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정씨(瑞山鄭氏)의 원조(元祖)는 원외랑공(員外郞公) 휘 신보(臣保)이요, 시조(始祖)는 원외랑공의 맏아들 양렬공(襄烈公) 휘 인경(仁卿)이시다. 원조인 원외랑공은 중국 절강(浙江)人으로 증조부(曾祖父)인 이름(諱) 온(縕) 호(號) 충응(沖應)이 송(宋)나라 조정에서 종3품인 판장작감(判將作監)을 지냈고, 조부(祖父) 의(儀)의 관직은 정4품격인 유림랑검교군기감(儒林郞檢校軍器監)이었으며 부(父) 수거(秀据)님은 예빈사동정(禮賓事同正)으로 왕의 의전(儀典)을 담당하는 관직을 역임하였다.
수거(秀据)님이 태자첨사(太子詹事) 최수랑(崔守郞)의 따님과 결혼 아들을 얻으니 이 분이 바로 신보(臣保) 서산정씨(瑞山鄭氏)의 원조(元祖)이다
공(公)이 송나라가 몽고의 침공으로 망할 무렵 고려국(高麗國)으로 망명해 옴으로서 고려인(高麗人)이 되어 두 분의 아드님을 얻은바 장남인 양렬공(襄烈公)이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움에 왕으로부터 상서로운 곳이라는 뜻이 담긴 본관을 서산(瑞山)으로 하사 받음으로서 오늘의 서산정씨가문(瑞山鄭氏家門)을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