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연자 강의전 대화 내용>
0 중국 및 광동 대표적 요리 ; 불도장 佛跳牆
- 해삼, 전복, 상어 지느러미, 상어 입술, 고려인삼, 돼지 내장, 말린 조개, 비둘기 알등 30여 가지의 재료에 12가지의 보조재료가 첨가된 중국의 대표적 보양식 중 하나
- 중국 남동부 푸젠성(福建省)의 성도인 푸저우(福州) 지역의 최고급 요리라는 설도 있음
- 한자 ; 부처불, 넘을도, 담장장 - 향이 너무 좋아 스님이 담장을 넘어
들어간다는 뜻
0 중국 술 종류 ; 4,500가지 이상
0 8대 명주 ; 마오타이주 máotáijiǔ [茅臺酒(모대주)] - 고량주(증류주)
청나라 초기에 구이저우성[貴州省 guìzhōu]의 마오타이라는 마을에서 수수를 원료로 하고 밀누룩을 써서 일종의 소주를 양조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개량을 거듭하여 지금은 중국의 명주(銘酒)가 되었다. 발효기간이 길어서 9개월이나 걸리며, 그 후 다시 2∼3년 숙성저장한다. 맛은 짙으며 마신 후 입안에 단맛이 남는다. 알코올 함량은 약 55%
- 청나라 이후 매년 170톤 생산
- 1934년 장정長征때 모택동의 홍군이 마오타이에 도착했을때 대접한 술
0 마오타이가 공식적으로 유명해진 계기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 만찬때 연회주로 선정(모택동)
- 1972년 닉슨과 모택동의역사적 만남때 연회주
- 시진핑이 미국 오바마 만나러 방미할때 선물한 술
0 “차곡차곡“의 유래; 차, 곡차(술), 차, 곡차를 마신다는 말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 본격 강의>
0 오늘의 주인공 ‘장학량’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 정치적 리더쉽, 모든 것을 포섭하고, 소통시키고, 대화하고, 국민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 할수 있는 리더쉽이 우리에게 필요한데
- 우리에게는 그런 통큰 리더쉽이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복습)
곽송령 사건 = 반봉전쟁(1925)
곽송령이 장작림의 하야를 요구하며
반란한 사건
장작림 1927년 6월
중화민국 육해군 대원수 취임
장학량은 고도의 전술, 전략으로 군벌 평정
장학량 동북군 주둔지, 정주(鄭州) ; 하남성의 성도
엄청난 물자, 탄약, 대포를 가지고 있었어요.
정주에 황하대교가 있었어요.
0 백숭희(1893~1966) 중화민국의 국민혁명군 내 가장 유능한 장군(군인)
- 바이충시(白崇禧, Bái Chóngxǐ)
- 광서 군벌의 지도자, 회족
백숭희라는 장군이 공격을 가합니다.
급하게 퇴각을 하니까 ‘물자 수송이 힘듭니다.’라고 하니
보통 물자를 수송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해요?
군량미 소각하고, 다리는 끊고 가고 그런단 말이죠.
백숭희가 뚫고 들어오는데, 황하대교가 그대로 있는 거죠.
당당하게 황하대교를 건너 정주에 입성
들어와 보니까 엄청난 군량미도 그대로 있더란 거죠.
심지어 대포와 탄약도 그대로...
그러니까 참 쉽게 정주를 탈환하고
전승파티를 열고 있는데 장학량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 문장력 출중, 고전 해박, 아름답고 유려한 표현력
(편지내용)
“제가 황하철교를 폭파하지 않은 것은
폭파할 줄 몰라서가 아닙니다.
이 다리는 중국 최대 건축물의 하나로서
우리들 전략의 대상이기 전에
전 인민의 자산이올시다.
이 다리를 폭파하기는 쉽지만
한 번 부서지면 일시에 수복이 불가능하며
국가의 원기가 훼손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군량미를 남기고 가나
이것도 폭파하는 걸 잊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전리품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처참한 하남성의 이재민들에게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당신이나 나나 다 같이 중국인입니다.”
장학량은 이렇게 군벌 싸움의 와중에서도 대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운명적 인연, 장학량과 송미령]
1925년 발발한 5.30 사건
중국 상해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민중운동
상해 학생연합과 이를 진압하려는 영국 경찰이 출동,
13명이 사살되었다.
공장을 운영하던 일본인이 중국 여성 노동자를 구타한 것이 발단.
근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 파업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동북군 3천 명이 상해 치안 정상화 위해 도착
상해 미국영사관 주최 동북군 환영 만찬
그 자리에서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있었다.
