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巳 7年 (1281년)
12월 壬辰에 대장군 김자정을 元에 보내어 賀正하였다. 庚戌에 지를 내려 이르기를 ?과인이 일찍이 세자가 되어 경사에 입조할 적에 나유 지윤보 김응문 정인경(鄭仁卿) 차득규 김부윤 이지저 황룡 김의광 양저 주석 김위량 등이 시종의 노고가 있었고 옛날 적신 임유무가 군사를 강도에 끼고 써 제명을 항거할적에 찬성사로 치사한 송송례와 전추밀원부사 홍문계 지밀직사사 송분 대장군 김지저가 의를 분발하여 소탕한 것은 공이 사직에 있으니 그 아울러 상전을 논의하라?하였다.
해석 =>
충렬왕은 정인경의 원나라와의 외교적 성과에 매우 기뻐하며, 세자시절 자신을 도와 임연의 반란에 공이 있었던 신하들에게 상전을 논하게 하였다.
12월 壬辰에 대장군 김자정을 元에 보내어 賀正하였다. 庚戌에 지를 내려 이르기를 ?과인이 일찍이 세자가 되어 경사에 입조할 적에 나유 지윤보 김응문 정인경(鄭仁卿) 차득규 김부윤 이지저 황룡 김의광 양저 주석 김위량 등이 시종의 노고가 있었고 옛날 적신 임유무가 군사를 강도에 끼고 써 제명을 항거할적에 찬성사로 치사한 송송례와 전추밀원부사 홍문계 지밀직사사 송분 대장군 김지저가 의를 분발하여 소탕한 것은 공이 사직에 있으니 그 아울러 상전을 논의하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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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은 정인경의 원나라와의 외교적 성과에 매우 기뻐하며, 세자시절 자신을 도와 임연의 반란에 공이 있었던 신하들에게 상전을 논하게 하였다.