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7개의 병원을 가진 남자, 일본 도쿠다 도라오 中 \'명언\'
역전이라는 단어를 원한다면 모든걸 걸어라
시간으로 승부하고
양으로 승부하고
질로 승부한다면 가능하다
시간으로 이기고
양에서 이기고
질로 이긴다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남을 쫓아 갈때에는
이 세가지 전부 이기는 길밖에 없다
가장 힘들고 암울하며 제자리 걸음을 하는듯한 시기야말로 수험생의 내공이 충실히 쌓이는 시기라 할수 있다
힘든시간 동안 자신과의 싸움속에서 응축된 내공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오오라처럼 뿜어져 나오게 되어있다
2. 이승엽 야구선수 명언
남들이 하는 평범한 노력은 노력도 아니다
남들이 할수 없는 노력이 진정한 최고를 만든다
3. 107개의 병원을 가진 병원장이 제시한 개원조건
107개의 병원체인으로 구성된 의료법인, ‘도쿠슈가이’의 이사장 도쿠다는 건립조건으로
1. 적당한 장소 : 의료시설 적은 소외 지역, 교통이 편리한 곳
2. 인재 : 의료에 대해 순수함과 열정과 사명감을 겸비한 사람
3. 최신 의료기기 : 정확한 진단에 유리
4. 도쿠슈가이 의료법인의 이념
‘생명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병원’
‘건강과 생활을 지키는 병원’
a. 연중무휴,24시간 진료
b. 입원보증금,병실의 요금 차액,냉난방비 등의 제반 비용은 무료임
c. 생활이 어려운 환자는 본인부담금도 면제함
d. 환자에게 생활자금을 빌려줌
e. 환자로부터 선물을 받지않음
f. 의료기술과 진료환경의 향상을 위해 항상 노력함
환자가 찾아오기 쉽고, 병원이용에 부담없고 그리고 인재를 아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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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07개의 병원을 가진 남자 ㅡ 도쿠다 도라오 中 >
< 제목 ; 수험생활의 모든것>
그때 나는 오사카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시 도쿠노시마의 교육 수준은 매우 낮았다. 내가 다니던 도쿠노시마의 고등학교에서는 개교이래 국립대학의 의과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을 목표로 한 이상, 오사카 고등학교로 전학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축농증 치료를 받으면서 두세 군데 편입 상담을 해보니, 모두 8월에 편입한 시험이 있었다.
축농증 치료가 끝난 9월쯤 두쿠노시마로 돌아온 나는 부모님에게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오사카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당시 우리 집의 경제적인 능력은 내가 오사카에 있는 고등학교로 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려면 그 당시 물가로 매월 7,8천 엔 정도의 돈을 송금 받아야 하는데, 한 달치 생활비를 빼고 나면 약 3,4천 엔의 돈밖에 남지 않았고, 저금한 돈도 없었기 때문에 밭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내가 생각한 대로해라\" 하시면서
\"내가 돈을 보낼 수 없는지, 네가 오사카 대학의과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지 한 번 내기를 걸어 보자구나\" 라며 나의 편 입학을 허락하셨다.
아무 말씀도 없이 묵묵히 앉아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에는 아들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을 뵙고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가기 위해 오사카 고등학교로 전학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무척이나 놀라시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는 \'네가 과연 해낼 수 있겠니? 아마 불가능할 걸\' 하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무엇 하나 두드러지지도 않는 학생이 국립대학에 들어가겠다니. 가소로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움츠러들거나 기죽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가려고 한다는 소문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물론 섬 전체에 퍼졌다.
나는 부모님께는 경제적으로 무리한 부담을 드리고, 선생님한테서는 조소를 당하고, 마을 사람들한테까지 소문이 나자,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내가 만약 국립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경우, 나는 도쿠노시마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이 날 것이며, 이는 곧 인격을 부정당하는 것과 똑 같았다.
그후 나는 전학에 필요한 준비를 착실하게 실행에 옮겼다. 토요일, 일요일, 축제, 정월 연휴는 물론 그해 가을 고둥학교 운동회에도 참가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렸다.