송미령 “나에게 있어서 중국적 요소라고는
내 얼굴밖에는 없다”
서구적 가치를 가졌던 송미령
1908년 언니 송경령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
1917년 매사추세츠 웰슬리대학 졸업
중국 4대 재벌
미 선교사 전력의 송가수(宋嘉樹)의 셋째 딸
장학량이 정중하게 송미령에게 통역을 부탁합니다.
본인이 영어를 잘 하는데...
송미령이 “Why not?” 외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Q. “공산주의자가 준동하고 있는
상해 폭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장학량 “나는 이들을 진압하러 온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게 만든 우리 사회구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이것을 개선해야 한다.”
Q. “동북군 3천 명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느냐?”
Q. “영국 군대 등 개입하는 데 다 막을 수 있느냐?”
장 “나는 국제 규약에 따라 모든 군대와 계약을 맺었으며
그 계약을 어길 때는 우리 동북군 30만 대군이
그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송미령이 통역을 하면서 사랑에 빠지죠.
추입애하(墜入愛河)
사랑의 강에 빠지다 Fall in Love
열흘 간 상해 남경을 헤매다가
결국은 장학량이 떠나게 되고....
송미령은 장개석과 결혼
[청년 장학량, 항일을 외치다]
청년 장학량에게 큰 영향을 끼친 황고둔 사건
스승 곽송령 입장에서
장작림에게 간청했던 장학량
항일을 위해 동북으로 갑시다.
1928년 6월 4일
일본 관동군이 장작림이 탄 열차를
심양 부근 황고둔에서 폭파해 사망시킨 사건
일본군의 살해 위협을 느껴 사건 14일 후
기차 화부 차림으로 집에 나타난 장학량
장작림 사망 후 동북군의 수장은? ; 장학량
장학량이 동북군 총사령관이 됩니다.
재민) 혹시 그게 몇 살 때인가요?
만 27살 때
일본군은 장학량을 꼭두각시로 세울 생각이었으나
오산이었죠.
장학량에게는 철저한 항일의식이 있었죠.
동북사람들에게 엄청난 국가의식, 항일의식 고취
[장학량의 결단, 역치]
易幟란 말이 있어요. ; ‘깃발을 바꾸다’
오색기
중국 북양정부 및 동북국의 깃발
⇩
청천백일만지홍기
1912년부터 진화하여 1924년 공식 채택된 중화민국 국기
역치의 조건; 동북군의 모든 독립성 100% 보장
역치의 이유
전국가적 명분을 얻으려고
동북군을 없애는 게 아니고 내전이 싫으니까
전체 중국 군대로서 항일투쟁을 하자
[군벌 시대의 종언, 중원대전]
장학량 – 장개석 연합
⇳
“군벌 연합해서 장개석을 치자”
그래서 100만 대군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1930년 중원대전 발발
‘군벌간의 최후충돌,
군벌시대의 종언’을 의미
장학량의 동북군이 장개석과 연합하자
위기감을 느낀 군벌들이
장개석에게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
10만 동북군이 산해관을 넘자
여타 군벌들의 세력은 맥없이 무너졌다.
동북군은 국제 수준의 고성능 전투기를 약 270대 보유
군대가 30만 명 + 민병 15만 명
사관학교 교육을 철저히 받은 군대였죠.
중원대전이 일어나니 가치가 더 올라가죠.
모든 군벌의 수장들이 장학량을 포섭하려고 했죠.
그의 선택은 장개석을 선택하는 것이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거죠.
중원대전 후
장개석 중화민국 총사령관
장학량 중화민국 육해공군부총사령 취임
전국 어딜 가나 장학량을 환호하는 거죠.
사실 그는 동북의 촌놈
‘내가 중국 최고의 권좌에 앉았구나’
이게 바로 장학량이 쥐약을 먹게 되는 거예요.
장개석의 전략
‘띄워놓고 죽인다’ ; 전부 의도된 연출이었어.
장개석은 송미령과 결혼하기 위해
현모양처 전 부인을 다 내쫓고
마음을 얻기 위해 빌고 빌며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질투 응어리가 말할 수 없었겠죠.
그 멘붕 상태가 죽을 때가지 가는 거야
당당하게 북경에서 살게 된 장학량
이게 쥐약이었어.
