있다. 송곡서원은 문화재 지정 명칭에 따라 송곡서원이라 부 르는데 사실상 서산배출 향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 8월의 종정일(終丁 日)에지방 유림들이 제향을 올리며 유덕을 기리는 곳이다.
송곡서원은 『서원가고(書院可攷)』,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문헌비고(文獻 備考)』등 서원관련 기록에 숙종 20년(1694)에 건립된 서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후 고종 8년(1871) 의 서원 훼철령에 의해 전국에 있는 서원과 향현사가 훼철되었다가 고 종 19년(1882)에 내려진 조정의 복설계에 의해 복원을 추진하였으나 뜻을 즉시 이루지 못하고 28년이 지난 1910년에 복원되었다. 그리고 서원의 명칭을 『조두록(俎豆錄)』에는 송곡향사로『서원가고(書院可攷)』에는 송곡사로『문헌비고(文獻備考)』는 송곡사우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원우롤(東國院宇 錄)』에만 인정서원(仁政書院)으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후기 한때 서원으로도 불려졌던 모양이다.
이 곳에 봉안된 9면의 향현들의 배향 년대는 모두 일치한 것이 아니지만 배양된 9명의 인물 중 후송 윤황(後松 尹璜)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산 출신이거나 서산지방에 살 던 명현들이다.
현재 송곡서원에는 서산정씨(瑞産鄭氏)인 원외랑 정신보(員外郞 鄭臣保), 양렬공 정인경(襄烈公 鄭仁卿), 금헌 유방택(琴軒 柳方澤), 후송 윤황(後松 尹璜), 저정 유백유(樗亭 柳伯濡), 위촌 유백순(葦村 柳白淳), 무동처사 유윤(楙洞處 事 柳潤), 단구 자김적(丹丘子 金積), 미암 김위재(迷庵 金偉材) 등 9명이 배향되었으나 1957년 춘계배향(春季配享)까지 위의 아홉 분을 모신 위패순서가 瑞鄭 원, 시조인 원외 랑공, 양렬고의 순서가 아니라 타 문중의 인물이 앞서 있어 당시 대종회 초대회장인 松 隱 東九 회장을 비롯한 종친들이 이를 바로잡고 왜곡 각인된 비석을 파기하여 동년 10월 추향제부터 위패 봉안순위를 1위 원외랑공 2위 양렬공으로 정립하여 오늘에 이르 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