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맹주산(拘猛酒酸)
아주 오랜 옛날, 중국 땅에 ‘장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술 빚는 솜씨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고 친절하기로는 어떤 술집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정직하고 성실하여 셈을 속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술집은 시설도 훌륭하여 마땅히 장사가 잘 되어야 할 터였습니다.
하지만 장씨에게는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잘 팔려야 할 술은 팔리지 않고 시어져 초가 되기 일 수였습니다.
“내가 빚는 술은 훌륭한 맛을 지닌 술 아닌가. 또 나는 성의를 다해 손님을 모시지 않는가 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파리만 날리는 것이야. 도대체 이유가 뭐지. 다른 집의 문턱이 닳는 것을 보며
장씨의 허탈한 마음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장씨는 마을의 지혜 있는 원로를 찾아가 어찌하면 좋을지 해답을 청했습니다.
그 원로는 장씨에게 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거야 간단한 일일세. 자네 집 앞의 개가 문제야.”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장씨가 다시 물었습니다.
“저희 개가 문제라니요. 개가 술을 빚기를 합니까, 술을 팔기를 합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군요.”
노인이 답했습니다.
“자네 집 개는 너무 사나워. 그 녀석이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을 보기만 하면 짖어대는데
어떤 사람이 자네 집엘 가겠나?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술 심부름을 가더라도 그 녀석이 짖는 통에 도망을 가곤 하는데,
자네 집 술이 팔릴 리가 있겠나 그러나 자네 술은 초가 되고 마는 것이지.”
그제서야 장씨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솜씨가 모자라서도 자기의 친절이 부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엉뚱하게도 먹여 기르는 개의 사나움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구맹주산(拘猛酒酸)의 고사입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구맹주산이 재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나운 개들은 조직 곳곳에서 올바른 의견과 정책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고
각 부서간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차단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이 올바른 사람이고 자신만이 능력 있는 사람이며, 다른 이는 모두 틀린 생각을 하는 저열한 사람들,
자신에게 맹종해야 할 존재들로 인식하고 있는 조직 안의 엘리트들입니다.
그들은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내가 아니면 우리 조직은 안돼.”
그러나 과연 그들만의 힘으로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날의 복잡다기 한 사회,
변화가 극심한 세상에서 한 개인이 무한대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조직을 만들어 일하는 까닭은 분업과 협업의 원리에 의해 보다 능률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조직 구성원간의 상호존중, 공동체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이의 힘을 빌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남을 억압하고 자신의 견해만을 강요하는 독불장군은 조직의 해가 될 뿐임을 알아야
비로소 열린 마음으로 남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유능한 사람일수록 업신여기기 쉽습니다.
사나운 개들은 실제로 매우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자신과 조직 전체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데 비극의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열심히 하면 할수록 부정적 에너지는 확대 재생산될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술집의 술을 초로 만들고 맙니다. 이는 주인에게나, 자신에게나 모두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고객입니다. 그들은 무서운 개로 말미암아 맛있는 술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중국 땅에 ‘장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술 빚는 솜씨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고 친절하기로는 어떤 술집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정직하고 성실하여 셈을 속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술집은 시설도 훌륭하여 마땅히 장사가 잘 되어야 할 터였습니다.
하지만 장씨에게는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잘 팔려야 할 술은 팔리지 않고 시어져 초가 되기 일 수였습니다.
“내가 빚는 술은 훌륭한 맛을 지닌 술 아닌가. 또 나는 성의를 다해 손님을 모시지 않는가 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파리만 날리는 것이야. 도대체 이유가 뭐지. 다른 집의 문턱이 닳는 것을 보며
장씨의 허탈한 마음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장씨는 마을의 지혜 있는 원로를 찾아가 어찌하면 좋을지 해답을 청했습니다.
그 원로는 장씨에게 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거야 간단한 일일세. 자네 집 앞의 개가 문제야.”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장씨가 다시 물었습니다.
“저희 개가 문제라니요. 개가 술을 빚기를 합니까, 술을 팔기를 합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군요.”
노인이 답했습니다.
“자네 집 개는 너무 사나워. 그 녀석이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을 보기만 하면 짖어대는데
어떤 사람이 자네 집엘 가겠나?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술 심부름을 가더라도 그 녀석이 짖는 통에 도망을 가곤 하는데,
자네 집 술이 팔릴 리가 있겠나 그러나 자네 술은 초가 되고 마는 것이지.”
그제서야 장씨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솜씨가 모자라서도 자기의 친절이 부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엉뚱하게도 먹여 기르는 개의 사나움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구맹주산(拘猛酒酸)의 고사입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구맹주산이 재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나운 개들은 조직 곳곳에서 올바른 의견과 정책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고
각 부서간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차단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이 올바른 사람이고 자신만이 능력 있는 사람이며, 다른 이는 모두 틀린 생각을 하는 저열한 사람들,
자신에게 맹종해야 할 존재들로 인식하고 있는 조직 안의 엘리트들입니다.
그들은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내가 아니면 우리 조직은 안돼.”
그러나 과연 그들만의 힘으로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날의 복잡다기 한 사회,
변화가 극심한 세상에서 한 개인이 무한대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조직을 만들어 일하는 까닭은 분업과 협업의 원리에 의해 보다 능률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조직 구성원간의 상호존중, 공동체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이의 힘을 빌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남을 억압하고 자신의 견해만을 강요하는 독불장군은 조직의 해가 될 뿐임을 알아야
비로소 열린 마음으로 남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유능한 사람일수록 업신여기기 쉽습니다.
사나운 개들은 실제로 매우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자신과 조직 전체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데 비극의 씨앗이 숨어 있습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열심히 하면 할수록 부정적 에너지는 확대 재생산될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술집의 술을 초로 만들고 맙니다. 이는 주인에게나, 자신에게나 모두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고객입니다. 그들은 무서운 개로 말미암아 맛있는 술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