[동북을 빼앗기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
일본의 만주 침략 전쟁
동북이 일본의 통치하에 들어간
불행한 사건
일본이 만주 철도를 폭파하고
이를 동북군이 했다고 트집 잡아
관동군이 만주 지역을 침략한 전쟁
동북군 본영 북대영을 초토화시키고 장악
심양과 동북지역 주요 도시 점령
심양 침공의 의미 동북의 멸망, 만주국의 성립
만주사변은 중국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이에요.
장개석은
‘동북군은 무조건 저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거예요.
중국 역사속 ‘부저항’ 미스터리!
일본 관동군은 불과 몇 천 명
VS
동북군 30만 명 + 정예 공군 상시대기
장학량 ‘저항하지 말라’
그 때 북경에 있었단 말이죠.
심양에 있었다면 상황을 감을 잡았을 텐데
장개석 말만 듣고
심양에 연락해서 ‘군대를 움직이지 말라’
심양의 궁궐, 유적지 모두 파괴
1932년 3월 1일 실제로 관동군이 지배한 만주국 건국
1934년 3월 1일 부의 황제 취임
[중국 근대사의 미스터리, 부저항 명령]
장학량은 장개석의 명령을 받들었다.
장개석의 입장에서는
동북 지역을 일본에 넘기는 게
자기 권력 유지에 유리!
부저항명령으로 일본에 복속시키려 한 것
장학량을 날려버리려고
막강한 그의 군대를 다룰 길이 없었다.
그들을 제압해야만 한다.
중국 역사에서 장개석이란 인물을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 하나
바로 이 사건과 관련된 거예요.
사람은 몸이 건강해야 한다.
장학량은 정주 퇴각 때부터
인민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
아편을 입에 대기 시작했습니다.
만주사변 당시 아편에 중독돼 있던 장학량
아편중독이 중증에 이름
[추락한 영웅, 장학량]
장학량을 조롱하는 인민들의 시
제목 ;哀瀋陽(애심양) ; 심양을 서러워하노라
- 푸근한 여인들의 품속이야말로 영웅의 무덤
관동군이 심양을 짓밟든 그 누가 사관하리!!
아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군서가
야밤중에 도착했는데도 파티는 열리고
장중한 오케스트라는 춤을 재촉해
심양은 이미 떨어졌는데 되돌아볼 필요도 없잖아?
한 미녀라도 더 껴안고 몇 바퀴 춤이라도 더 추는 게 상책이지
추락한 영웅에게 쏠린 인민들의 분노
不抵抗 철군
부저항이란 20세기 중국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용어입니다
일본군에게 저항하지 말고 동북군을 철수하라는 명령
동북군이 철저히 맞섰다면 일본은 절대 만주국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북방이 일본 손아귀에 들어간 거죠.
그런데도 장개석은 ‘I don’t care!’
장학량이 사귄 여자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냐 하면
장학량을 사랑한 여인이 바로
이탈리아 영도자 무쏠리니의 딸입니다.
이탈리아 장군 갈레아초 치아노의 부인이었던
에다 치아노; 빼어난 미모의 여인
Time지 커버에도 떴던 세계정가 중심에 있던 에다
한 번 장학량을 보더니만
또?! 에헤이~ 빠져버렸구만!
히틀러와 함께 유럽 독재의 대표적 인물, 무쏠리니
장학량은 국제분쟁을 염려해 자꾸 피해요.
[수렁에서 만난 인연,
에다 무쏠리니]
“당신(장학량)이 모는 비행기를 타고
북경상공만 날게 해주면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다.”
그 데이트 소식을 듣게 된 사람?; 송미령이 이거, 너무하다!
우스갯소리로 했지만 복잡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냐!
[장학량의 환골탈퇴]
1933년 3월 일본이 열하성까지 점령하자
장학량은 모든 관직에서 사직
상해에서 독일계 미국 의사가 아편 중독 치료
“온몸 살갗이 다 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
10여 년 간 중독됐던 아편을 끊는 치료
- 15일 만에 끊습니다.
죽을 때까지 다시 아편을 안했습니다.
1901.6.3.~2001.10.14.; 101세까지 장수
아편 치료 후 에다와 같이 이탈리아로 갑니다.
무쏠리니와 만나 민족주의를 배우는 장학량
8개월 간 유럽에 머물며 체득한 것?
진정한 민족주의 Nationalism!
세계 2차 대전 직전 유럽은 ‘민족주의’ 각축장
한편, 장개석의 생각은 장학량을 없애면
동북군은 자기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누구 맘대로?!’
사면초가
동북군의 반란 위기+공산 세력 등장
양외필선안내(攘外必先安內·
; 외부의 적을 물리치려면 내부를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
- 내부의 공산당을 무찌른 후에 일본군을 물리친다.