1956년 3월 10일, 오사카 고등학교로 전학하기 위해 다시 도쿠노시마를 뒤로 하고 섬을 떠났다. 배의 출항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울리는 산바 시 부두에서 아버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성공할 때까지는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 죽고 싶다면 철도도 있고 바다도 있다!\"
오사카에 도착한 나는 명문으로 알려진 키타노 고등학교에 편입 원서를 냈는데, 교장 선생님은 아마미오시마에서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까지 편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다른 학교에 시험 치기를 권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으나 할 수 없이 이마미야 고등학교에 편입시험 수속을 밟았다. 3학년 편입이 안되므로 2학년을 1년 더 다녀야 했다.
이마미야 고등학교의 오사카 의과대학 진학률은 450명중 1명이 있을까말까 한데, 평균 3년에 2명정도 나왔다고 한다. 즉 1등으로 졸업해도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붙을지는 미지수 였다.
1학기가 시작되고 5월에 모의고사가 있었다. 그 결과 161 등을 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렸지만 다음 시험에서도 역시 150등이었다. 나는 너무도 괴로운 심정으로 매일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책과 씨름했지만, 그 다음 시험에서도 1등부터 10등까지는 항상 같은 학생들로 등수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과연 저들의 머리 속은 어떻게 되어 있기에.....\'
그때는 열등감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우등생들은 대부분 안경을 끼고 똑똑해 보였다. 게다가 체격도 좋았다.
나는 도쿠노시마에서는 비교적 키가 큰 편에 속했지만 오사카에 와보니 보통도 못되는 작은 축이었다.
더욱이 책을 읽는 속도는 치명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났다.
그들은 잡지와 만화를 읽던 습관이 있지만. 도코노시마에서는 그런 읽을거리가 적은데다 살 돈마저 없었기에 거의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계산력 또한 남들보다 훨씬 뒤쳐졌다.
몸집도 작고, 머리는 나쁘고, 읽기와 계산도 늦다.
사람들은 이마미야 고등학교를 2류 학교라고 했지만, 그 동급생에 비해 나는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나는 한없이 절망했다. 전학 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전학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들어가겠다고 장담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을 단념하면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고, 다시 도쿠노시마로 돌아갈 수도 없다. 어떻게든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 부모님, 섬 사람들, 동생의 줄음을 생각하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짓말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나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때 나의 공책 표지에는 \'죽느냐 사느냐!\'란 단 한마디가 씌어 있었다.
당신은 천재가 아니다. 입시계에서 성공한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인데 이것은 양날의 검으로서 반대로 얘기하자면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라는 얘기다. 냉정하게 자기 수준을 파악하고 적은노력으로 큰결과를 얻어낼 생각은 하지말라. 절대로 기적은 바라지 말라.
\'죽느냐 사느냐\'란 글을 눈앞에 두고 골똘히 생각했다. 2류 학교의 동급생들한테 이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평등한 것은 분명 있었다.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시간은 평등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물리적인 시간만 평등할 뿐이다. 나는 머리가 나쁘다. 실력이 낮다. 책을 읽는 속도도 늦다. 그들이 하루 10시간이면 할 수 있는 공부를 나는 16시간이나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우선 잠자는 시간을 6시간으로 정했다.
남는 것은 하루에 18시간. 이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식사 시간을 쪼겠다. 식사는 3분, 화장실도 3분으로 정했다.
소변은 걸어가면서 바지 단추를 열고 3미터 앞에서는 볼일을 보기로 정했다.
목욕은 열흘에 한 번으로 정했다. 이렇게 일상적인 시간을 극도로 잘라 하루에 16시간 이상 책상에 붙어 있기로 했다. 그렇게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만들었지만 도쿠노시마에서 아침이나 방과 후에 밭일을 하느라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 있지 않아 밤 12시를 넘길 쯤이면, 책상에 머리를 박고 꾸벅꾸벅 졸 때가 많았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리 빨리 먹고 빨리 볼일을 보고 시간을 쪼개 아껴 써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든 잠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방과 후에는 나카노시마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는데, 10명중 3명은 자고 있었다. 어떻게든 잠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 해야 했다. 그런데 발을 흔드는 사람중에는 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거다!\'
나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사람처럼 무릎을 쳤다. 자는 사람은 발 또한 자는 것이다. 발이 깨어 있는 한 잘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발을 흔드는 연습을 했다. 리드미컬하게 발 흔들기를 하려면, 의자에 폭 파묻혀 앉으면 안된다.
