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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南宋 時代, 瑞山鄭氏의 元祖, 즉, 정인경의 부친인 ‘鄭臣保’公(정신보‘공)는 중국 浙江省(절강성) 金華府(금화부) 浦江縣(포강현)에 살고 있었고, 南宋(남송)의 조정에서 刑部 員外郞을 지냈으며, 절강성지역에서 학문으로 이름난 性理學者(성리학자)였다. 정신보의 先祖(선조)은 원래 하남성의 鄭州(정주)에 토속제후(중국 춘추시대에 鄭나라의 후예)로 살았으나 송나라가 만주의 여진족이 세운 金나라에 쫓겨 절강성 항주로 남하하였는데, 이때 정신보의 선조들은 절강성 금화부로 移居(이거) 했으리라 추측한다.

정신보의 曾祖父(증조부)는 정응충이며 官職은 判將作監(판장작감)이었고, 祖父(조부)는鄭儀(정의)이고, 官職은 儒林郞(유림랑) 검교(檢校) 군기감(軍器監)이었으며, 부친는 정수거이며 관직은 禮賓事(예빈사) 同正(동정)이었다.부친인 정수거는 太子詹事(태자첨사) 崔守郞(최수랑)의 딸과 결혼하여 정신보를 낳았다.

이가 서산정씨(瑞山鄭氏)의 원조(元祖)이다. 南宋(남송)의 理宗(이종; 1224 -1240년 재위), 年號 嘉熙年(가희년)부터 몽고가 대대적으로 침략하여 襄陽(양양), 淮蜀(회촉)등이 차례로 함락되고, 이에 이 지역의 王旻(왕민), 李佰英(이백영)등이 그 성곽과 창고를 불질러 태우고 서로 이어 몽고에 항복했다.
그리고 이 일대를 장악한 몽고가 각 지역을 침략 정복하고 난 뒤, 그 지역의 명망 높고 학문이 뛰어난 선비들을 뽑아 그 지역을 관할하게끔 하였는데, 원나라 태조는 楊惟中(양유중)을 시켜 문장이 뛰어나고 학문이 높은 선비를 구하고, 모으고자 하였다.

마침, 원태조가 德安(덕안) 함락시키고, 趙復(조복)이란 학문이 뛰어난 선비를 얻었으니, 趙復(조복)은 유학에 뛰어나 그 지역의 선비들이 江漢先生(강한선생)으로 불렀다. 元太祖(원태조)가 학문에 뛰어난 선비를 얻고, 크게 좋아했다. 그리고 金華(금화)에 살던 員外郞(원외랑) 鄭臣保(정신보)의 뛰어난 인품과 학문에 대해 듣고 姚樞(요추)로 하여금 그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요추가 여러 차례 정신보를 찾아와, 江漢先生(강한선생) 趙復(조복)과 같이 元太祖(원태조)를 도와 함께 원나라 조정에서 일하고자 하였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의 정신을 남겨!
이에 신보가 말하기를, 옛 말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 하고, 열녀는 두 가장을 모시지 아니 한다 하였으니 차라리 죽을 지언정 오랑캐 조정에 臣下가 되기 싫다 하였다. 姚樞(요추)가 이 말을 元太祖(원태조)에게 告하자 太祖(태조)가 그 절개를 아름답기 생각하여 더 이상 강요를 하지 않았다.

그 후, 1237년, 절강성의 금화에 살던 정신보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고려의 瑞州땅(지금의 서산) 看月島로 망명하였다. 그때 高麗 풍속이 불교를 숭상하였는데, 정신보가 성현의 학문 性理學(성리학)으로 후학를 가르침에 고려의 선비들이 처음으로 정명도 정이천 양선생의 글을 보았다고 했다. 이것이 우리 나라에 성리학이 들어온 시초가 아닌가 한다.이는 고려문신 안향이 1289년 충령왕 15년, 최초로 주자학을 고려에 전래했다는 학설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이때 안향은 儒學提擧(유학제거)가 되어 왕과 왕후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가 朱子全書(주자전서)를 필사해 돌아았다.

단지 안향은 유학을 크게 부흥시켰다는데는 역사적으로 이의가 없으나, 최초로 고려에 주자학을 전래했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 안향이 유학제거라는 벼슬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누구에선가 주자학을 배웠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고, 또한, 이미 유학이 고려에 정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辛亥(신해 1251년) 二月, 大寺洞(지금의 서산 석림동 남원마을)으로 이사하여 望雲臺(망운대)를 쌓아 놓고 늘 고향 쪽을 바라보며 눈물 지우며 그리워했었다.지금도 서산지역의 儒林(유림)에서는 매년 松谷書院(송곡서원)에서 그의 學文(학문)을 기리고 配享(배향)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그의 발자취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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