위초 (圍剿, 포위소탕) ; 공산당을 포위하여 초토화하자는 장개석 정책
장학량 유럽견문 중
장정 長征 통해 살아남은 공산당 홍군(중국 공산군, 紅軍)
국민당 내부에서도 비판받는 장개석,
‘장학량 소환’ ; 장학량을 서안으로 보내는 약삭빠른 장개석
섬서성 서안시 공산당 홍군 대장정 종착지 부근
“모택동 죽여!!”
[구국을 위한 결단]
장학량을 서북초비부총사령으로 입명
180도 달라진 장학량
- 속으로 장개석 말을 듣겠어요? 안들어요.
송미령? 과거의 연인, 우습게 보는 거죠.
너희들이 나를 과거에
우리 아버지가 동북군을 어떻게 만들었는데!
나를 착각하게 만들 수가 있겠냐!
가슴에 울분이 있을 거 아냐?
표현을 안하죠. 감사합니다. 고분고분
지금 중국의 희망은 저(공산) 세력이다!
공산당을 살려 연합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공산당의 편의를 봐준 장학량
한-중 근대 역사를 뒤집은 세력은
학생
1935년 12월 9일 북경의 각 대학을 비롯한
학생 수천 명이 항일구국을 외쳐 항일민족통일전선 추동
전국의 국민이 힘을 합쳐 항일을 원합니다.
장개석 “어린 놈이 뭐시라,
넌 아무 것도 모르니까 내 말 들어!
공산당 섬멸 만이 중국의 희망”
1936년 12월 10일 장개석 ; “학생놈들, 까불면
기관총으로 갈겨 버려라!” 라고 명령
그날 새벽으로 12월12일 서안사변을 일으켜
장개석 억류, 구금
이 상황에서 양호성은 “이 참에 장개석을 쏴 죽여 버립시다!
장학량 ; 하극상은 군대에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양호성(1893~1949)
- 장학량과 함께 서안사변 일으킨 서북초비총사령부의 부사령관
0 장학량의 판단
- 장개석 죽이는 건 간단한데, 죽이면 또 다시 군벌시대로 돌아간다.
우리민족은 분열되어 살 길이 없다.
국공합작을 하려면 불행하게도 장개석을 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국민당 군대 와도 뜻을 모을 수 있다.
장학량 본인은 54년간 연금되는 자기희생의 길을 택한다.
송미령에게 먼저 편지를 씁니다.
공산당 대표로는 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 주은래가 오죠. (오른쪽)
남경정부 대표단 ; 송미령과 송자문
서안사변을 주도한 장학량과 양호성,이렇게 3자가 만나죠.
며칠 간 치열하게 의논 후
국민당-공산당 합작에 전격합의
가장 슬기롭게 조정한 사람이 주은래
그래서 1936년 12월 24일 최후 동의가 이루어지고
25일 3시 반에 장개석이 석방이 됩니다.
그때 주은래가 장학량을 부릅니다.
“절대 남경에 가지 마시오.
남경에 가면 당신 인생은 끝이오.”
장학량이 “알겠소”라고 해요.
장학량은 양호성에게 ; “나는 어차피 죽을 몸,
떳떳한 길을 선택하고 싶다.
나는 서안을 떠나니 명령 계통에 따라 행동하라.
동북군은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주은래가 마지막에 알고 활주로에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중국공산당은
이렇게 수많은 인물들의 희생이 만든 거죠.
나(도올)는 장학량의 이런 정신은
동북의 기상, 고구려 패러다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정진한 장학량
우리 역사에도 이런 인물들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 이상의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0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같이 불러봅시다
즉석 합창 어머님의 마음
- 양주동 작가 이홍렬 작곡
가사의 대부분이 토착불교경전
‘부모은중경’의 게송
-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 경전.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의 구절
옛날에는 방바닥에 거적이나 깔고 비도 많이 샜지요.
방에서 마른 곳은 항상 아기가 눕게 하고
부모님들은 항상 젖은 데 누우신다는 거죠.
공자 왈, “孝는 원래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이다.”
부모는 단지 자식이 아플 것만이 걱정이다.
자식이 안 아프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지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이상 있었어요.
도저히 그냥 덮어버릴 수는 없어요.
새로운 시대적 감각을 가지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심정에서
샅샅이 밝혀야 합니다.
* 이 내용은 \'외국어 도전기\' 블로그의 \'레이나\'님 글을
조금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