허리를 살짝 걸쳐 앉고 들을 곧게 쭉 편다. 그렇게 앉아서 발을 흔든다. 처음에는 발을 흔드는 데만 정신이 팔려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잠자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했더니 한 달쯤 지나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됐다. 뿐안 아니라, 공부 속도가 발 흔들기의 리듬에 맞춰져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진전을 보였다.
또한 발 흔들기는 운동이 부족한 수험생에게 좋은 운동이 된다.
달리기와 똑같은 운동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하루에 16시간의 발 흔들기가 적절한 운동이 되었는지 수험생활 4년 동안 딱 한 번 감기에 걸린 것 빼고는 병다운 병을 앓아 본적이 없다.
나는 발 흔들기를 통해 잠을 극복하고 운동 부족을 해소하고 공부의 능률을 올리는 1석3조의 효과를 경험했다.
일요일, 휴일, 명절 연휴에도 16시간씩 매일 곰부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공부 시간이 아직도 부족했다. 하루에 16시간 이상 꼬박 공부해도 겨우 남을 쫓아가는 정도였다. 한 걸음이라도 남을 앞서는 방법을 강구해 보았지만 없는 걱 같았다. 그런데 토요일, 일요일, 휴일, 명절 연휴가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이라도 \'오늘은 휴일이다\'는 생각에 정신이 해이해져 조금은 사간을 낭비하기 마련이다. 이때가 바로 나에겐 기회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신정 3일 연휴 동안,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이라도 하루에 기껏해야 10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16시간 이상 공부하면 3일 동안 20시간 이상 차이가 생긴다. 남보다 앞서 간다는 자각은 마음에 여유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들이 방심할 때가 바로 따라잡을 기회이다!\'
토요일, 일요일, 신정 연휴에는 온 힘을 공부에 쏟았다. 이렇게 1년 365일을 하루에 16시 이상 빡빡하게 채우고 양에서 질로 공부 내용을 바꾸니까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노력해도 남을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동급생 모두가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이마미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40등 전후가 가장 우수한 성적이었다.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은 사다리를 놓고 천국에 오르는 것어려웠다.
절대적인 공부시간을 늘려야한다. 자신이 뒤쳐쳐있다고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한후에 내려질 결론은 \'앞서간 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것\'이다. 또한 공부방법, 스킬은 자신이 공부할 의지가 있다면 어떤방법으로든 획득하게 되어있다. 공부의 스킬이라는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획득하고 깨우쳐나가는것이지 주변사람들의 \'이게 좋다더라\' 라는식에 이리저리 휩쓸리는것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집에서 송금해 주는 돈으로 식비를 충당하기에도 모자랄 정도여서 하루에 세 끼를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공복감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점심과 저녁이 부족했다. 오전10시 반까지 학원 수업을 받고 쉬는 시간이 되면 매점에서 쿠페 빵(고구마 모양으로 바닥이 납작한 빵)에 마가린을 발라 서서 먹으면서 아침을 때웠다. 저녁은 오후7시 반쯤, 근처의 밥집에서 사 먹었다. 이것으로 밤 늦게까지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배고픔을 견디기란 무척 괴로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원으로 가는 도중, 집집마다 아침을 준비하는 된장국 냄새가 솔솔 풍겨 온다. 배가 고픈 탓에 된장국 냄새에 이끌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길을 멈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춥고 힘들지만 하루에 16시간 이상 공부한다는 철칙을 지키면서 열심히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학원에 가서,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학원 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이것이 도쿄에서의 일과였다.
밤9시면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 그때부터 하숙집으로 돌아와 1시까지 공부했다. 그러나 당시의 집들은 대부분 얇은 베니어 합판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시간과의 전쟁 중이라는 걸 모르는 옆방의 대학생이 스테레오 라디오를 쾅쾅거리게 크게 틀어놓거나 소리를 질러 도저히 집중해 공부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학원 도서관을 밤 12까지 개방해 달라고 친구 몇몇과 학원 원장 선생님한테 건의했다. 학원선생님은 우리의 열의에 감동했는지 쉽게 허락해 주었다.
