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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4 15:11

남명과 퇴계-4

남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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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않는 사상의 꽃 ‘퇴계와 남명’
조선조 관통한 학문적 라이벌 탄신 5백주년… 仁義 - 敬義 지향점 달라도 ‘영원한 師表’


남인-북인으로 갈려 學脈 이어


이러한 경쟁의식은 두 문하의 수제자격인 유성룡과 정인홍의 대립으로 심화됐고, 급기야 1610년 사림 오현의 문묘종사를 계기로 극도에 달하게 됐다.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이 사림 오현의 이름으로 문묘에 종사되고 남명이 여기서 제외되자, 정인홍을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정인홍은 이언적과 이황의 허물을 비방한 이른바 ‘회퇴논척’(晦退論斥)을 단행하여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정인홍은 청금록에서 삭제됐지만, 대북 정권의 당국자로서 정치적 타격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대북정권이 몰락하고 정인홍이 처형되자 남명학파는 존립에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정인홍의 잔당’이라는 비난을 우려한 남명학파의 상당수 인사들은 정인홍과의 사제관계를 부정하고 정구(鄭逑)를 매개로 퇴계학파에 연원을 붙이는 현상이 속출했다. 후일 영남학파가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재편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진양하씨 창주파(滄洲派), 해주정씨 농포파(農圃派), 청주한씨 조은파(釣隱派), 창녕성씨 부사당파(浮査堂派)처럼 서인으로 전향한 계열도 적지 않았다. 이는 정치적으로 남인을 표방한 안동 지방의 퇴계학파와는 달리 진주지역에 남인과 노론이 병존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퇴계와 남명은 영남이라는 동일한 지역에서 활동했고, 그리고 16세기라는 동일한 시대를 살며 각기 도덕과 경의를 학문의 모토로 삼아 영남 일대의 학문적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 영남학파의 양대 준령이었다. 한 사람은 주자학의 이론적 심화를 추구했고, 한 사람은 지행합일에 바탕한 실천성을 중시했다.


그들은 학문적 지향점이 서로 달랐지만, 본령에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는 퇴계와 남명의 당대에는 규모와 비중이 대등했으며, 퇴계-남명 사이의 약간의 불화에도 상호간의 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사후 정쟁의 와중에서 문인들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게 됐고, 퇴계-남명에 대한 문인 상호간의 비방이 격화되면서 점차 화합할 수 없는 관계로 악화됐다. 여기에 인조반정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생기면서 남명학파는 심하게 분열하여 현격히 위축됐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남명학파의 본거지인 진주 일대에는 17세기 후반 이래 남인-노론이 병존하며 갈등과 반목을 유발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남인이든 노론이든 남명 자신에 대한 극도의 추앙과 존경심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대로 유지됐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물론 안동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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