주변환경타령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하다. 정말 그것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면, 정말 공부하고싶은 생각이 있는사람이라면 능동적으로 대처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주변환경타령말고도 공부안할 핑계거리는 널리고 널렸다
재수에 이은 3수 생활.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단히 각오했다. 오기를 갖고 도전했지만 불안과 초조감이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실력은 붙을지 몰라도 시험은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출제된 문제에 따라서 운이 따를 수도, 불운이 따를 수도 있다. 그 같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나는 대중 목욕탕에 갈 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내년 이맘때는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 학생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지\'라고 스스로한테 다짐을 하고, 씩씩하게 의기 충천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마음을 다 잡았다.
3수 생활에 들어가자마자, 한 대입 전문학원에서 치른 모의고사에서 고등학교를 40등 전후로 졸업한 나와 항상 5등 안에 들었던 동급생의 성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그 친구도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병이라도 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나는 그 동안 아팠냐고 물었다.
\"아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는 걸\"
그러면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단 1년만에 고교시절에 나와 전혀 다른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다며 열등감을 느꼈던 동급생을 앞지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동안의 노력의 차이가 그와 나 사이에 역전을 가능하게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1년 동안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1년 동안 무엇이든지 철저하게 끈기를 갖고 노력하면 기대 이상의 큰 결과를 얻는다는 신념이 생겼다. 1년, 1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최대한 노력한다면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부터의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마쳤다.
가장 힘들고 암울하며 제자리 걸음을 하는듯한 시기야 말로 수험생의 내공이 충실히 쌓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실력상승은 계단형으로 이루어진단 얘기가 있는데 힘든시간동안 자신과의 싸움속에서 응축된 내공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오오라처럼 뿜어져나오게 되어있다. 스스로, 혹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한 반대로 말하면 게으른 나날들이 많아질수록 알게모르게 내공은 소실되고만다. 자신이 스스로 실력이 떨어졌다고 느끼게 되는것은 이미 내공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뒤일것이다.
고교 2학년에 편입했을 때부터 2년간의 시간과 재수해서 오사카 대학 의과대학에 합격할 때까지의 2년 동안, 모두 합쳐 4년간의 수험생활은 내 일생 중에서 가장 험난하고 고된 시기였다.
지금도 가끔 병원을 세울 때나 운영의 어려움에 직면하면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 4년 동안의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평생을 통해 내 인생에서 괴로움의 90%정도는 수험생활을 했던 4년 동안에 모두 겪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또한 그 4년 동안에, \'어떤 것이든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스스로 체득했다. 돈도 필요 없다. 성적이 나빠도 좋다. 그 대신 목표를 향해서 철저히 파고든다. 하루에 16시간 이상, 일요일도 쉬는 날도 하루도 빠짐없이 1년 365일을 하루같이 열심히 매달린다면 거의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다.
가령 하루에 8시간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일요일, 휴일, 명절을 다 쉬면, 1년 동안에 265일, 2120시간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하루에 16시간 이상 365일 공부했기 때문에, 5,860시간이 넘는다. 1년 동안에 3,740시간 이상의 차이가 난다. 승패는 불을 보듯 당연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아니, 쓸데없이 시간을 들이는 건 능력이 아니다. 문제는 질이다\"
하지만, 시간으로 승부하고, 양으로 승부하고, 질로 승부 한다면 가능하다.
시간으로 이기고, 양에서 이기고, 질로 이긴다.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남을 쫓아갈 때는 이 세 가지 전부 이기는 길밖에 없다. 이 4년 동안 나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배웠다.
결국, 그것은 도쿠노시마에 있을 때 사탕수수밭에서 소를 끌던 나 같은 농민이 대도시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만 한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신의 무능력을 깨우치고 그것을 극복하기위해 양과 질에서 앞서고자 하는 상대방을 앞서야한다.
당신은 천재가 아니고 그건 경쟁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